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주 찾아보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교통사고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 중에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가 책임 정도를 가려주는 것도 있다. 다양한 사고를 보면 안전운전을 다짐하게 된다.
지난 4월 7일 전문 변호사가 운영하는 ‘한문철TV’에 소개된 사고를 보자. 왕복 2차선의 시골길이다. 농로와 이어지는 작은 교차로가 있는데 왼쪽에서 노인이 사륜오토바이로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분은 무면허, 무보험에 헬멧을 쓰지 않았고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에 왼쪽만 쳐다보고 차량 운전자가 진행하고 있던 오른쪽은 보지 않았다. 운전자는 앞차와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규정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했고 사륜오토바이 운전자는 사망했다.
동영상을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은 차량 운전자에게 어떤 과실도 없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는 20~30%의 과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민사 재판은 차량 운전자 20%, 사륜오토바이 운전자에게 80%의 과실이 있다고 판결했다.
사고 예측하지 못한 차량 운전자, 사망 형사합의금으로 3000만원 지급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은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는 일시 정지하고 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차로라고 하기에는 이어지는 길이 논두렁 정도였고 중앙선이 끊어져 있는 것도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만일 내가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사고를 피할 자신이 없어보였다.
문제는 사망 사고이기 때문에 형사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민사 재판과 별도로 형사재판이 진행됐고 차량 운전자는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차량 운전자는 형사합의금으로 피해자에게 3000만원을 지급했고 선고 전 변호사는 형사합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구속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차량 운전자는 예상할 수 없는 교차로에서 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사망하게 해서 정신적인 피해를 크게 받고 전과자가 됐다. 차량 운전자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됐을까. 만일 책임보험이 아니라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료 할증 이외에 추가로 민사상 부담을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월 1만원 정도의 운전자보험에 가입했다면 합의금과 변호사 비용, 벌금을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적 피해, 재판에 출석하는 시간 손실 등의 보이지 않는 손해와 보험료 할증을 제외하면 사망사고라 하더라도 큰 재산상 손실은 겪지 않을 수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지 않고 운전자가 13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잘못이 없다면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면 과실 중과실치사상죄이기 때문에 형사합의를 하게 되면 거의 모두 실형을 받더라도 구속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은 그 특성상 작은 과실로도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중상해를 입힐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의료사고의 형사 책임을 따진 눈에 띄는 재판들이 있었다. 접촉성 피부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의증)으로 한방치료를 받다 사망해 1,2 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 분만 중 태아가 사망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했으나 2, 3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 등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은 1심에서 무죄, 횡격막 탈장 오진 사망 사건은 1심에서 3명 모두 유죄였으나 2심에서는 3명 중 한 명은 무죄, 두 명은 유죄를 선고 받아 상급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 사건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줬다. 처음부터 구속수사를 하거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구속이 되기도 했다. 그럼 대한의사협회의 발표대로 의료행위에서 ‘오진이 있을 수 있으나 고의가 아’닌 사건에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초유의 일’일까.
교통사고 화재사고 등 과실 피해 방지하기 위해 보험제도 운영
작은 과실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의료 뿐만이 아니다. 모든 운전자는 전방주의 의무위반, 졸음, 조작 미숙 등의 비교적 사소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수 있고 불을 다루는 식당에서는 사소한 부주의로 화재가 일어나 사망자가 생기곤 한다. 최근 몇 년 간에도 대형건물에서 사소한 잘못에 의한 화재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런 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인명과 재산을 보장하는 책임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특히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자동차 운전은 사람에 대한 무제한적인 배상을 하는 보험으로 ‘고의가 아닌’ 과실로 파산하거나 형사처벌 받는 것을 막고 있다. 또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민사소송과 별도의 형사합의를 하면 구속은 하지 않아 이를 보장하는 운전자보험이 민간영역에서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지난달 대한의사협회에서 주관한 한 토론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의협 회원이었을 방청객들에게 운전자 보험 가입 여부를 물었고 절반 이상이 가입했다고 답했다. 이 글을 읽는 의사 가운데 자동차보험을 종합보험이 아닌 책임보험으로 가입한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고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의사라면 환자를 보는 시간이 운전하는 시간보다 많을텐데, 운전 중 과실을 대비한 종합보험과 운전자보험에는 가입하면서 의료업무 중 과실을 대비한 최소한의 책임보험 도입을 거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실 책임 걱정된다면, 배상공제조합 한도와 형사함의금 보장 높여야
정말로 의료업무 과실에 의한 법적 책임이 걱정된다면 의협이 직접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의 배상 한도를 현재의 최대 3억에서 현실적으로 올리고, 현재 500만원에 불과한 형사합의금특약의 보장을 높여야 한다. 운전자보험도 보통 합의금 특약으로 3000만원을 보장한다.
이렇게 한다면 과도한 보험료가 청구될까. 보장 한도를 2배 올린다고 보험료가 2배로 느는 것은 아니다. 의협이 공제조합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직접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치점수의 1.8%는 ‘의료사고와 관련된 분쟁 해결 비용의 보상’ 명목으로 책정돼있다. 만일 이 금액이 보험료에 미치지 못한다면 근거를 제시하고 인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보험료만큼 확실한 근거는 없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의협은 아예 ‘의업을 접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감성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들이 죽음을 다루는 의료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의료계에 특별히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른 영역에서도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사고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으면 형사처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민법과 형법을 바꾸자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마 수년, 수십년 이내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시위가 아니다. 다른 영역처럼 과실로 인한 사망, 상해 사고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보호하는 배상보험을 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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