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도입시 고려해야 할 8가지…수가는 얼마여야 하고 법적 책임 피할 수 있나

일본, 왕진·방문진료 구분 운영…왕진 수가 8만 5000원, 왕진의사 월급 1200만~1400만

일차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지역의사회가 책임지고 의협이 주도적으로 나설지 논의해야

▲(왼쪽부터)박형욱 위원장, 김영재 위원장, 장현재 위원장, 박종혁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 황재영 노인정보연구센터 대표, 임지연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등 토론자.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방문진료(왕진)은 응급환자 의료행위를 위해 의사가 24시간 대기를 하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적이고 정기적인 의사의 방문을 말하는 것일까. 왕진을 시행하는 일본의 재택환자 방문진료 수가는 8만5000원(수가 833점, 1점당 10엔) 정도이며 왕진만 하는 의사의 월수입은 1200만원에서 14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왕진 수가를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 서울과 지역의 왕진의 역할은 어떻게 다르게 가져가야 할까.
 
대한의사협회 KMA POLICY 특별위원회는 18일 오전 10시부터 12시 40분까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일차의료기관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방문진료(왕진) 제도 도입시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자료집 PDF)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토론 패널과 POLICY 위원들을 비롯해 이 사안에 관심있는 일반 회원들이 상당수 참석해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왕진의 필요성은 고령화 시대에 대한 대응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건강보험 진료비 총액은 27조 6533억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39.9%를 차지했다. 건강보험 진료비 가운데 노인 진료비의 비중은 2011년 33.1%에서 2013년 35.4%, 2015년 37.6% 등으로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장현재 KMA POLICY 특별위원회 의료및의학정책분과위원장은 주제발표에서 “고령화와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왕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거동이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취약지 등에서 의사의 방문진료를 확대하기 위한 의사 왕진 활성화를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으로 의사가 방문진료를 했을 경우,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가산한 별도 수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최근 의료계 등을 초대해 왕진에 대한 의견수렴을 한 번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의료계에서 처음으로 열린 왕전 공청회에서 나온 다양한 각도의 생각해볼 점은 8가지로 요약된다.  
 
▲일본 왕진과 재택의료의 수가 비교. 자료=의협 의료정책연구소 


①왕진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일본은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커뮤니티케어)의 일환으로 왕진 제도가 활성화됐다. 일본은 왕진과 방문진료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정확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임지연 연구원은 “일본 재택환자 진료는 환자의 요청을 받아 의사가 진료에 응하는 24시간 응급 개념의 ‘왕진’이 있고 정기적이고 계획적으로 진료하는 ‘재택환자방문진료’로 구분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두 가지 분류에 따른 의사의 역할이나 진료수가 산정방법도 구분하고 있다. 24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 왕진이 방문진료보다 더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며 더 수가를 높게 매기고 있다”고 했다. 가령 일본의 왕진 대상은 왕진 결과 급성심근경색, 뇌혈관장애, 급성복부질환 등이 예상되는 경우, 의학적으로 말기인 환자 등이다. 방문진료 대상 환자는 거동이 불편하며 고령자이며 만성질환(고혈압, 당뇨병, 폐·위장질환 등), 치매나 요통, 무릎 관절통 등 만성질환 및 말기환자 등이다.
 
일본은 2015년 기준 왕진 14만건, 방문진료 70만건이 이뤄졌다. 재택의료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의원은 약22%, 병원은 약 30%수준으로 조사됐다.
 
②의료법상 왕진을 허용하고 있는가.
 
▲박형욱 교수 토론자료 

우리나라 의료법상에서는 왕진을 허용하고 있으나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아 활성화되지 못했다.
 
박형욱 KMA POLICY 특별위원회 법제및윤리분과위원장(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 따라 의료기관 내에서 진료를 해야 한다. 다만 의료기관 외에서 가능한 경우는 응급환자 진료,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 기타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진료해야 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등으로 사실상 왕진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다.
 
