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무시한 의대정원 증원, 지금보다 실력이 후퇴한 의사만 양산한다

[칼럼] 안덕선 고려의대 명예교수 ·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특별칼럼] 의대정원 증원 정책이 우려되는 이유    
정부가 2025년부터 1000명 이상의 '의대정원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로 사회적 파장을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올해 초까지 의대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의학교육학 전문가이자 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인 안덕선 교수와 함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①'40개 의대 희망 수요조사'가 진정 필요한 의료인력 수요조사 근거자료로 타당한가 
②의학교육은 임상실습이 필수인데...의대정원 확대와 교수대비 학생비율에 대한 멍청한 추측(SWAG)
③의학교육 무시한 의대정원 증원, 지금보다 실력이 후퇴한 의사만 양산한다
 
 
사진=챗GPT가 그려준 의대 교실에 학생들이 늘어나 사실상 의학교육이 마비가 된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의학교육의 대상은 의과대학생 뿐만 아니라 졸업후 의사를 취득한 피고용인과 학생 신분의 성격을 갖는 인턴, 전공의 그리고 연구를 위한 석박사의 대학원생 그리고 의사로서 법정 이수의 의무가 있는 평생전문직업성개발(보수교육)의 연속적인 모든 과정의 교육생이다.

현대 의학교육의 최신 국제적 추세는 역량바탕 의학교육(Competency Based Medical Education)이다. 쉽게 설명해 어떤 의사에게 자신이나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바람직한 의사의 속성을 구인(Constructs,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요인)으로 표현한다. 이를 의사가 갖춰야 할 의사의 역량으로 전환해 의과대학 졸업시점, 인턴 수료시점, 전문의 취득 시기 별로 목표한 역량을 확보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과대학 학생, 인턴, 전공의 등 의학교육의 시기별로 평가해 역량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시대가 됐다. 

역량바탕 의학교육의 기본적인 철학은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아닌 실제 임상 역량을 보유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면서 의학교육의 사회적 책무를 구현하는 것이다. 전통적 임상적 역량과 더불어 의료제도, 윤리, 법규, 소통, 전문직업성교육, 비판적 사고, 교육, 연구 등의 다양한 비임상적 혹은 사회적 역량도 의사의 역량으로 보유해야 한다.

의사가 이런 다양한 역량확보의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학이나 관련 학문을 전공한 의사, 비의사 등 역량바탕 의학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교수의 확보도 필수적이다.

하버드의대는 학생 정원 160명이지만 2022년 기준 1만2304명의 의대 교수가 근무한다. 병원에 발령된 임상교수 포함인데 조·부·정교수가 6000명이 넘는다. 의료정책 전공 교수가 25명이고 국제보건과 사회의학(Global Health and Social Medicine) 전공 교수도 78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교수가 많다고 하나 실제로 다양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의사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교수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현재는 40개 의과대학 모두 합해도 하버드의대 하나보다도 못한 매우 부족한 현상이다.  

역량바탕 의학교육이 이제 겨우 출발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에 더욱 다양한 분야의 교수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각 대학재단이나 정부는 무관심하다. 중국의 북경의과대학이 설치한 의과대학 자체의 의인문원(Institute for Medical Humanities)은 전임교수가 12명이 넘고 겸임교수나 시간제 교수를 합하면 통 60여명이 재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의사 양성 교육에서 현재와는 월등한 수준의 교육적 투자가 요구되는 이유다. 

의학교육의 시기별 혹은 주기별 연속적 성장에 대한 개념은 어떤 교육과정을 채택하든지 필수적이다. 특히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전공의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학생 임상실습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의학교육이 갖는 연속성의 특징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인턴 교육은 의사로서 역량배양을 위한 고등사고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닌, 단순 노동집약적으로 만성적인 불만의 대상이다. 학생 임상실습 교육도 유람 관찰식 교육으로 임상과나 병원의 인류학적 탐사로 끝나는 수가 많다. 전공의 교육에 대한 개선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의과대학 학생 정원 확대에서 의과대학의 희망 정원은 아무래도 의학교육의 연속성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 급격히 늘어난 의과대학생 만큼 결국 전공의 수도 증가하지만 졸업후 교육에 대한 대책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의사 수를 늘리고도 의료 현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의 사례를 보면, 실패 원인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전공과목에 대한 조정이 의료인력조정(Health Workforce Regulation)의 핵심이다. 그나마 공적 자금으로 전공의 교육비를 지원할 때 가능한데 전공과목 선택에 대한 조정이 안되면 비인기과 기피나 인기과 집중 현상과 과잉 배출, 혹은 비급여과 선택으로 의료현안 해결은 고사하고 의료 환경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턴과 전공의교육에 대한 교육비 지원과 현대화, 그리고 전공과목 인원 조정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다. 단순한 의과대학생 증원은 그나마 현재 수준의 임상실습이나 인턴, 졸업 후 교육도 유지가 힘들어 보인다.

필자가 전공한 성형외과의 사례에서 이웃 나라인 타이완은 외과 수련 2년 후 4년간의 성형외과 수련으로 총 6년의 과정인데 성형외과 전임교수 4명당 한 명의 전공의를 선발할 수 있다. 

의학교육이 의과대학은 교육부로 그리고 인턴, 전공의는 보건복지부가 주무 부서로 분절돼 있는 데다, 의과대학과 대학병원도 분리돼 의학교육의 연속성의 문제는 정부 부처에도 존재한다. 교육부는 인턴, 전공의 교육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의과대학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희망 정원도 임상교육이나 인턴, 졸업 후 교육의 연속성을 염두에 둔 전문적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의과대학 정원이 확대된다면 전체 인턴이나 전공의 수 증가에 대비해 강화된 교육병원 기준과 의학교육의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거버넌스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협치는 가능할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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