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 드루와, 드루와 #3.

"도망쳐 나갔을 때의 그 해방감과 며칠간의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복귀하지 않았다면"


드루와, 드루와… #3.

강남성모병원에서부터 
어머니가 한복가게를 하고 계시던 부천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 닫혀있는 가게 셔터.

두드려서 깨우면 어머니가 크게 놀라실 것 같았다.

차를 돌려
역시 부천에 살고 있는 이모집으로 갔다.

이모는 나갔는지 집에는 사촌 여동생만 있었다.

" 어머, 오빠, 웬일이야? "

여동생이 깜짝 놀라며 맞는다.
배가 고팠다.

" 때려치고 나왔어. 뭐 먹을 것 좀 있니? 오빠가 배가 많이 고픈데... "

" 글쎄... 찬밥이 있기는 한데 조금밖에 없고 반찬이 별론데... "

" 미안한데 오빠 라면 좀 끓여줄래? "

" 몇 개? "

" 3개... "

방금 끓인 봉지라면의 꼬들꼬들한 면발과 뜨거운 국물을 먹어본게 언제였던가...
어찌 그리도 맛있던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 오빠 좀 잘게. 깨우지 마라. "

남자 사촌동생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뜨거운 식빵위에 놓인 버터처럼
침대로 몸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이내 곧 black out... 



눈을 뜨니 
침대 머리맡 자명종시계의 시침은 7을 가리키고 있다.

창밖은 어둡다.
아침 7시인가? 아님 저녁 7시? 



아침이더라...ㅠ

하루를 채 안되게 꼬박 잠만 잤더라.
이모 말로는 죽은 줄 알고 숨은 쉬는지 가까이 귀를 대봤다고 했다.

정신은 약간 멍했지만
몸은 개운했다.

" 씨발놈들이... 애 잠은 재워가면서 일을 시켜야지... "

이모가 더 열 받아서 투덜댔다.
어머니는 소식 듣고 오셔서
안쓰러워 우시다가 다시 가게로 가셨다고 했다.



당시엔 최고의 핸드폰이었던 모토로라 스타텍.

꺼놨었다.
켜놨으면 어찌 되었을지 뻔한 일 아닌가?
아직 켜보고 싶지 않았다.

목욕을 하고는
어머니 가게로 가서 여친(지금의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점심 먹고, 영화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기 힘들어 하는게 역력했다.

저녁때쯤 핸드폰을 켜니
냉정한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 수신된 음성메시지가 15개 있습니다. 메시지를 들으시려면 1번..."



" 윤아... 하... 그래도 들어와야지 않겠니? 메시지 확인하는 대로 전화해라... "

3년차 형(왜 지난번 글에서 말한 그 충남 출신 베트남 형 말이다. 이 형도 강남성모에 같이 있었지만 우리 part는 아니었거든...)의 목소리다.



" 어... 엄선생 어디냐고? 일단 들어오라고... 들어와서 얘길 해야 알거 아니냐고... 일단 들어 오라고... "

고박사님의 목소리...



" 드루와, 드루와, 밖에서 뭐해, 일단 드루와... "

김OO 과장님(이후 주임교수에 강남성모 병원장까지 하셨지...) 목소리...



" 윤아... 지금 바로 들어오면 좀 그렇고... 하루만 더 쉬고 꼭 들어와라... "

동기 1년차 형의 목소리...
(자기가 나보고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은 좀 웃기지 않냐?)




삑...



나중에 복귀 후에 동기에게서 들은 얘긴데...

내가 사라지고 난 후 아침 conference때 교수님들께 3년차가 보고를 드리니,
교수님들이 일제히 DD박사를 째려보더랜다.

그러자
대구 출신 DD박사...

" 내가 뭘 !!! "

맞기는 많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도망을 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는데, 
평소 내가 많이 맞았었다는 것을 아시는 교수님들이 
DD박사를 그 이유로 생각하셨던거다...ㅋ
(이제야 말하는거지만 내가 이 점에 있어서는 DD박사님께 죄송하다...^^;;)

졸지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된 DD박사는 내가 복귀한 이후로 약 1주일 동안은 특별히 때리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여친이 동행해주었다.
어깨가 축 쳐져서 들어가는 내 모습에 안쓰러워했지만 
조금 있으면 2년차가 되니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다독였다.



역시...
복귀 후에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돌아와 준 것 만으로 고마울 뿐...

2박 3일의 탈출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full charge 배터리마냥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고
이후 별다른 문제없이 1년차를 마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복귀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군대를 다녀왔을테고
다른 과에 다시 지원했겠지...
다른 병원에서 말이다.

아님, 수련의를 포기하고 그냥 어디 취직했으려나?
아님, 뭣도 모르는게 무작정 개원했을까?

그럼 지금의 이런 글들도 쓸 수 없었겠지.

'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죠~ '
라는 노래 가사처럼

지금도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나아가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
는 것이다.

도망쳐 나갔을 때의 그 해방감과 며칠간의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복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쯤 큰 후회를 했겠지...



그때 과장님의 그 말씀은
이런 뜻이었으리라.

" 드루와, 드루와, 힘들어도 맞서 싸워 이겨낼거다.
고난이여, 시련이여... 드루와... "



이번 얘기 끝. ^^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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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와, 드루와 #1.  
드루와, 드루와 #2. 
드루와, 드루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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