전공의는 정말 과로에 노출돼 있을까.. 외과 전공의의 36시간 근무일지

[전공의 과로사①] 36시간 연속근무가 일상인 전공의... 환자 안전과 전공의 건강 위협

전공의들은 늘 힘들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의료계 밖에 있는 국민들은 도대체 전공의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기에 항상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의료계 안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대학병원 전공의들은 바쁘고 힘들어도 언제나 단정하고 아름답다. 병원에서 보는 전공의들은 회진할 때나 수술 전에 동의서를 받을 때만 볼 수 있고 나머지 시간에는 얼굴도 보기 어렵다. 이는 왜곡 됐거나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전공의 과로사' 기획은 국민들에게 전공의들이 왜 과로할 수밖에 없고 전공의 과로가 환자의 안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전공의를 둘러싼 근무일지를 재구성해 보여주고 전공의 과로 현상이 반복되는 원인을 짚은 다음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한다.

전공의 과로사
① 전공의는 정말 과로에 노출돼 있을까... 대학병원 외과 전공의의 36시간 근무일지
전공의 죽음 내몰고 환자 안전 위협하는 '전공의 과로 현상' 반복되는 원인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질적 수준 높이는 열쇠... '전공의 과로사' 문제 해결할 실마리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전공의들은 병원에서 어떤 일을 하기에 밥 먹고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쁘고 과로에 내몰리는 것일까. 한 대학병원 외과 전공의의 경험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2년차 외과 전공의의 36시간 근무일지를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전공의들의 36시간 연속근무와 전공의 과로사, 나아가 환자의 안전까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짚는다.

환자의 상태를 시시각각 진단하고 수련도 해야 하는 전공의

전공의 1·2년차는 주치의로서 병동, 중환자실, 응급실 환자들의 상태를 시시각각 진단하고 처방하고 전공과 별로 기초적인 수련을 한다. 전공의 3·4년차는 외래 진료, 수술 참여, 타과 자문 등 보다 심화 과정의 수련을 한다.

05:00 
어스름이 깔린 새벽, 세 개의 알람이 동시에 울린다. A 대학병원 2년차 외과 전공의 K(28)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스마트폰 알람과 머리맡 알람 시계, 책상에 놓인 알람 시계를 차례로 껐다. K는 당분간은 또 병원 밖을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제 간만에 병원을 나와 숙소에서 잤다. 전공의 숙소는 병원 바로 인근에 위치하지만, K는 평소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한다. K는 고작 몇 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병원으로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06:00
K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했다. 병동은 고요한듯 하면서도 일찍 깬 일부 환자들로 인해 부산스러웠다. 환자들이 모두 깨고 아침이 시작 되기 전에 병동 주치의를 맡은 1·2년차 전공의들은 밤 사이 자신의 환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차트를 확인했다. 병동 주치의인 K도 자신이 맡은 환자 35명의 차트를 빠르게 읽었다. 지난 밤 당직이었던 전공의가 인수인계를 하면서 주의할 만한 증상이 있었던 환자에 대해 알려줬다.

07:00  
매주 수요일에는 외과 콘퍼런스가 열린다. 전공의들이 환자들의 사례와 그에 따른 대처를 어떻게 했는지 발표하고 검토 받는 날이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K는 스마트폰 어플로 다 보지 못한 나머지 환자들의 차트를 확인했다. 콘퍼런스를 마치면 바로 회진을 해야하기 때문에 지난 밤 사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

08:00
콘퍼런스가 끝나고 병동으로 돌아온 K는 빠르게 혼자서 회진(pre-rounding)을 돌았다. K는 오전 8시에 시작하는 수술을 준비를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다. 병동에서 자리를 비우기 전에, K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급하게 해야하는 처방을 하고 협진 의뢰서를 작성했다.

08:30
외과 전공의 2년차인 K는 수술실에서 외과 병동 환자가 마취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수술이 시작되자 교수의 지시에 따라 개복을 했다. 이날 수술에는 K 외에도 교수, 임상강사, 3년차 전공의가 참여했다. 수술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교수는 K에게 병동 일을 보러가라고 했다. K는 정오가 되어서야 수술실을 나왔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밥먹지 못하는 전공의의 가방 속에는 빵과 바나나가 늘 준비돼 있다

전공의법에 따라 전공의들은 휴게시간을 보장받도록 돼 있다. 휴게시간이란 근로자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전공의들은 휴게시간에도 실질적으로 일을 한다. 수술실에서 연락이 오거나 병동에서 콜이 왔을 때 휴게시간을 이유로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00 
병원 내에는 분명 직원식당이 있지만 K는 병원 식당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병원 직원이 식당을 이용할 때는 카드로 찍고 달마다 한 번에 결제를 하는데 지난 달 식당 결제금액은 7000원이 나왔다. 3500원짜리 밥을 파는 직원 식당에서 끼니를 챙겨먹은 횟수는 지날 달에 고작 2번에 불과했다. 

