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억6000만원 산청의료원 의사의 실상은 '염전노예'...외래·내시경·초음파에 응급실·주말·야간 당직까지

'업무대행의사'로 군수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근로계약서 작성 불가...의료사고 발생 책임도 의사에게 전가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네이버 지도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공공의대 및 의대 정원 확대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지방 의료인력 부족. 3억원 이상 고액 연봉에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는 지방의료원들의 채용 조건의 실상은 법적책임 및 근로 조건이 드러나지 않는 깜깜이 계약에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신분 등 악조건 때문이었다. 

지방의료원들은 의사 지원자가 없는 이유에 대해 단순히 지방의 교육‧생활 여건 문제 혹은 의사 인력 부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와 의료원 지원 경험이 있는 의사들은 이유가 따로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의사들은 "사회 문화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이라는 지리적 악조건에 더해 과도한 근무량과 부당한 근무 조건, 책임 소재에 대한 부담, 2년 계약직이라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얹어진 지방 근무는 3억원대 연봉 그 이상을 제시해도 의사들을 채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8일 메디게이트뉴스에 제보한 내과 전문의 A씨는 최근 경상남도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내과 전문의를 채용하기 위해 3억6000만원 연봉을 제시했다는 기사를 보고 실제로 산청군에 지원했다가 깜짝 놀란 사연을 전했다. 그는 다른 의사들에게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익명으로 인터뷰했다. 

주 5일 80시간 근무라더니…일 80명 외래에 내시경‧초음파, 응급실, 주말‧야간 당직까지 요구
 
산청군보건의료원 채용 공고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10개월째 내과 전문의가 공석이다. 지난해 12월 재차 내과 전문의 채용공고를 냈지만 여전히 공석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2년 계약 '업무대행의사' 자격 조건으로 3억6000만원 연봉을 제시한 의료원은 채용 공고를 통해 ▲외래 및 입원환자 진료 등 ▲기타 채용자가 지정하는 업무 ▲일반진료 및 건강상담 등의 업무를 명시하고 있었다. 

A씨는 연고가 없는 지방 의료취약지라는 단점이 명백하지만, 주5일 8시간 근무에 연봉 3억6000만원이라는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해 산청군의료원에 진지하게 채용에 관해 문의했다.

의료원은 애초 주 5일, 하루 8시간 환자 약 80명에 대한 '내과 외래' 근무만 해도 된다는 근로 조건을 약속했지만, 문의가 거듭되자 의료원 측은 점차 응급실 근무 및 주말, 야간 당직 근무 등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A씨는 "하루에 80명의 내과 외래 환자를 보면서 응급실 진료를 병행하는 것은 어렵기에 응급실에 가 있는 동안은 외래를 닫고 환자를 집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담당자가 그것은 안 된다며 '80명 진료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응급실 진료하면서 외래도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아닌 담당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굉장히 불쾌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향후 산청군의료원 응급실 근무 상황이었다. A씨에게 응급실 진료를 요청한 산청군의료원은 현재 응급실에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사 7명 중 4명이 올해 전역 예정인데, 향후 공보의가 몇 명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A씨는 "처음에는 응급실에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제가 가서 도와줘야 하는 식으로 말했는데 알고 보니 응급실에 내과 의사가 없고, 의사 4명이 그만둘 예정인 상황이었다. 산청군의료원에 유일한 내과 전문의로 들어가게 되면 응급실에 오는 내과 환자를 제가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 써본 적 없다”…군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의사’ 업무지시 가능
 
