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도 성급한 시행으로 시행착오…조력존엄사법 앞서 사회적·제도적 준비부터

[칼럼] 김영재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윤리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달 16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끝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됐다. 현행법에서는 사망 직전 임종과정의 환자에 한해 단순히 생명연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임종 상태가 아니더라도 약물 투여를 통해 죽음을 앞당기는 것까지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조력 존엄사법에 설문조사 대상자 82%가 찬성한다는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존엄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뜨겁다. 하지만 생명이 달린 문제인 만큼 쉽게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직 존엄사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준비가 미비한 상태다. 
 
존엄사법을 가장 먼저 도입한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어보자. 네덜란드 현행법상으로 12세 이상 미성년자의 존엄사는 합법이다. 심지어 네덜란드 소아과 학회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2세 이하의 어린이들도 안락사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성년자에 대한 안락사가 가능하다고 하면 존엄사법에 대한 찬성 비율이 여전히 80%를 넘을 수 있을까? 미성년자가 본인의 안락사 여부를 올바르게 판단할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가능성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2002년 존엄사법이 도입된 네덜란드의 경우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의 수는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2016년 기준 매일 16명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나아가 이제는 70살이 넘으면 별다른 질병이 없어도 안락사를 허가하라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법안이 통과되면 안락사의 기준과 수는 필연적으로 늘게된다. 어찌보면 생명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다.

존엄사를 쉽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오래 사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가족과 사회에 짐이 된다고 자책하는 노년층이 발생할 수 있다.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반대로 존엄사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최대한 치료를 하면서 가능한 오래 살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봐 치료를 중단하고 삶을 마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가족 입장에서도 ‘괜히 나 때문에 부모님이 존엄사를 선택하신 것은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지는 않을까? 자식들에게, 배우자에게 평생가는 마음의 짐을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조력존엄사를 시행하는 의사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조력존엄사가 사실상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다. 그런데 의사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그런 의사들에게 누군가의 삶을 마감하는 업무를 시키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원치 않는 의사 대신 다른 의사에게 조력존엄사를 시행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존엄사 시행 후 의사가 직면할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사회적 준비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 신념 상 안락사 집행을 거부하는 의사에게 어떠한 유형의 불이익도 줄 수 없는 제도적 보호 장치도 필요하다.

아직 존엄사를 실시했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이 많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측면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조력 존엄사법 입법은 시기상조이며, 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야기할 뿐이다. 네덜란드에서 존엄사를 도입했던 보건장관 또한 '준비되지 않은 너무 성급한 시행'이었다고 고백했다. 안락사보다는 호스피스 등 완화의료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음에도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으로 성급하게 결정됐다는 것이다.

한국은 네덜란드의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존엄사를 시행하기에 앞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준비를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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