병동으로 돌아온 K는 하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였다. 낱개로 포장된 작은 초콜릿이 한 주먹 나왔다. 그 중 하나를 꺼내 한입에 쏙 먹었다. K는 초콜릿으로 허기를 채우며 자신이 맡는 환자들의 내일자 처방을 했다. 

처방 업무는 주치의가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증상을 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약물투여, 검사, 처치 등을 지시하는 것이다. K는 협진 요청서를 쓰고, 퇴원할 환자에게 필요한 퇴원 처리를 한 다음, 소독이 필요한 환자들을 찾아가 상처를 소독했다.

초콜릿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헛배만 부른 것 같았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니까 피로도 풀리지 않고 계속 축적되는 기분이 들었다. K는 전공의를 시작한 뒤로 언제 마음 놓고 편하게 한 끼를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먹을 것만 보면 재빨리 허겁지겁 먹었다. 

14:00
K가 교수와 함께 회진하는 시간이다. 회진을 돌기 전에 병동 스테이션에서 환자들의 차트를 보며 검사 결과 등을 확인했다. K는 주치의로서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브리핑을 하면 교수와 임상강사는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회진을 한 번 도는 데에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K를 비롯한 주치의들은 교수 앞에서 환자에 대해 설명하고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살펴 보고 "수혈이 필요하다"라거나 "퇴원해도 된다"라는 등의 말을 하면 K는 메모를 했다.

15:00
회진을 마치고 K는 회진때 교수가 언급한 내용을 정리해 처방을 하고 의무기록을 작성했다.

16:00
오전에 들어갔던 수술실에서 다시 오라는 연락이 왔다. K는 서둘러 수술실로 갔다. K는 외과 전공의 2년차로서 수술이 마무리 될 때 다시 수술에 참여해 수술하기 위해 개복했던 복부를 꿰매는 역할을 했다. K는 수술을 마무리하고 수술실을 나왔다.

17:00
병동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K는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 입원한 환자의 입원 기록을 쓰고 이튿날 수술을 앞둔 환자의 수술 동의서를 받느라 분주했다. 자신이 주치의를 맡은 환자 35명에게 필요한 다음날 처방을 미리 했다. 환자들은 예고 없이 아팠고, 수술 전후로 다양한 증상을 보였다. 

어느덧 저녁 7시가 가까워졌다. 점심도 거른 상태에서 일을 하다보니 현기증이 일었다. K는 할 일을 반도 마치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저녁을 챙겨먹는 일도 미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K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의국실로 향했다. 캐비닛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에는 바나나 한 개와 유통기한이 긴 편의점 빵, 컵라면과 겉포장이 뜯어져 삐죽 나온 나무젓가락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K는 바나나 껍질을 벗겨 우걱우걱 빠르게 씹어 삼켰다. 그 사이 콜이 울렸다. K는 다시 병동으로 향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당직 근무하는 전공의는 콜이 울리지 않아도 잠들지 못한다

전공의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낮에 정규 근무를 하고 추가로 야간 또는 주말에 당직 근무를 한다. 전공의 당직 근무는 여느 회사처럼 당직을 하면 이튿날 낮 근무를 쉬는 교대 근무와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전공의들은 당직 근무 중에 콜이 울리지 않아도 잠들지 못한다.

19:00
주간 근무를 마친 전공의들이 퇴근하고 본격적으로 당직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제 때 병원을 퇴근하는 전공의는 한 명도 없다. 병동 스테이션에서 데스크에 앉아 처방을 하고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전공의들은 미동조차 없다. 전공의들은 매일 자신의 업무를 소화하느라 오후 9시에 퇴근했다. 전공의들의 업무는 교수도, 다른 전공의도 대신할 수 없다. 

20:00
오후 5시에 시작해 저녁도 먹지 못하고 계속 했던 업무가 3시간만에 끝났다. 오늘 당직 근무를 하는 K는 자신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당직 업무를 위해 인계를 받았다. 병동의 다른 주치의들이 자신의 환자들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상태를 일러줬다. 특별히 지켜봐야 하는 환자가 있으면 추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줬다. 인계를 받는 데 꼬박 1시간이 걸렸다.

