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딴나라 이야기2] 호주

'공공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원격의료




지도를 펴고 남반구로 건너가, 호주란 나라를 보자.
 
투철한 직업 의식이 있는 의료인이라면, 넓은 영토에서 나오는 풍부한 천연자원보다 의료 접근성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 것이다.
 
2천만이 조금 넘는 인구가 남한의 70배 이상 되는 면적(세계 여섯 번째)에 살고 있으니 그런 의문이 들만도 하다.
 


호주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청색)와 세계 평균(적색)

 
호주의 의사 비율(인구당 의사수)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넓은 땅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엄청난 영토 덕에 호주의 의사 밀집도(단위 면적당 의사 수)는 항상 낮아, 호주 정부는 일찍부터 사각지대의 의료 전달에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게다가 호주 역시 인구 노령화를 피할 순 없었다.
 


호주의 중위연령과 60세이상 인구비율(1950~2050E)

 
80년대 초부터 중위연령과 60세 이상 인구 점유율이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호주는 원격의료 필요성의 근거로 흔하게 언급되는 '의료 접근성 개선'과 '만성 질환 관리 문제'에 동시에 직면해, 정부나 환자, 의료인 모두가 원격 의료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격의료의 근간이 되는 호주의 공공의료
 
호주의 원격의료를 이해하려면 공공의료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호주의 원격의료 대부분은 급여 항목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원격의료의 권장 진료 수가 역시 기존(대면 진료) 수가에 대한 파생 개념(Derived Fee)으로 책정됐다.
 
 
호주 의료는 영국의 것을 흉내 냈다.
 
그래서 공공의료를 표방한다.
 
호주 정부는 1984년부터 Medicare라는 이름의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해 의료 비용 일부를 충당했다.
 
호주 국민은 수입의 1.5%를 건강보험비로 부담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면 1%를 추가로 내지만 빈곤층은 감면된다.
 
이렇게 모인 돈이 국가 정부나 주 정부의 지원금, 그리고 민감 보험 기금과 만나 공공의료를 지탱한다.
 
 호주의 행위별 의료 수가 가이드인  MBS(Medicare Benefits Schedule)

Fee : 권장 진료 가격, 말 그대로 권장 수가라 의사는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를 받을 수도 있다.
Benefit : 정부의 급여액, 여기서는 100%지만 일부는 85% 혹은 75%만 보장한다.
EMSN(Extended Medicare Safety Net) : 환자의 자가부담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항목(Item)별로 초과액의 80%를 다시 보상해주는데, 그 일정 수준이 바로 EMSN이다.
EMSN Benefit Caps : 의료비의 과잉 지출을 막기 위해 정한 EMSN 보상액(Benefit)의 항목별 상한선
 
 
호주는 행위에 따른 권장 수가를 명시했는데, 그 행위를 의사 전문성과 진료 등급(깊이 혹은 시간)에 따라 차등을 뒀다.
 
컨설턴트(일정 자격을 갖춘 전문의)나 전문의는 일반의보다 진료 수가를 더 받고, 20분 내외의 진료는 5분 진료보다 더 높은 수가를 인정해 합리적이다.
 
호주가 공공의료를 표방했다고 한 이유는 높은 보장률(항목별 75%~100%) 외에도 본인부담금에 대한 상한선 때문이다.

보장률(Benefit)이 100%에 미치지 못하는 일부 항목(Item)의 의료비는 본인부담금에 상한선이 있다.
 
Medicare는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상한선을 넘으면 초과액의 80%를 다시 지원한다.
 
호주 정부는 이런 '이중 보장'으로 과다한 개인 부담을 막았다.
 
 
반면에, 의사들에게 일정한 자율성도 보장한다.
 
호주 의료는 우리나라처럼 '당연지정제(의료 보험에 가입된 국민을 병원이 거부할 수 없는 제도)'가 아니다.
 
