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의료환경이 안좋다?

서성희 원장의 캐나다 개원 이야기③




오늘 오전 Public Health(우리나라의 보건소에 해당)에서 공문이 날라 왔다.

메르스 감염에 관한 것이었는데 메르스 증세가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반드시 여행력을 물어보고 즉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메르스 감염에 관해 South Korea가 적힌 공문을 읽고 있으려니 참으로 가슴이 안타까웠다.

얼마전 BC주의 애보츠포드(Abbotsford)시에 사는 서양인 환자가 우리나라의 한 대학병원에서 목으로 전이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어마어마한 수술비 중에서 일부만 내고
왔다는 소식을 CBC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앞뒤 얘기 다 제쳐두고 '캐나다의 의료 환경이 안좋다', '역시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우수하다' 등의 인터넷 댓글과 일부 페이스북의 글을 보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로서 소견을 적어보려 한다.

과연 캐나다의 의사들이 잘못을 했는가.

정확한 사정이야 환자 본인과 가족이 잘 알겠지만 현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놓고 보자면 어쩌면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떤 암으로 의심이 되면 tissue pathology를 원하게 되고 그것이 확정되어야야만 수술적 제거를 할 것인가, 항암제를 사용할 것인가, 방사선 치료를 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나라처럼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 이틀 안에 이뤄지는 경우는 응급실을 통하는 것 외에는 흔하지 않다.

이러한 대기시간을 줄여 보기 위해 보건당국에서도 Lung Cancer Treatment Initiative를 가동하여 흉부 엑스선에서 암으로 의심되는 소견이 보이면 이를 의뢰한 가정의학과 의사 뿐 아니라 흉부외과로 이 결과가 전달되어 진단 및 수술로 이어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려 노력한다.

또한 Screening Mammography Program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에서는 이상 소견을 low, medium, high suspicion의 단계로 구분하여 환자의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영상의학과로 바로 예약 통보가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50세 이상의 건강한 시민을 대상으로 대변잠혈검사를 통하여 양성으로 판명될 경우 지난 50년간의 병원 기록을 조회해보고 만약 대장내시경을 한 경험이 없다면 이 역시 예약이 신속하게 잡히게 된다.

캐나다는 전국민 무상의료

캐나다는 전국민 무상 의료보험제도를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아주 드물게 무릎관절 치환술 등과 같은 선택적 수술에 한해서 개인에게 수술비를 청구하여 수술을 앞당겨 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개개인의 경제적 사정과 무관하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학적 필요성 및 질환의 중대성을 놓고 판단하며 이 원칙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장기간 입원 후 퇴원을 할 때도 수납하고 와야 하는 원무과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일반 개인 병원 뿐 아니라 응급실에 갈 때도 본인의 사진이 들어있는 신분증과 의료보험증만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불법적인 도용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운전면허증(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과 의료보험증을 통합하는 과도기에 있기도 하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원칙 아래 이뤄진 의료전달체계(referral system)를 놓고 보자면 아마도 그 환자는 가정의를 통해서 영상의학적 검사나 병리학적 검사를 받았을 것이고 암이 전이되었다는 것을 알고 암센터 (BC Cancer Agency)에 예약이 잡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암센터에서는 환자의 현재 상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Primary focus가 어느 장기였는지는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임파선으로 전이되어 크기가 수 센티미터에 이르렀다면 치료가 더 이상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속상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종양내과나 치료방사선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어렵겠지만 palliative treatment (완화치료)를 권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암센터의 예약이 한 두 번 어그러졌을 수도 있고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면서 어려운 한국 방문을 결정했으리라.

하지만 이곳에서도 환자가 원한다면 debulking surgery는 시행하고 있다(물론 우리나라처럼 심미안적인 면을 고려한다기 보다는 지극히 서양적인 실용적 마인드에서)
다른 예를 들자면 이렇다.

간경화나 간암 환자들이 모두 기다리는 간이식 수술. 이곳에서는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무상으로 시행된다.

단, 면역 적합성 검사 등등 모두 통과해야만 하고 언제 장기 제공자가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자격은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지원체제(social support)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렵게 어렵게 장기 이식을 했는데 아주 어처구니 없게 Tacrolimus같은 면역 억제제 복용을 잊을 만큼 혹은 이식센터에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나 영상의학 검사를 하러 올 만큼의 지원 체제가 준비되어 있는가를 따지게 된다.

사회적 지원체제라 하면 쉽게는 환자 이외에 그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올 수 있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이 있는가? 환자가 약을 매일 매일 잘 복용할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있는가? 금주라던가 금연 등을 지속할 수 있도록 감시 아니 감시를 해줄 사람이 있는가? 등과 같은 아주 이상하리만큼 기초적인 요건이 충족이 되어야만 비로소 간이식 신장이식 등을 받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렵게 받은 장기를 충분히 오래오래 잘 쓰고 건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냐도 이식의 조건인 셈이다.

이 역시 한정적으로 제공받은 장기를 철저한 기준에 의해서 엄격하게 심사하여 꼭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하겠다는 정부 당국 및 병원의 의지인 셈이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정서에는 안맞을 수도 있다.

'어떻게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깟 보호자 없다고 수술을 거부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환자가 원하는데 아무리 전이된 암이라도 수술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두 맞는 주장이고 생각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의 원칙으로 돌아가서 전국민이 무상으로 제공받는 의료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반대의 주장도 맞을 수 있다.

제한된 의료 서비스 및 의료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것. 이것이 캐나다 의료제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그런데 이 캐나다 환자께서는 어떠한 경로로 비자를 받고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치료비 감면까지 받으셨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캐나다는 매우 심사가 까다롭다. 이민비자 혹은 제대로된(?) 취업 비자가 없이는 의료보험혜택을 절대로 받을 수 없고 응급실에 가게되면 최소 500달러(우리 돈 약 45만원)를 보증금으로 내야지만 아주 간단한 치료를 받게 된다.

물론 값비싼 혈액검사나 CT 등을 하게 되면 몇 천 달러로 진료비가 늘어나게 된다.

수술? 입원? 정말로 꿈꾸기 조차 어렵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세금 한 번 낸 적 없을 법한 캐나다 분이 이런 혜택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거꾸로 보면 참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캐나다 #무상의료 #서성희 #가정의 #메디게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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