산청군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에 관한 조례

점차 추가되는 근로 조건에 A씨가 근로계약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지만, 산청군의료원 측은 가지고 있는 근로계약서가 없다며 업무 계약은 산청군의 조례를 따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산청군의료원은 정부가 주체가 돼 설립하는 공공의료원과 달리 산청군 보건소에서 만든 지역보건의료기관이다. 따라서 산청군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의사’를 채용하고 있었다. 공무원이 아닌 '업무대행' 신분은 사실상 의사가 자영업자 신분으로 의료원의 보건의료사업을 대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씨는 "처음엔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줄 알았는데, 업무 대행으로 채용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례를 찾아보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대신 '군수는 지역보건의료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업무대행자를 지도‧감독하고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으며, 업무대행자는 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어떻게 보면 군수가 시키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게다가 업무대행자인 의사가 '진료업무에 관한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경우' 군수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어 사실상 업무대행의사 업무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근로계약서에 시키는 것은 다 하겠다고 쓸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업무를 구체화해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말이 본격적으로 바뀌면서 내과 외래 외에 다른 환자가 많을 때는 다른 과 환자도 봐주고, 내시경, 초음파 업무도 해달라고 업무를 추가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실상을 알고 나니 산청군의료원은 처음 얘기했던 주5일 야간, 주말 당직 없는 내과 외래의사를 뽑는 게 아니라, 시키는 것은 다 하는 내과 의사를 뽑는 것이었다. 야간, 주말 당직을 안 시키겠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고, 업무량이 방대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근로계약서를 써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지만, 업무 계약은 계약대로 하고 업무 내용은 병원장과 따로 상의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더 가관은 A씨가 기존 봉직의사들이 산청군의료원과 맺은 근로계약서를 달라는 요구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는 데 있다.

의료사고 발생 책임도 의사 개인에게…2년 계약직 ‘업무대행의사’ 신분 불안감까지

A씨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도 개별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의료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사 개인이 이를 책임지라는 뜻"이라며 “악조건을 딛고 지방 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게 의료사고 책임마저 떠넘긴다는 말에 학을 뗐다”고 전했다.

그는 “업무대행의사로서 2년 계약직이라는 것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 굉장히 불안정하다. 특히 산청군에서 봉직의를 하다가 2년 동안 돈을 모아도 갑자기 개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 불안정한 신분도 큰 단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A씨는 "무엇보다 계속해서 근로 조건 등에 대해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정말 연봉 3억6000만원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라며 "무엇보다 3억6000만원 이상을 준다고 해도 신분의 불안감과 혹시 모를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한 부담에 더해 투명하게 해야 할 일이 뭔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일단 와서 일하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태도에서 믿음이 사라져 함께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지방의료원에도 채용문의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과도한 업무량과 야간 및 주말 당직 등 과도한 업무강도 등을 요구했다"며 "지방의료원이 억대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들이 오지 않는다며 의사들이 '배가 불렀다'는 식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을 살펴보면 노예계약이나 다름 없다"고 분노했다.

실제로 목포시의료원 역시 내과 전문의를 채용하면서 2억 중반 수준의 연봉에 일반 외래 업무에 더해 건강검진센터 업무를 추가하는 조건에 더해 중환자실 환자 진료, 일반 병동 환자 진료, 응급실 환자 진료, 내시경 업무 및 신장내과의사의 공석 상황 발생 시 투석 업무 등 과도한 근무 조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의사들 사이에는 '블랙리스트 직장'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텃세에 고통받거나, 수익 위해 도 넘은 업무 지시 ‘비일비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신정환 회장은 "실제로 지방의 의료취약지 공공의료원이나 민간병원, 지역보건의료기관 등은 공중보건의사들은 물론 봉직의에게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협의회 차원으로 민원을 받아 병원 측에 시정을 요청하면 그제야 계약서를 써주거나 계약서를 쓸 바에는 공보의의 배치를 취소하겠다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의료취약지는 인적 인프라는 물론 의료 기구 및 시설 등 인프라도 부족하고, 의료 분쟁 등의 상황에서 책임소재 갈등이 벌어질 경우 의사들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지방 특색이 커 지역 공무직이나 공무원의 텃세에 타지에서 온 의사들이 고통받는 일도 많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따돌림이라든지, 업무 감시와 부당한 업무지시 등도 있고, 심지어 의료원 수익을 위해 의료법 위반 업무를 지시해 문제가 된 사례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은 "게다가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진료의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의사들은 진료에 한해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료원 수익을 위해 의사의 진료 행위의 제약을 받거나 원하지 않는 업무에도 땜빵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원 및 보건소에서 설립한 지역보건의료기관 등은 사실 운영하는 것 자체가 공무원들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의료 전문성이 많이 부족해 운영 면에서 미숙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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