경쟁력이 떨어져 실제 많진 않지만, 호주 병원은 사보험 환자만을 가려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는 'Bulk Bill'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청구를 한다.
 
이것은 의사가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에 신속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정책이다.
 
호주 의사가 굳이 진료비 손해를 보면서까지 Bulk Bill을 하는 이유는 급여의 신속한 지급(진료 후 2일 이내) 외에도, 다른 병원과의 가격 경쟁 때문이란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의료법 위반)
 
이러한 Bulk Bill이 호주 의료 청구의 2/3가 넘는다.
 
항목별 수가에 '권장'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 역시, 의사가 권장 의료 수가 이하(Bulk Bill)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표방하지만, 자율성도 보장하는 호주 의료의 특징은 원격의료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호주 원격의료 진행 과정
 
1999년 호주의 국가정보관리 자문위원회(NHIMAC)는 의료 사각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를 추진한다는 목적을 밝혔고, 2001년에는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수요 변화에 따른 수정계획을 발표하여 온라인 보건의료서비스 추진 목적을 구체화했다.('미국, 호주, 한국의 원격의료 도입사례 비교분석 - 김추린'에서 차용)
 
2001년엔 뉴질랜드와 함께 국가원격의료계획(National Telehealth Plan for Australia and New Zealand)을 발표했다.
 
 
2011년 호주 정부는 원격의료를 장려하고 급여화를 알리기 위해 '원격의료 재정 지원 프로그램(Telehealth financial incentive program)'을 만든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원격의료를 통해 환자가 전문의(Specialist)를 쉽게 만나게 해주는 데 있다.
 
그 지원(인센티브) 내용은 이렇다.
 
관련 장비를 설치한 전문의(혹은 의료기관)는 첫 원격의료 서비스 개시 후 장비에 대한 투자금 일부를 지원받는다.
 
그리고 10번째 원격의료가 끝나면, 설치비 일부를 추가로 받는다.
 
 

호주 정부에서 지원한 원격의료 설치 인센티브

 
원격진료 자체에 대한 인센티브도 받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문의는 원격의료 건당 48AUD(호주달러, 1AUD=890원), 임종환자를 위한 의료인-전문의 간 원격의료의 경우 건당 32AUD를 지원받았다.
 
수가를 Bulk Bill로 신청할 경우, 그에 대한 인센티브 14AUD를 또 받는다.
 
인센티브는 말 그대로 보너스며, 의료 수가는 수가대로 따로 지급된다.
 
2012년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2014년으로 종료했고, 현재는 인센티브 없이 원격의료에 대한 수가만 지급된다.
 

호주 정부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몇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9개의 원격의료 파일럿 프로그램


2012년에 총 2천만 달러(AUD)의 자금이 조성돼 시작한 9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은 노인 의학이나 완화 의학 그리고 암 치료에 적용할 원격의료를 개발하는 게 목적이다.


급여를 인정받기 위한 호주 원격의료 규격
 
소위 Videoconferencing이라 불리는 호주의 원격의료는 항목(Item)별로 '11개의 환자-전문의(컨설턴트, 정신건강의학과 컨설턴트 포함) 간 컨설트'와 '임종 환자를 위한 23개의 의료인-전문의 간 컨설트'에 의료 급여를 인정하고 있다.
 
각 원격의료 항목에 대한 권장 의료 수가는 대면 진료의 50% 정도지만,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자율성을 둬 Bulk Bill이나 권장 이상의 의료비를 받을 수 있다.



11개의 환자-전문의 간 원격의료 항목

 
전문의(Specialist)가 특별한 처치 없이 원격으로 환자를 컨설트했을 때 권장의료비(Fee)는 21.5AUD, 다른 의사에게 컨설트 요청을 받고 진료하는 경우엔 42.75AUD다.
 
이들 의료비에 대한 Medicare의 지급률(Benefit)은 모두 75%로, 의사는  최소한(Bulk bill한 경우) 16.2AUD와 32.1AUD를 각각 보장받는 셈이다.
 
