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면 다 걸리는 '법'이 있다

간호사 조제 18억 환수, 108일 업무정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놓고, 걸리면 아예 의료기관 문을 닫게 만드는 정부.
 
부산의 K병원 이야기다.
 
이 병원은 2007년 7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약사가 아닌 간호사 등의 무자격자들이 입원환자 약을 조제하다가 적발됐다.

K병원 H원장은 약사법 위반, 사기죄로 기소돼 2013년 대법원에서 2000만원 벌금형이 확정됐다.

형사처벌은 시작에 불과했다.
 
건보공단은 무자격자 조제에 따른 약값과 조제료 17억 6천여만원을 환수했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108일 업무정지처분 예고를 받았다.
 
200병상급 중소병원에 대해 108일 동안 진료를 금지시키는 것은 사실상 폐업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의료법 시행규칙은 연평균 1일 조제건수가 80건 이상이면 약사를 두도록 했다.
 
조제건수가 여기에 미치지 않으면 약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K병원은 하루 평균 원내조제 건수가 50건 미만이어서 약사를 두지 않아도 되지만 주3일 근무하는 파트타임 약사를 고용해 조제와 마약류 의약품 관리를 맡겼다.
 
쟁점은 약사가 없는 시간대에 누가 입원환자용 약을 조제하느냐다.
 
약사법 제23조 제1항에 따르면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
 
물론 의사가 '직접 조제'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조제 지시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가 간호사 등에게 조제행위를 지시할 때에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옆에서 지켜볼 정도로 '구체적이고 즉각적으로 지휘 감독'이 가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때문에 비약사 조제는 어느 병원이든 걸면 걸 수 있는 폭탄일 수밖에 없다.
 
 
24시간, 365일 약사 근무할 수 있나?

따라서 약사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법 시행규칙상 약사 고용 의무가 없더라도 사실상 약사를 고용해야 한다.
 
그것도 약사가 24시간, 365일 조제하려면 최소 5~6명이 필요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2년 발간한 '병원경영분석' 통계집을 보면 100병상 당 약사수는 평균 1.5명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기관 종별로 보면 상급종합병원이 3.3명, 300병상 이상이 1.7명이지만 160~299병상은 0.8명, 160병상 미만은 1.2명, 병원은 0.9명으로 집계됐다.
 
상근 약사가 있더라도 무자격자 조제로 걸면 웬만한 급성기병원을 다 걸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언주 의원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시간제 근무 약사도 없이 약사 1명만 근무하는 종합병원도 110곳이나 됐다"면서 "결국 약사가 퇴근하거나 쉴 경우 보조원들이 조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약사를 고용할 정도로 충분한 조제료 수가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K병원이 한달에 받은 조제료는 약 280만원.
 
약사 1명 월급도 안되는 수준의 조제료를 주면서 24시간, 365일 약을 조제하도록 상근 약사를 다수 고용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다 동일한 무자격자 조제로 적발되더라도 일부 병원은 약제비를 환수하는 선에서 그치는 반면, 강산병원처럼 운이 없으면 환수뿐만 아니라 환수액의 3~5배에 달하는 과징금 폭탄을 투여하는 게 현실이다.
 
의사는 의료법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조제 지시할 권한이 있는데 약사법으로 인해 의료행위가 제한을 받는 형국이다.
 
H원장은 "의사의 처방전 발행은 조제 명령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수행할 의무가 있다"면서 "의사의 조제권은 간호사의 조제보조권을 지휘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그는 "대법원 판례와 같이 약사법으로 의사의 조제권과 간호사의 조제보조권을 제약하면 의료권이 제약을 받게 돼 병원에서의 의료행위가 사실상 약사가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다"면서 "병원에서 조제 투약이 반드시 약사가 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K병원은 보건복지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인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정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 싸움에서 지면 진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게 H원장의 말이다.

#약사 # 조제

안창욱 기자 ([email protected])010-2291-0356. am7~pm10 welco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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