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일단 보류…의료계와 추가 논의 예정

금융소비자 간담회서 “의료법 이슈 등에 대해 복지부, 의료계와 지속 협의" 밝혀

의료계 "심평원 심사, 보험금 지급 거절" 우려…의원협회 "보험사에 환자정보 전송, 의료법 위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규정이 일단 의료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한다는 조건으로 미뤄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그동안 ‘금융소비자TF’를 통해 준비하고 관계기관 등과 협의해 온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금융소비자 간담회’를 18일 개최했다.

이날 금융위와 금융소비자단체들은 보험금 청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ICT기술 등을 활용해 소비자 편의를 제고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하지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관련 논의가 미뤄졌다. 금융위는 민간보험사에 의료기관의 환자 정보를 전송할 수 없는 의료법 이슈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의료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계획을 밝혔다. 

최 위원장은 “금융소비자TF에서 제기한 보험회사 의료 자문 공정성 강화, 보험금 청구의 편의성 제고 등 과제를 조속한 시일 내에 검토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 일부 발췌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을 위해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회사는 요양기관의 서류 전송 업무를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올해 1월에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심평원 대신에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금융소비자단체, 국민 불편으로 인한 청구 간소화 주장 

금융소비자단체들은 국민 불편을 이유로 실손보험 병의원 청구 대행을 주장해왔다. 소비자단체들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가 있었고 10년 동안 방치된 상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많은 불편을 겪었고 불편함은 보험금 미청구 등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손실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소비자단체들은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는 소비자 편익증진을 위한 것이지 보험사의 청구거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안이다”라며 “현재 실손보험청구를 소비자가 누락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청구 과정이 복잡하고 여러 증빙서류를 구비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청구간소화가 진행될 경우, 청구가 더 간편하고 당연하게 돼 실손 보험 소비자는 당연한 권리인 실손 치료비를 모두 다 받을 수 있다"라며 "의료계의 우려처럼 간소화 이후 청구거절이 이유 없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소비자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인정보보호 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청구간소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 또한 억지다”라며 “개인정보는 이미 소비자의 동의를 거쳐 제공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실손보험 청구간소는 의료기관과 보험사 간의 의료정보 데이터베이스 공유와 시스템 연결이 불가피하다”라며 “이에 대한 안정성 확보와 개인정보 오남용 예방 장치도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실손보험 심평원 심사 위탁으로 지급 거절 꼼수 

하지만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대행은 민간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탁으로 가기 위한 의도다. 이를 통해 보험금 인상이나 지급 거절 등의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보험업법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외과의사회, 대전광역시의사회, 대한지역병원협의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 등은 이 개정안이 거대 실손보험사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도 3월 28일 공동으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민편의 증진이 아니라 보험회사나 가입자와 어떠한 사적계약이 없는 의료기관에 행정 부담을 전가하는 위헌적 입법이자 보험회사 특혜 법안이다. 국민 편의를 위해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국민의 등을 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의협·병협은 "실손보험회사는 대행 청구로 진료정보가 전산화되고 진료비 심사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등을 통해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 내역과 질병 정보에 접근할 법적 근거를 갖는다. 이를 근거로 관련 질병 정보를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의협·병협은 "공적인 보험심사를 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실손보험 청구업무 위탁을 하는 것은 자동차보험 선례를 보면 결국 심사까지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결국 이번 법률안은 국민의 편의라는 명목으로 의료기관에 청구를 대행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보험금 지급률을 낮춰 실손보험사들의 배만 불리기 위한 법률안”으로 우려했다.

의협·병협은 "이러한 합리적인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 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계속 진행될 경우 전국 13만 회원의 즉각적 의사 총파업 돌입 등 강력한 투쟁을 추진해 나갈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의원협회, 의료법 위반 문제 등 실질적인 문제제기   

대한의원협회는 금융위원회와 금융소비자 간담회가 열리기 직전인 15일 ‘의료법 위반’ 등의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이번 실손보험 청구 대행 논의 보류에 힘을 보탰다.  

의원협회는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대행 개정안의 반대 이유로 ▲법적 의무가 없는 의료기관에 관련 의무 부과 ▲의무기록 타인 열람 금지한 의료법 위반 교사에 해당▲개인정보 유출 우려 ▲개인정보 오용 우려  ▲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법안 ▲정작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역행 등 6가지를 들었다. 

의원협회는 의료법 위반에 대해 “보험업법 개정안은 계약자 등의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민간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환자에 관한 기록을 전송할 수 있다는 조항은 전혀 없다. 이는 의료법 위반 교사에 해당한다”고 했다. 

의원협회는 “보험업법에 의료법 제21조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환자가 자신의 의무기록 전송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이 환자가 아닌 보험회사에 환자 기록을 전송한 것은 의무기록 타인 열람을 금지한 의료법 제21조제2항을 위반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의료법 제21조 제1항은 환자가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에게 본인에 관한 기록에 대해 열람 또는 그 사본의 발급 등을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의료인 등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제2항은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할 수 없다. 

제3항에는 제2항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교부하는 등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민건강보험법, 의료급여법에 따른 급여비용의 심사·지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지급, 국민연금법에 따른 연금 지급 등이 해당한다. 
 
의원협회는 “보험업법이 의료법의 상위법이 아니다. 환자의 진료기록은 의료법의 규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결국 두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의료법 위반을 교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원협회는 “민간 영역인 의료기관의 경제활동을 공권력을 활용해 제한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 법적 의무가 없는 요양기관에 청구대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극히 위헌적인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검토보고서에서 "실손의료보험의 문제는 보험계약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에 관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요양기관에게 관련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실손보험은 민간보험사의 사적(私的) 계약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요양기관에 본연의 업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민간보험계약 관련 사항에 관해 법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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