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방화 살인사건’ 재발 방지법 키워드 강제입원 아닌 ‘정신질환자 자기 결정권’

제철웅 한양대 법전원 교수, 응급대응체계 정비·권역별 위기쉼터 설치·동료지원가 양성 등 제안

홍정익 복지부 과장, “법 개정 장기적 고민 필요...정신응급기관 지정·수가 시범사업 예정”

 29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주최로 ‘진주참사방지법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최근 발생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치료 과정에서 정신질환자의 자기 결정권 행사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이 논의돼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번 법안은 병원에 입원한 경험,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본 경험 등을 가진 당사자들이 스스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9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주최로 열린 ‘진주참사방지법 입법공청회’를 통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논의가 이뤄졌다.
 
발제자로 나선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신질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정신의학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절충한, 보다 인권 친화적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의료계는 정신질환 치료의 최종 목표는 사회 복귀라며 급성기 치료의 응급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패널 토론에 참여한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복지법의 기본이념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주체 선정 문제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오는 9월부터 정신응급의료기관 지정 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신질환자 자기 결정권 최대한 존중...응급대응체계 정비·동료지원 필요”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를 통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며 정신의학의 전문성과 절충되는 관점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철웅 교수는 “진주 참사 책임 소재는 1차적으로는 경찰에, 2차적으로는 응급대응체계 미비에, 3차적으로는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는 데 있다”며 “중증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지내는 것을 최대한 줄이고 상호 연결돼 생활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안 중 시급한 부분을 정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제 교수는 “자기 결정권은 생명권과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자기 결정권과 치료권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에 선 것이다”라며 “위험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기 결정권을 완전히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관리 중심의 정신질환 치료, 특히 강제치료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인류 역사의 오점이다. 강제입원 역시 매우 짧은 시간에 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는 그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논의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초안이 정신의학 전문성 존중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간 균형을 이룬 매우 절충적 법안이라고 했다.
 
제 교수는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 안전과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은 상호대립되는 관계에 있다. 이로 인해 전자의 비중이 더 커질 때 후자는 더 보호될 수 있다”며 “‘자기 결정권에 대한 침해=강제입원’은 언제나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초안의 주요 내용은 △권역별 정신질환자 등을 위한 위기쉼터·일상쉼터 설치·운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응급대응팀·정신건강상담용 긴급 전화 운영 △입·퇴원 등에 정신질환자 본인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는 절차보조서비스 신설 △동료지원가 양성·지원 등이 골자다.
 
제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이념에 충실한 응급대응체계, 중증 정신질환자 고립방지 대책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다수의 동료지원자를 서비스 제공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당사자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측면도 있다”며 “이런 조치가 강제적인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조치, 외래치료명령제 확대 조치보다 정신건강복지법 기본이념에 충실한 효과적 대응방안이다”라고 말했다.
 
의료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최악...응급대응 중요”
 
패널 토론에 나선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진주 참사’가 시사하는 문제점을 제시하며 급성기 치료의 응급대응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준호 법제이사는 진주 참사에서 “7번의 경찰신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피해자의 가족이 안인득의 전과와 정신병력에 대한 조회를 통해 적절한 조치까지 요청했음에도 일반 소동 신고로 처리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법제이사는 “보호관찰을 받았음에도 이후 지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국가의 관리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정신질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입원치료를 하려 했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의 허점으로 모든 형태의 비자의 입원이 무력화됐다”라고 말했다.

최 법제이사는 “대한민국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최악이다”라며 “정신질환 치료의 최종 목표는 사회 복귀다. 현재와 같이 편견이 낙인이 되는 상태에서 사회 복귀는 불가능하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급성기 치료의 응급대응을 강조했다.

최 법제이사는 “응급대응이 조기진단, 조기치료와 합쳐지면 병의 만성화를 막아 장애를 없앨 수 있다”라며 “(개정안에서 제시된) 쉼터는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최 법제이사는 “응급상태에서 쉼터로 갈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응급상태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환자가 병원을 경험하고 (치료 등이) 필요가 점차 없어지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지 응급상황에 이뤄진다면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법 개정에 앞서 재정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완 광주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단장(전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실제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재정 투자와 인력 보강이 우선돼야 한다”며 “재정 투자 없는 법 개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정신건강 분야 지원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신체 질환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며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의 투자는 우리 사회의 안전과 건강으로돌아오는 효과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법 개정안 상당 기간 검토 필요...정신응급기관 지정 수가 시범사업 예정”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과장은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정익 과장은 “(법 개정안에 대한) 상당 기간 검토가 필요하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지난 2016년 개정 이후 기본이념이 굉장히 숭고하게 돼 있다”며 “기본이념을 잘 구현하도록 조문이 만들어졌고 부족한 부분은 법 발의·개정 통해 차근차근 보완해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홍 과장은 “숭고한 가치를 잘 지켜야 하는데 결국 남는 것이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라며 “도저히 여건상 할 수 없어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다.
 
홍 과장은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제도권화가 되지 않았다. 제도권으로 넘어오면 규제가 들어가게 된다”라며 “시설, 인력, 장비, 비용 책정 등에 관한 행정적 고민이 생긴다. 신중하게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6월부터 2년간 전국 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이 시행됐으며 경기 화성시는 정신질환자형 선도사업을 담당한다.

홍 과장은 “화성시에서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하고 있다. 자립체험주택 등을 운영하는데 퇴원하고 재활 시설로 가거나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단기간 길어도 3개월 정도 이용할 수 있다”라며 “본인 스스로가 의료기관 이용,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쉼터가 있다면 선택지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 포함시켰다”라고 말했다.

또한 홍 과장은 “진주 사건 이후 절차보조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는 동료 지원에 관한 부분인데 시범사업을 하면서 훈련받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현재 훈련받은 동료 지원 양성 프로그램 표준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9월부터 정신응급의료기관을 지정, 건강보험 수가 시범사업이 실시된다. 홍 과장은 “정신질환자가 입원하고 싶을 때 입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취지다”라며 “정신의료기관 병상 많은 곳이 응급상황에 대응할 만큼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호실을 마련하고 적정한 수가를 제공하기 위해 정책을 준비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진주 사건 # 정신건강복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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