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가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의사들에게 질병을 충분히 설명할 시간을 주고 그만큼 보상해야"

[칼럼]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이세라 칼럼니스트]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해 의사 3명을 구속한 판결의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의료사고를 경험한 환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 듯하다. 먼저 ‘의료 사고’라고 지칭되는 여러가지 사건들로 발생한 많은 희생자와 유족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명한다.

며칠 전 메디게이트뉴스에 의료사고를 겪은 환자들의 고충이 소개됐다.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유족,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의료사고로 형사소송 경험이 있거나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불만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된 내용을 보면 ① 충분한 설명 부족 ② 투명한 진료기록 의구심 ③ 의료사고 대처 전담 부처 전무 ④ 의사 편을 드는 감정 제도 ⑤ 의사와 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었다. 

사실 위의 5개 사항 모두 의사와 환자간 신뢰가 있다면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신뢰의 바탕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변수를 둬야 한다고 본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시간, 보호자와 의사 사이의 시간 등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5개항의 불만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먼저 의사는 환자를 한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은 소명을 가지고 의업(醫業)을 배운다. 어떤 의사라도 아무 이유없이 ‘의료사고’라고 불리우는 멍에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의업의 본질이다.

우선 ‘충분한 설명 부족’ 에 대한 해명을 해보고자 한다. 아마 이 설명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의료 혹은 의료행위는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들조차 설명을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난감할 경우가 많다.

생명보험을 가입할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송이 많이 발생한다. 이 소송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보험약관에 대한 설명의 의무다. 약관의 내용이 제대로 설명됐는지 아닌지 판사들이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와 논란을 거쳐 현재는 약관의 주요내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는 것을 자필로 구구절절 써놔야 한다. 서명도 여러 군데 직접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보험 모집인이 문책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전 혹은 변화하게 된 과정에는 우리나라에 1921년 최초의 생명보험회사인 ‘조선생명주식회사’가 설립된 이후 수많은 소송이 누적되면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의료 문제는 보험약관과 다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복잡한 생명과 관련한 모든 활동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하나의 이유다. 의학적인 진단 과정과 치료방법을 몇 줄의 수술 서약서나 설명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문제를 해결해서 문장 몇 줄로 남긴다고 하더라도 환자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필자가 환자들에게 우스갯 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방금 말씀드린 의학용어 아시겠어요? 열공성 뇌경색 아시겠어요? 영어로는 lacunar infarction 이라고 하는데요. 뇌의 심부에 생기는 작은 경색성 병소인데, 구멍을 형성하는 것을 열공(lacuna)이라고 하고 뇌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그런데 의학 용어는 한글로 해도 모르고, 영어로 해도 모르고, 한자로 해도 모르고, 라틴어로 해도 모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립니다.”

과연 의사가 아닌 독자들은 방금 이야기한 열공성 뇌경색이라는 질병을 윗글만 보고 이해가 될까. 의학용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일반 환자나 국민들을 이해시키기란 대단히 어렵다.

설명의 부족, 충분한 설명을 안하는 의사들의 문제는 앞서 설명한 ‘시간’이라는 측면이 있다. 대형병원에 가면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들을 많이 볼 수 있고 특히 유명한 의사를 만나 설명을 듣기는 더욱 힘들다. 많은 환자들이 환자 진료에 바쁜 의사를 하염없이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들도 환자에게 시간을 투자할 여유를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의사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서 설명을 듣도록 해야 한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매일 20분 이상으로 규정할 수 있길 바란다. 이렇게 하면 설명 부족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충분한 시간동안 환자와 보호자에게 질병과 치료과정을 설명한다면, 이런 제도가 자리를 잡는다면 환자와 의사 사이의 불신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다만 일각천금(一刻千金), 시간은 금이다. 정부는 그 시간에 대해 의사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에게 설명의 의무만을 부여한다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생각해 달라는 뜻이다. 환자들의 시간도 물론이고, 다수의 환자들이 기다리는 의사들에게 시간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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