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정이는 가라! 우왕좌왕 의사협회,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

[칼럼] 박상준 의협 경상남도 대의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새천년이 도래한 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국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새로운 인간상(像)이 살아남는 구조로 세상은 바뀌고 있다. 규모의 경제 논리가 업종을 지배하고 빠르게 변하는 기술혁신을 따르지 못하는 분야는 도태하는 전광석화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 의료도 마찬가지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제한된 인력과 장비, 우월한 지정학적 위치와 풍부한 자본의 결합으로 시간이 갈수록 의원과 병원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도 규모 확대와 적극적인 투자에 따라 생존을 가늠하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의료법에 따라 구성된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고 의료 제도의 혁신을 앞장서 이끈다면,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의료인 모두에게 복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국민과 정부 나아가 의료인 모두가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기를 원하고, 정부는 싼 의료비를 통해 국민에게 광범위한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사회안전망으로서 의료가 이바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 재정의 지출을 최소화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특정집단의 희생이 필요했고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일방적으로 의료계에 전가됐다. 의료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환경에서야 이런 양보와 희생이 더 나은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지만, 현재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민 여론과 재정 권한을 양손에 들고 의료계를 더욱 핍박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 의약분업, 의료전달체계 확립 실패 등 수많은 정부의 정책 추진의 실험 대상이 됐고, 낮은 수가와 장시간의 진료와 늘어나는 각종 의료 규제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이면에는 타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극악한 의료 환경이 밑바탕에 깔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회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범한 것이 현 의사협회 집행부다. 

안타깝게도 난제의 해결을 바라는 의사협회 회원의 희망은 한낮 바람으로 끝을 맺을 것 같다. ‘의료를 멈춰서라도 의료를 살리겠다’는 구호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양치기 소년’처럼 ‘투쟁, 투쟁, 투쟁’만을 외치다 투쟁을 접고 협상을 구걸했지만, 정부의 냉담한 거절에 절망하고 있다. 방향을 잃고 눈앞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지만, 혼돈의 질서를 바로잡을 의지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그렇다. 본질이 알맹이가 아닌 쭉정이가 알맹이인 척 한 결과를 회원은 이제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의사협회가 수가협상에 실패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어떻게 대응할지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제 쭉정이를 보내고 알맹이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과거가 되어 버린 시간과 우리를 옭아매는 정책의 칼날이 지나면, 의료인의 삶은 고통과 찌든 노동에 종사하는 불쌍한 군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 스스로 깨닫고,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에 전 회원이 동참해 우리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이제 쭉정이는 위기 극복의 불쏘시개로 삼아 의사협회의 진정한 가치를 쟁취하는 진정한 투쟁에 나설 때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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