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금칙어 '스마트'와 '디지털'

과연 언제쯤 해금될까??




기자는 의료라는 영역에서 '디지털'이나 '스마트'란 단어를 언급하는 게 두렵다.
 
언제부턴가 국내에선 '의료+IT=원격의료'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양념'을 첨가하지 않으면, '디지털'이나 '스마트' 같은 단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 전문지조차 핵심을 피해 '의사-프렌들리'한 입장만을 대변한다.
 
 
기술을 기술이라 부르지 못하고...
 
욕 좀 덜 먹으려고, 사족이 길었다.
 
기자가 응급의학회 학술대회를 찾아 대구까지 갔던 건, '응급의료 속의 IT 발전'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세 가지 세션으로 채워진 이 프로그램 중, 단연 눈에 띈 건 '스마트 의료지도'였다.
 
제목엔 오해받기 좋게 '스마트'가 붙었는데, 이 세션 연자도 그런 점을 의식한 듯, '스마트 의료지도'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 사업'임을 강조했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병원 밖에서 심정지 환자(OHCA)를 맞닥트린 구급대원의 현장을, 의사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지도하는 사업이다.
 
세션의 연자였던 K교수(S의대 응급의학과)는 이 사업에 대해 병원전(Pre-Hospital) CPR 현장을 '응급실'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출처 : 광주광역시청>


K교수가 밝힌 '스마트 의료지도' 사업의 내용은 이렇다.
 
6명이 팀을 이룬 구급대원은 귀 부위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해 먼 거리에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CPR 상황을 화면과 음성으로 전달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카메라를 통해 환자 상태, 심전도 리듬, 구급대원의 처치 상황을 확인한 후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음성으로 지시한다.  
 
K교수가 공개한 실제 상황 동영상엔, 수초 만에 상황을 파악한 전문의가 두서없던 현장을 장악해 체계를 잡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PK(의대생 실습) 시절, 도떼기 시장 같던 응급실에 홀연히 나타나 환자들을 단번에 제압해 유유히 사라지던, 의사라면 누구나 맘에 품고 있을 '괜한 환상을 심어준 선배'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만큼 꽤 멋졌다.
 
 
<사진출처 : 채널A>


어쨌든, K교수는 이 사업을 통해 병원전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순환 회복)를 5.9%에서 20.6%로 3.1배, CPR환자의 신경학적 호전을 3.4%에서 6.0%로 1.6배 증가시켰다.
 
이 멋진 사업은 결과까지 유의미했고, 기자는 동영상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K교수를 찾아갔던 기자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K교수는 공유라는 단어가 입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해와 비난을 사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의 몸짓은 단순한 거절 이상으로, 그동안 그가 겪었던 '맘고생'이 느껴질 정도였다.
 
기자는 더이상 요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교수 실명 대신 K라는 이니셜을 적었다.
 
 
 
만성화하는 의료계 보수화
 
의료계는 새로운 정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단, '수가'란 단어가 들어간 정책은 예외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에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정책의 변화를 주로 경험해왔다.
 
단 한 번도 크게 이득이 될만한 정책을 경험하지 못한 의사들로선, 변화가 곧 손해라고 인식할 만하다.
 
셀프 코호트 연구(?)를 통해 '변화'보단 '정체'의 리스크가 낮다고 판단한 의사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피해의식이 지속하면, 국민을 위한 정책에 찬성해줄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보수화는 의료계-정부 간 불신 때문이다. 

국내에서 '원격의료'란 단어가, 새로운 기술 대신 어떤 정책의 의미로 변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결과 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은 모든 디지털 기술로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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