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

성추행한 선배 의사가 당당한 아이러니

[기고]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모 의과대학에 윤리강의를 부탁 받고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여학생이 드릴 말씀이 있다며 다가왔다. 여학생은 "의대 여학생들이 임상실습을 도는 기간에 선배나 선배 의사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선배의사로서 어떤 대책이 있으시면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실제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하냐고 물었을 때 여학생회에 알려진 성추행 사건들은 많은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몰라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의학교육은 특성상 도제식 수련과정을 가지고 있다. 도제식 수련과정이 전문 지식과 술기를 배우고 익히는데 큰 장점이 있지만 서로가 신뢰하고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인권이 무시되고 우월적 권위에 피해를 볼 수 있는 교육 환경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의사집단 안에서 후배 의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여학생이나 여자 의사에 대한 성추행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폐쇄적인 의사집단 속성상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신분 노출을 두려워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봐 피해 사실을 쉽사리 노출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발생 건수는 외부에 노출된 사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작 가해자 선배 의사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반면 피해 학생들이나 피해 의사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이면서도 자책감에 빠져 마치 자신이 죄인인 양 웅크리고 살아가고 있다.

동료들의 위로와 배려보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혹시라도 수련에 불이익을 받게 될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일은 폭행사건이나 성추행 사건이 발생되어 외부로 알려졌을 때 피해 학생이나 피해 의사들에 대한 보호나 배려가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일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만나지 않도록 즉각적인 조치에 들어가야 하지만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내도록 방치하는 끔찍한 상황들이다.

최근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전공의는 수련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고, 폭행을 당한 전공의들은 가해자 교수와 함께 어색한 의국 생활을 하고 있다. 가해 교수가 벌을 받고 격리되는 것이 맞는 일인데 피해자가 더 상처와 불이익을 입고 있다.
 
이런 일들이 방기되고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나서서 의사들의 잘못된 치부를 고치겠다고 법으로 간섭을 할 것이고, 그 여파를 타고 의학교육이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관련 교육기관단체와 의사협회가 나서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의사단체 내부적으로 인식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나 수련병원에서 피해 신고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호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반복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 의과대학들과 의사단체에서는 피해자의 비밀을 보장하는 신고센터를 만들어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

또한 피해 전공의나 학생들에게 대한 법적 보호자 제도를 만들어 피해자들이 혹이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지, 무언의 압력으로 고통 당하지 않는지 이들이 수련을 마치고 사회에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주기적인 면담을 통해 상황을 관찰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수련활동에 참여하는 교수나 전공의들에게도 폭행과 성추행 방지를 위한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행동서약을 받는 행사를 매 해 실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의사들이 이러한 병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피해자가 날로 많아 질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엄격한 처벌이 있어야 하겠고, 폭행을 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 학생과 후배 의사들이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도록 세심한 배려와 보호조치를 해주어야 한다.

#의사 # 성추행 # 이명진 # 메디게이트뉴스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