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칠승 의원의 ‘친절한 의사법’ 유감...의사가 친절할 수 없게 만드는 만성 저수가부터 개선하자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10월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권칠승(화성 병) 의원은 진료시에 진단명, 증세, 치료 방법‧관리, 주의사항 등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환자가 원할 경우 이를 서면으로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 의원은 “동네 병‧의원, 대학병원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병원 진료는 방문을 위해 들인 시간보다 진료 받은 시간이 1분 내지는 3분으로 끝나는 ‘공장식 진료’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불만과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권 의원의 개정안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채 발생된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다.
 
개정안의 문제점은 첫째, 국내 의료기관들의 진료 시간이 짧은 가장 큰 이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만성적인 저수가 때문이라는 데 있다. 지난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도 의원급 의료수가가 원가의 62.2%에 불과한 것이 드러났다. 짧은 시간에 일정 수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지 못하면 의료기관을 유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권 의원이 언급한 ‘공장식 진료’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의사도 내원한 환자들과 충분한 시간 상담 및 진료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의 저수가 체계에서는 요원한 얘기일 뿐이다.
 
둘째, 기존에도 환자가 원하면 의사가 소견서나 진단서에 진료의 내용과 진단명, 치료방법 등을 기재해 발급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의료기관이 환자의 요청에 소견서와 진단서를 발급하고 있다.

권 의원은 의사의 전문적인 판단이 들어간 문서를 발급받는 것에 대한 법적 정당성과 비용이 인정돼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사의 전문적인 소견에 대한 내용, 이에 소요되는 시간, 각종 행정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추가 비용없이 의료기관이 문서를 발급하라고 강제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의사들의 업무량을 늘려놓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외면하는 것이다.
 
셋째, 세계의 어느 나라도 의료인들의 친절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다. 의료인들은 매일 진료현장에서 환자, 보호자로부터 진료대기시간, 비용, 서류발급과 관련한 불만 등으로 폭언이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2019년 11월 대한의사협회에서 회원 2034명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72%에 달하는 1455명이 최근 3년 사이에 환자·보호자에게 폭언 내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뒤로한 채 의료인들에게 또 다른 일방적인 친절을 강요하는 ‘친절한 의사법’의 발의는 의사에 대한 정치권의 또 다른 갑질일 뿐이다.

의사들이 진료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기를 원하면 국가가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진정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싶고 의사들의 바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면 진료 시간당 국가에서 적정한 수가를 책정하고 비용을 지불하게 하면 간단하다.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노력보다 의료계를 옥죄는 각종 법안을 발의하는 권칠승 의원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
 
전문가와 논의없이 함량 미달의 법안을 마구잡이 식으로 발의하는 국회의원, 전문가단체에 막말을 일삼는 국회의원, 국민의 이익보다 지역구에서 단지 본인 업적을 위해 혈세를 낭비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에 대한 '친절한 국회의원법'은 없을까?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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