K가 당직 업무를 위해 밤에 홀로 봐야 하는 환자는 무려 70명이었다. 중환자가 많은 병동인 만큼 K는 당직을 설 때마다 평소보다 예민해졌다. 밤에는 병동 내 의사 수는 줄어들고 언제 갑자기 긴급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K는 70명의 환자 차트를 일일이 확인했다. 환자 별로 복용 약을 파악하고 수술한 지 얼마나 됐는지, 오늘 밤 유심히 살펴야 하는 환자는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21:00
병동 당직실은 열악하다. 침대로 꽉 찬 당직실에는 PC조차 없었다. 새로운 처방을 하려면 병동 스테이션으로 나가야 했다. K는 잘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침대에 걸터 앉아 부은 종아리를 매만졌다. K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제때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채로 일을 계속해 날이 갈수록 컨디션이 나빠졌다. 

K는 자신의 과로가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을 하는 실수로 이어질까 걱정했다. 잠깐의 숨도 돌릴 틈 없이 콜이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환자가 피를 토했어요!" K는 평소보다 몸이 무겁다고 생각하며 병동 스테이션으로 달려 나갔다.

22:00
K는 내과 당직팀에 연락해 피를 토한 환자에게 응급 내시경을 통한 지혈술을 시도했지만 출혈을 잡지 못했다. 수술적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K는 바쁘게 움직였다. 당직 근무를 하는 전공의는 병동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응급 수술을 조율해야할 때면 마취과, 수술방 간호인력, 응급수술 당직 전공의들에게 모두 연락을 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는 등 준비를 해야 한다.

23:00
콜이 빗발쳤다. 응급실을 통해서 온 환자에게 처방을 하기도 전에 또 다른 콜이 왔다. 환자 보호자가 주치의를 면담하게 해달라고 재촉했다. 해당 환자는 K의 주치의를 맡는 환자가 아니었다. K는 주치의 면담은 내일 오전에 할수 있다고 사정을 차분히 설명했지만 환자 보호자는 당장 면담해야겠다며 주치의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K는 환자 보호자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사이 콜이 울렸다. 

24:00
많을 때는 하룻밤 사이에 70~80번의 콜이 왔다. 병동 환자 한 명이 상태가 악화돼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이식 수술이 많은 날에는 하룻밤에 3건이 이뤄지기도 했다. K는 당직실에서 대기를 하더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쪽잠을 자더라도 깊은 잠은 잘 수 없었다. K는 당직 근무를 할 때마다 배가 되는 긴장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녹초가 됐다. 전공의는 콜이 울리지 않아도 편하게 쉬지 못하고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02:00
다시 콜이 왔다. 병동에서 환자가 숨이 넘어간다는 연락이었다. K가 병실에 도착해 환자를 보니 맥박이 늘어지고 있었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다. K는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담당 간호사에게 병원 내에 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전체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심폐소생술은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의료진 한 명이 3분 이상 할 수 없다. 인턴, 당직 근무 중인 내과·외과 의사들, 중환자 의학과 긴급대응팀까지 모두 심폐소생술이 긴급하게 필요한 환자가 있는 병실로 달려왔다. 안내 방송을 듣고 도착한 의료진들은 순식간에 역할을 나눠 맡았다. 누군가는 중환자실에 연락을 취하고 누군가는 처방을 내리고 누군가는 상황을 보고했다. 

환자의 심장 박동이 돌아왔다. 응급상황이 종료되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갔다. K는 다른 의료진들이 떠난 후에 잠시 환자를 살펴보다가 병실을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과로하는 전공의들은 탈모, 피부질환, 방광염에 시달린다

적절한 수면시간과 영양 있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건강에 위험 신호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과로를 하는 전공의들은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해 탈모, 피부질환 등을 앓는다. 바빠서 화장실조차 자주 가지 못하는 전공의들은 방광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03:00
K는 당직실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지 않고 삐걱거리는 침대에 대각선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3시였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잠깐 눈만 감고 쉬려고 했다. 어디선가 벨소리가 들렸다. 콜이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3시 20분이었다. K는 자신이 잠든 줄도 몰랐다. 신발을 벗지 않았기 때문에 K는 그대로 일어나 병동으로 갔다. 환자가 열이난다는 내용이었다. 