호주 정부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기술적으로 오디오와 비디오 링크만을 명시하고 있으며, 원격의료 때 필요한 장비와 솔루션에 대한 구체적인 권고 사항은 없다.
 
이 가이드라인은 의사 본인 스스로 진료하는 데 믿을 만한 장비와 솔루션을 선택하도록 권하며,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의사와 환자는 반드시 15K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며, 호주의 표준 분류(ASGC-RA)에 따라 RA1에 해당하는 주요 도시(Major City)에선 거리와 무관하게 원격의료를 받을 수 없다.(노인 요양 의료 기관은 예외)
 
환자는 정부가 제공하는 Health DoctorConnect라는 website에서 본인의 거주지를 입력 후, 거리 제한에 따른 가능 원격 의료 기관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의사에게 하루 두 번 이상 원격으로 진료받아도 급여는 인정되며, 각각의 진료 이유는 서로 달라야 한다.


호주의 원격의료 솔루션 업체
 
TMA(Telemedicine Australia)는 호주에 처음으로 원격의료 인프라를 구축한 업체로 장비와 솔루션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원격 모니터링 장비 'HiCare HomeDoctor'

 
이 회사는 'AUSTM Solution'이라는 원격의료 장비와 원격 모니터링 장비인 'HiCare HomeDoctor', 그리고 원격의료 솔루션인 'MyOnlineClinic' 등의 제품을 개발했다.
 
모바일 디바이스를 위한 어플리케이션은 없으며, 의사는 원격의료 장비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환자는 집이나 의료기관에서 원격의료 컨설트를 주고 받는다.
 

호주의 원격의료 솔루션 업체엔 비영리 단체도 있다.
 
 


David Allen이라는 의사가 설립한 'Telehealth Solutions Australia'는 원격의료의 화질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단체는 Managenet이나 Fujitsu PC Australia 같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자국 내 취약지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고 한다.
 
이 회사의 솔루션 역시 모바일 디바이스는 지원하지 않는다.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도 있다.

GP2U는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 원격의료 서비스다.
 
서비스 형태나 진료비 체계가 앞에서 설명한 업체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다른 솔루션 업체는 Medicare가 지급하는 의료 급여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원격의료를 진행한다.
 
하지만 GP2U는 비급여 기반의 의료비를 책정해, 정부의 거리 제한(15Km 이상)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의무가 없어 모바일 접근을 가능케 했다.
 
앞에서 설명했듯 호주는 당연지정제도 아니며, 의사가 의료비를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49AUD의 비용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일반의(GP)와 만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GP2U는 호주의 유명 약국 체인과 연계해 처방약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과 비교한 호주의 원격의료 환경
 
-호주는 엄청난 영토로 인해 20세기 초부터 의료전달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호주의 의사 비율(인구 1000명당 의사수)은 세계 평균 이상이고 한국은 그 이하다.
 
-반면에, 한국의 의사 밀집도는 호주보다 훨씬 높다.(세계2위 수준)
 
-한국의 고령화는 호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만성질환 관리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다.
 
-호주 의료는 공공의료를 표방하고 있으며, 본인부담률은 20% 정도다.(한국은 30%대)
 
-호주는 진료 수준과 진료 시간에 따른 차등수가를 적용하고 있고, 의사들은 권장 의료 수가보다 더 받거나 덜 받을 수 있다.
 
-호주 의료엔 '당연지정제'가 없지만, 사보험만 허용하는 병원은 드물다.

-호주 원격의료의 취지는 전문의나 컨설턴트 정도의 수준 있는 진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호주 원격의료 수가는 기존 의료 수가에서 그대로 파생(Derived)됐으며, 대면진료 대비 약 50% 수준을 보장받는다.
 
-호주 원격의료의 급여 조건엔 거리 제한이 있다.(15Km이내 혹은 대도시 금지)
 
-아직 호주에선 원격의료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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