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개특위가 내놓은 관변 의사 인력 추계기구...투명성과 신뢰 없는 논의는 또 다른 ‘붕괴’ 우려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그동안 간헐적이고 비체계적인 의사 추계 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개특위는 정부의 한시적 위원회가 보여주는 행정편의를 고려해 추계기구 역시 관료주의 모델로 결정됐다.
 
정부의 실행 방안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내에 ‘의사인력수급추계센터’를 신설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통합적 인력정책 지원 전문기관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즉, 관료 주도 의료의 약점인 하부 실행구조 미비라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책 연구기관 내 의사추계기구를 설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의사인력추계는 정치적 논의 구조가 아닌 전문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사결정기구는 더 문제다. 현재 보건의료기본법상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활용해 추계결과 반영 방식 등을 결정하고, 인력의 양성과 배치를 논의하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 시행 후 활동이 없다가 2023년 8월에 법 제정 후 4번째 회의를 소집했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아 정부 측 위원 7인, 민간위원 6인, 공급자 대표 6인, 전문가 5인 총 25인으로 구성됐으나,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어떤 논의와 결정이 이뤄졌는지 그 내용을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이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첫 번째 요구사항으로 의료계나 정부 모두 신뢰할 만한 추계기구를 설립해 의대 정원에 대한 규모를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제야 비로소 전공의 단체 요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관변 추계기구의 실체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최근 정부는 고령화에 따라 급증할 의료수요 대응,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적정 의료인력 규모를 분석하고, 중장기 인력 수급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의료인력은 급증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의료인력수급추계기관으로 결정할 경우 의료계는 또 다른 국가 통제기구로 인식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으로, 보건복지부로부터의 독립성은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의료인들에게 보건사회연구원은 필수 의료 붕괴를 가져온 공정한 보상과는 거리가 먼 초저가 수가 유지를 위한 맞춤형 자료를 생성해 정부에 제공한 기관으로 인식한다. 
 
이번에도 면피성이면 안 하느니만 못해 의-정 갈등만 더 커져   
 
의료계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보여준 보건의료 정치의 부재와 정책 설립 정당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무리한 의사결정의 절차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현재 의료계와 정부는 상호 간의 신뢰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이처럼 신뢰가 상실된 관계에서 다시 국책 연구기관에 의사추계기구를 설치한다니 또 다른 갈등만 만들어 낼 개연성이 분명해 보인다. 
 
이미 각종 청문회에서 보여준 의료인력 관련 고위 관료들의 역량은 절망적이고 좌절스러웠다. 숨길만한 성격의 회의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모든 것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며 변명으로 일관하던 이들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급 관료들인지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번에 의사인력추계를 위한 전문기구를 국책 연구기관에 설치하는 결정도 의료계의 깊은 실망적 기대치에 벗어나지 못한 관료주의 국가의 전형적 모습이다. 
 
추계기구에는 의사가 반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시민단체나 비전문가단체는 절차적 정당성과 타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상위위원회에 소수만 참여해도 충분하다. 추계 위원은 당연히 전문성이 우선돼야 한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행정적 지원만 하는 일본의 의사추계기구인 ‘의사수급분과회’는 전체 위원 22명 중 의사가 16명, 간호사 2명 법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교육학자가 각각 1명이다. 2015년에서 2022년 1월까지 40회의 회의를 개최해 보정심에서 1회 1시간 회의를 한 우리나라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본의 의사 추계에 관한 회의는 녹취록과 참고 자료 모두 일반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고 노동후생성 전산망에 접근하면 누구라도 열람이 가능하다. 
 