박 위원장은 “건강보험법령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에 매우 큰 재량이 부여돼 있다. 복지부가 방문진료의 필요성에 대해 정책적 전환을 한다면 건강보험수가 등에서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많은 수단이 있다”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하지만 복지부는 방문진료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지부의 자발적인 정책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라며 “만일 이러한 자발적인 정책전환이 없다면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기동민 의원의 방문진료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③왕진 수가는 얼마여야 하나.
 
그렇다면 왕진 수가는 얼마를 책정해야 적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김영재 KMA POLICY 특별위원회 건강보험정책분과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진찰료와 해당 수기료를 건강보험 수가로 산정하고 구급차 이송 등 교통비 정도만 실비로 인정한다”라며 “각종 진료 장비나 보조인력의 제한이 있는 병원 외에서의 위험성 높은 진료를 하고 있음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적정 보상을 위해서는 왕진인지 계획된 방문진료인지, 환자 처치를 위한 방문인지에 따라 수가가 다를 필요가 있다”라며 “의사가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 대신 방문진료를 하면 그만큼의 손실이 있고, 의사의 노력이나 위험성이 높을 수 있다, 혹시 모를 폭력이나 성희롱 등의 위험성 등 기회비용, 위험비용, 노력에 따른 가중치 반영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긴급 왕진 수가는 약 8만5000원이다. 야간과 휴일 왕진수가는 17만원, 심야 왕진수가는 27만원이 책정된다.  방문진료 수가는 자택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환자에게 약 8만5000원을 매기고  동일 건물 거주자는 2만원이다. 유료 노인 홈 시설에 입주한 환자는 약 1만5000원이다.  

김 위원장은 “방문진료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손실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 하도록 돕는다는 측면의 의료 소비자에 대한 제공되는 가치의 크기를 반영해 줄 필요가 있다. 계획된 방문진료는 방문 진료이외에도 평상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특정 관리료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례로 2016년 시행된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은 환자 만족도는 높았지만 의사 초진료 10만 2310원 (환자 부담 5120원)으로 책정됐다. 이로 인해 수가가 너무 낮아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일본과 같이 방문진료 전문의료기관이 생긴다면 방문진료만으로도 개원한 의사들의 수입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루 방문가능한 환자 수와 한달 수입을 고려해서 적정 수가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한 법제 위원은 “일본 의사 구직사이트를 보면 진료과별 차이는 없고 왕진만 하는 의사 월급이 1200만원~1400만원 정도로 책정돼있다”라며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왕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④왕진은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이 본질
 
▲황재영 대표 토론자료 

일본은 왕진으로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환자를 어떻게 더 잘 진료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여기서 제도 정착에 성공했다.
 
황재영 노인연구정보센터 대표는 “일본은 임종을 맞이할 때 집에서 편안하게 맞는다는 지역포괄시스템의 연장선상으로 방문진료가 도입됐다.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의료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황 대표는 “우리나라는 요양병원에서 200만원을 쓰다가 재택으로 와서 50만원의 의료비로 끝내려고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도 왕진을 늘린 다음에 의료비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일본의 왕진 제도는 생활의 질이나 그 사람의 존엄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한다. 의료의 질이라거나 삶의 질을 위한 것이며 비용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초저수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했다.
 
⑤왕진에 대한 법적 책임이 따르나. 
 
의사가 왕진을 갔을 때 이뤄진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소송에 휘말릴 수 있고 모든 책임을 의사가 지게 될 수 있다.
 