05:00
K가 눈을 뜬 지 24시간이 됐다. 응급실에서도 지속적으로 콜이 왔다. K는 당직 근무 중에 1시간 30분 이상을 연속으로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당직 근무를 하는 일은 여느 회사에서 만일의 비상상황을 위해 대기하는 당직 근무와 차원이 달랐다. 병원에서 당직 업무는 대기가 아니라 일상 근무와 같다. 환자들은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갑자기 아팠다. 당직 업무는 오히려 낮에 하는 일상 근무보다 더 힘들었다. 병원 내 의료 인력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의사 한 명에게 쏠리는 부담은 늘어났다. 

K는 인턴부터 전공의 2년차가 된 지금까지 2년 넘는 세월을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제때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 당직 근무를 한 다음날 낮에는 쉬게 해줬으면 하고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전공의들에게 당직 근무는 일주일에 5일 주간에 하는 업무에 추가된 일이다. 

전공의 36시간 연속근무는 특별한 날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K를 포함한 많은 전공의들이 일주일에 적게는 1번, 많게는 3번까지 36시간을 연속으로 일했다. 이런 근무 환경은 전공의들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다. 

36시간 근무에 자주 노출된 전공의들은 입안이 늘 헐어 있거나, 탈모가 생기거나, 피부질환이 생기거나, 손발톱이 갈라지거나,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을 앓는 등 다양한 증상에 시달렸다. K도 몸에 증상이 생겼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다리가 붓고 아팠다. 몇 개월 전부터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06:00
주치의들이 병동으로 출근했다. 실제 근무는 오전 7시부터 시작하지만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전공의는 없다. 제 시간에 출근해서는 하루 일과를 다 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시간 이른 출근은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에 따른 임금도 당연히 월급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주치의들은 밤 사이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K는 주치의들에게 당직 근무를 서며 있었던 환자 상태 변화를 인계했다. K는 당직의에서 주치의로 돌아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 됐다. K는 퇴근 대신 어제와 반복되는 또 다른 하루를 준비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전공의 과로는 환자의 안전과 전공의 건강을 위협한다

전공의 과로가 반복되면 전공의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고 환자의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찾는 병원이 도리어 건강에 해를 끼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07:00
데스크톱 앞에 앉아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던 중이었다. K는 눈앞이 암전이 된 것처럼 순간 깜깜해졌다가 환해졌다. 당직 후 다음날 낮에 정규 근무를 할 때면 멍한 상태가 계속 됐다. 판단력도 흐려졌다. 24시간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했더니 손이 떨리고 입술 끝이 마비된 것처럼 얼얼했다. 옆에 있던 동료 전공의가 갑자기 K의 어깨를 흔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든 것이다. 모니터에는 잘못된 처방이 기록돼 있었다. K는 깜짝 놀라 재빨리 처방을 고쳤다. 이러다 환자를 착각해 잘못 투약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08:00
오전 8시. K는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 준비를 했다. 수술 도구를 나르다 떨어뜨렸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술 보조를 하는 일은 힘들다.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려고 K는 입 안쪽의 볼을 깨물었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처졌다. 바닥이 몸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13:00
K는 오늘만큼은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병원 내 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누군가 급하게 옆을 지나쳐 갔다. K는 자리에 앉아 바로 옆자리에서 주인 없는 식판에 붙은 포스트잇을 빤히 바라봤다. 포스트잇에는 '○○과 ○○○ 전공의. 곧 돌아옵니다. 치우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K는 밥을 국처럼 마시듯 빨리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평소 K는 병원 식당에서 줄을 서서 밥을 받아 먹는 데 걸리는 15분의 시간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은 '고작 15분 시간 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의아해 하며 '밥은 제대로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 했지만 K에게는 끼니를 챙겨먹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14:00
어제와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교수님과 회진을 도는 동안에 K는 자기가 환자 처방과 향후 치료 방법에 대해 제대로 듣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메모를 했다. 

17:00
K는 병원 스테이션에서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가 찾아와 컴플레인을 했다. K는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어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웃을 기력이 없었다. K는 환자 보호자가 말하는 환자가 자신이 주치의를 맡고 있는 환자인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보호자의 말이 고장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뭉개져서 들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20:00
전공의들의 업무는 늘 많았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전공의 연차에 따라 맡는 업무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당직표 정리 등 잡무도 해야 했고 교수들을 대신해 처리하는 일도 많았다. K는 끊이지 않는 일의 굴레 속에 갇혀 가까스로 버텼다. 수련병원을 언제 그만두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고,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들이 계속됐다.

K는 퇴근하는 대신 당직실로 향했다. 전공의 기숙사로 퇴근을 하고 내일 새벽에 다시 병원으로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K는 침대로 쓰러졌다. 전공의 K가 정확히 38시간 근무를 마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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