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립? 필수의료 적정수가 보상·의료분쟁 의료인 보호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사수를 늘리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수는 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년 기준 평균 3.4명보다 적다는 이유를 들었다. 공공의대를 설립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흉부외과 등 일부 기피 과목에 대한 인력 양성, 의료 소외지역의 의사 배치 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만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정부는 그렇게 판단하는 논리의 근거가 뭔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강한 정책 추진 의지에 비해 정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그토록 벤치마킹하고 싶어했던 소위 ‘공공의료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코로나19 통계를 보면 안타깝다 못해 처참하다. 6월 15일 기준 영국은 확진자가 29만5000명이 넘고 그중 4만1698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14.1%에 이른다. 프랑스는 확진 15만7220명에 사망 2만9407명으로 사망률 18.7%, 스페인은 29만1008명 확진에 2만7136명 사망으로 사망률 9.3%, 이탈리아도 23만6989명 확진에 3만4345명 사망으로 사망률이 14.5%에 이른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6월 17일 오전 0시 현재 1만2198명 확진에 279명 사망으로 사망률은 2.29%에 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자랑했던 ‘K방역’의 성과이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무엇을 근거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공공의대 재학생에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대신 졸업 후 의료 취약지에 일정 기간 의무 복무를 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고장난 녹음기처럼 되풀이만 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지리정보시스템(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을 활용한 분야별 의료취약지에 관한 연구 '공간정보 기반의 의료취약지역 분석과 정책방향”에 따르면, 60분 거리 내에 분만실 이용이 어려운 접근성 취약지 A등급인 시군구가 전국에 37곳으로 나타났다.

전체 226개 시군구의 16.3% 정도에 해당하는 이들 지역에 분만 병·의원이 없는 실제적인 이유는 지역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산모의 절대 수 감소 및 분만 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의료분쟁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정부는 본질은 덮어둔 채 이들 지역에 의사만 보내면 공공의료가 강화된다고 보는지 되묻고 싶다.
 
의사 수에 대한 OECD 통계를 보는 정부의 관점도 근시안적이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인구 1000명 당 활동 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3.0%로, OECD 회원국 평균 2.5%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0.49%임을 감안할 때 2028년이면 OECD 평균치를 추월한다.
 
전문의 한 명을 양성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짧게 잡아야 10년이다. 지금 당장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2022년도부터 신입생을 받는다고 해도 공공의사가 배출되는 시점인 2028년이 되면 이미 우리나라 인구 대비 의사 비율은 OECD 평균치를 추월한다는 이야기다.
 
이것만이 아니다. 의료의 질은 단지 의사 수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의사 숫자는 늘어났으나 적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면 의료의 질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한때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를 자랑하던 필리핀은 의사들의 수입이 보장되지 않자 의대를 졸업한 후 수입이 더 많은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에 도전하거나 투잡으로 택시운전을 겸하기도 했다. 필리핀의 이런 전철을 대한민국이 되밟아야 할 것인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월과 3월, 확진환자가 다녀간 의료기관, 특히 의원들은 자가격리나 휴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국민을 위한 의료 활동을 벌이다가 당한 피해였다. 의료기관의 손실보상을 위해 7차에 걸친 손실보상심의위원회(전문위원회)가 열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론은 감감무소식이다. 의료기관들이 경영난으로 폐업한 뒤 손실보상이 이루어진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구동산병원의 예를 들어보자. 코로나19 환자가 한창 급증하던 지난 2월 21일, 이 병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오직 코로나19 환자 치료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며, 총칼을 든 의병과 학도병의 심정으로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으로 ‘자원 입대’한 것이다. 이 병원에는 코로나19 환자 1022명이 입원했다. 그중 22명이 사망했지만, 923명은 건강하게 퇴원했다. 혁혁한 전공이 아닐 수 없다. ‘K방역’의 빛나는 성과를 상징하고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 병원은 100 억 원 이상 적자가 발생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적용해 모든 의료기관이 무조건 건강보험 가입 환자를 받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민간 의료기관들이 공공의료를 사실상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공공의료기관과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정부와 청와대는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하기에 앞서서, 이번 코로나19와 관련해서 피해를 입은 민간 병의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부터 해결하기 바란다.

또한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기피과에 대해서 OECD 평균 수준의 적정 수가가 실현돼야 한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평균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을 통한 의료인 보호도 법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이 모든 사항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공공의대 설립은 응급, 외상, 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 의료 분야, 정신질환, 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관련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에 대한 안전체계 구축 등 국민의 생명 안전 및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는 필수의료 구축이 충분히 이뤄진 이후에 논의돼도 늦지 않다. 이 논의도 이해 당사자인 보험자, 피보험자, 의료공급자 간의 거버너스 구축 후 보건의료체계의 틀 속에서 논의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공공의대 설립 주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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