선재명 정책분과 위원은 “방문진료를 한 의사가 어떤 의료를 제공할 것인가. 표준화된 진단이나 치료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 문제가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안전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장현재 위원장은 “모든 환자가 방문진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박형욱 위원장은 “법체계에서 재택의료를 규정해두기는 어렵다. 다만 기술적으로 방문진료 또는 재택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기재해놓고 이를 의사나 관련인이 책임지긴 어렵다는 지침을 마련해놔야 한다. 법적 책임 규정을 마련하지 않으면 의사 상대의 소송 등 여러 가지 우려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재택의료는 건강 자체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다.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⑥일차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것 
 
이번 왕진의 개념 도입으로 일차의료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에선 왕진을 주로 하는 의사는 일차의료기관의 의사가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현재 위원장은 “2015년 기준 일본에서는 의사가 환자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가 매달 70만건, 환자가의사를 부르는 왕진이 매달 14만건 등 한 해 약 100만건의 진료행위가 환자 집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 내 전체 의원의 22.4%인 2만 597곳이 방문진료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조성준 건강보험분과 위원은 “왕진을 도입하면 일본의 형태와 유사하게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을 때 일본이 도입을 하고 난 다음에 일차의료기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요양병원은 어떻게 변화를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재영 대표는 "일본은 지역의사회가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라며 "의원이나 200병상 이하 병원들이 지역사회에 애착이 강하다 보니, 수가 자체보다 지역사회를 위해 왕진 제도가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⑦다른 직역과의 이해관계 조정 필요 
 
방문진료가 가능하다면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의 다른 직역도 방문을 통한 행위를 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이 때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정성균 법제분과 위원(의협 기획이사 겸 의무이사)은 “왕진은 환자에 대한 필수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질될 수가 있다”라며 “일본은 의사의 직역 외에 다른 직역에서 경제적인 목적에서 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어떤 대책을 갖고 있을지"를 언급했다. 
 
장현재 위원장은 “정부는 이미 깊숙이 커뮤니티케어를 위해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라며 “방문 간호사들이 이미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진료하는 공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방문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박종혁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정부의 주장을 보면 의사회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방문진료를 간호사한테 주겠다는 등의 반협박성인 발언이 많이 한다”라고 했다. 박 이사는 “의료계가 커뮤니티케어 등의 제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주도적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커뮤니티케어나 미래 방향에서 의사가 당연히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황재영 노인연구정보센터 대표는 “일본에선 재택의료가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면서 모든 직종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의사들이 역할 분담을 해주고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차의료에서 의사가 모든 직종과 싸우고 결국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 일이 많다”라며 "일차의료를 위한 방향으로 의료계의 참여는 필수"라고 했다. 

⑧지역 특성 살리고 의협 주도 여부 결정해야 

왕진의 모형은 ▲일차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가 진료시간 또는 진료종료 이후에 예약한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실시(겸업형)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당번 의사 순번을 정해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실시(네트워크형) ▲의료기관을 운영하지만, 기관내 진료가 아닌 방문진료만 전담해 실시(전담형) 등이 검토되고 있다. 여기서 개원의들이 역할을 하려면 지역의사회가 참여하는 네트워크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서희태 위원은 “서울에서 하는 왕진과 지역에서 하는 왕진은 다르다. 지역의사에 대해서는 이 부분을 판단해봐야 한다. 현정부 들어와서 지방분권이나 지방복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건강보험에서 지역의 역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학회나 의협 차원의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복지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왕진을 활성화할 것인지,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 

박형욱 위원장은 “일본의 왕진은 의료기관 입원중심 의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급속히 증가하는 고령화에 맞춰 정책적 변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라며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복지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구조다. 의협과 복지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에 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의협이 이를 주도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선재명 위원은 “의료계가 커뮤니티 케어 사업 전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지역의사회가 참여하고 이를 위해 의협이 TF구성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편, 최대집 의협 회장은 마지막 발언에서 “왕진이나 방문진료가 우리나라 의료제도 환경에서 활성화되려면 진찰료가 인상돼야 한다. 진찰료 초진 1만5000원, 재진료 1만원에 불과한데, 진찰료 인상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최 회장은 “사법부는 의사의 의학적인 결과를 놓고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의사들이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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