관변 기관이 주도하면 정부가 기획한 정책만 반영될 가능성 농후  
 
우리나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행정지원을 한다는 추계기구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할지는 의문이다. 무엇이든 권력의 힘으로 “논의가 필요 없다, 혹은 공개할 수 없다”라는 관료의 주장이 마치 규범이 된 나라가 됐다. 인력 추계의 기초자료는 의사면허기구가 없으니 아마도 건보공단의 활동 의사의 청구를 근거로 자료를 생성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사추계기구를 설치한 이유는 전공의들이 요구한 대로 독립적 기구를 만들 경우, 법을 바꾸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필요해 우선 보건사회연구원이 임시로 추계기구를 유치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현재 정부와 의료계의 심각한 불신을 고려하면 국책기관에 추계기구 설치는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해볼 수 있다. 
 
국가에 따라 모든 공적 사안을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나라가 있고, 반대로 전문직과 정부 혹은 전문직과 국가 간의 관계 설정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별도의 법이 없이도 민간 공공기구나 아니면 법으로 설립 근거만 제정한 민간 법정단체의 자격만 부여해도 공신력 있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나라들도 많다. 
 
좋은 사례로 우리나라의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사협회가 출연한 인정평가위원회로 출범했다. 자발적 의지로 뭉쳐진 선각자들이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로 대단한 기여를 한 셈이다. 그리고 교육부의 정식 인정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와 상당히 소모적인 이견으로 긴장 관계가 조성됐고, 공식 기관으로 인정받는데 무려 4년 동안의 ‘아깝고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됐다. 정부 관료가 보여주는 관료중심주의 행정은 실제적인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 실현의 구현과는 대칭적인 역할이 될 수가 있다.

돌이켜보면 교육부는 민간 기구의 공적 역할 담당에 대한 심한 불편함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전문직의 노력으로 국제적인 평가인증을 시행하는 의학교육평가원의 전문성을 추월할 만한 전문성이 정부 부서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교육부가 공식적인 기관인정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었다. 
 
투명성과 신뢰 없는 논의는 ‘개선’보다는 또 다른 ‘붕괴’ 우려
 
전공의가 요구한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의사 인력 추계 전문기구를 구성하는 노력을 진작에 했더라면 지금쯤 근거 없는 2000명 증원보다 훨씬 더 수용 가능한 추계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의개특위는 빨라야 올해 말이나 의사 추계기구를 출범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도출해 낸 결과물이 연구의 타당성과 독립성에 대한 담보가 이뤄질지 벌써부터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역사를 보았을 때 정부 정책을 위한 대표적 관변 연구기관이고, 기관의 전문가급 연구원들이 보건의료를 위한 각종 토론회나 학술회의 등에서 보여준 발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판단해 보면 결국 현재의 필수 의료의 육성이나 개선보다는 오히려 ‘붕괴’를 가져온 데 일익을 담당한 느낌이다. 
 
가령 공정 보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조차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초진료’에 대한 공정 보상을 의료계가 주장하면, 초진이 차지하는 의료비가 워낙 커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는 이른바 정치적 수사로만 일관해 왔다. 결과로 공정 보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제 하나도 지난 30년 넘게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국책연구원이 보여주는 한계 속에 “민간과 전문직, 그리고 정부의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역시 “아니오”라는 대답이 지배적일 것이다. 
 
아마도 연구기관으로 학문적 차원에서 추계의 모형, 변수, 활용 등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가능해 보인다. 건보공단이 생성하는 자료를 이용한 연구 결과의 한계도 분명하다. 그나마 이런 정보조차 비공개로 하는 경우 사회적 신뢰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과 같이 의사면허기구에 의한 의사 활동에 대한 정확한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보다 객관적인 자료 생성은 어려운 실정이다. 연구기관이라면 강의실이나 연구실, 그리고 학회에서 논의될 수 있는 학술적 차원의 연구 역량은 내재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인 의료 현장에서 예측이 가능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결과의 도출은 많은 현장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관변 연구기관의 성격을 갖는 의사추계기구에 의한 결과도 아마도 ‘고령화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의료인력 대비’라는 용산 대통령실의 한마디로 연구 결과는 이미 가시적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개혁을 위한 조치라면, 우선 의사추계 기구에 대한 독립성, 구성원의 타당성과 투명성 등 보다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면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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