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MRI 급여화 '문재인 케어' 후퇴...의사들은 5년 전 이미 이럴 줄 알았다

[칼럼]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대한외과의사회 보험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부가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건강보험 급여화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고시는 약 5년 전인 2018년 3월 13일 행정예고됐다.

당시 정부는 이 고시를 발표하기 전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협의체를 구성한 후 의료계 의견을 반영하는 형식을 취했다. 협의체는 보건복지부, 학회, 의사회 등 약 20여 명으로 구성됐다. 2018년 1월 15일에 첫 회의를 시작해 2월 22일까지 총 4차례 회의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다. 

의료계는 이 고시에 반발했다. 그해 3월 29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와 보건복지부가 마지막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협상은 말뿐이었다. 정부의 입장은 상복부 초음파 고시에서 한 글자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정부의 원안대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고시는 강행됐다. 이후 뇌·뇌혈관 MRI 검사도 유사한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되고 급여화됐다. 

5년 지난 지금 문재인 케어로 인한 재정 지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초음파나 MRI보다 더 급한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상복부 초음파를 급여화하면서 비급여로 남겨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계와 필자는 줄곧 “정부가 고시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의 급여기준으로만 급여를 인정하면 일선 현장에서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급여기준에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은 비급여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비판적 내용은 회의록에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는 보도 자료에서 MRI와 초음파에 대한 급여기준을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MRI와 초음파 검사에 많은 재정이 투여됐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해 간호사가 제때 뇌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역 소재 의료 기관에 출산을 할만한 병원이 부족해지고 있다. 외과계 의사들이 줄어들어 지방에서 응급수술이 이뤄지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소아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는 대학병원의 이야기들마저 나오고 있다. 전공의 모집에서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외과계 전공의는 미달이고 심지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거의 지원자가 없다. ‘비극적인 초유의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잘못 책정된 건강보험 수가 때문이다. 또 편향된 건강보험 수가 정책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곳에 재정을 지출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결국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거나, 다빈도 질환을 진료하는 전문과목만 박리다매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싸구려 보건의료 정책의 문제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가격이라는 부분이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면서 모든 재화는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 건강보험은 물론 실손의료보험의 적용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 이용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이것은 해당 의료서비스의 수요를 급증시킨다. 이렇게 가격 저항선을 없애주자 상복부 초음파와 뇌와 뇌혈관 MRI 검사가 급증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2018년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회의에서도 “맹장수술비에 책정된 의사 행위료(기술료)와 제왕절개 수술비 등의 필수의료 분야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저수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재원이 남는다면 상복부 초음파나 다른 비급여의 급여화가 먼저는 아니다"라고 전문가들이 내내 주장했지만, 당시 보건복지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은 가장 우선시 돼야 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망각했다. 여기에 더해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도 급증했기에 서둘러 문재인 케어 정책을 수정하는 상황에 오게돼 버렸다.

초음파나 MRI 촬영과 같은 검사가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검사를 위해서는 적절한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의학적 기준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비용 지불(본인부담금)이 통제 장치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을 무제한으로 풀어주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건강보험 자체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의료비를 강제적으로 지나치게 낮추어주니 의료이용이 급증한다. 반면 진료과목별로 균형이 깨진 건강보험 규정으로 인해 환자 발생빈도가 적은 필수 의료 분야는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난다. 필요한 데는 지원이 안 되고, 필요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의료 수요가 증가하니 건강보험 재정도 버티지를 못한다. 악화된 건강보험 재정은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에게 돌아갈 몫도 넉넉지 못하게 한다.

이런 와중에 간호사들은 간호법으로 자신들만의 생존과 처우 개선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지난 달 26일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직역 간의 갈등까지 더욱 악화됐다. 모두 잘못된 건강보험 설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고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고만 있다.

건강보험은 건강보험료와 한정된 재정으로 운영된다. 문재인케어에서 보았듯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5년 전 그때 '오늘' 이럴 줄 알았고, 5년 뒤 그때 이미 이럴 줄 알았다’를 반복하지 않는 보건의료정책이 절실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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