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보통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금연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이미 95% 정도가 니코틴 중독 상태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금연을 단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금연을 위한 좋은 방법을 조언해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VBA(Very Brief Advice)는 대화를 30초 안에 끝낼 수 있으면서 흡연자가 장기적으로 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뛰어난 방법이다."
영국 런던 원즈워스 의료센터(Wandsworth Medical Centre) 원장인 알렉스 보박(Alex Bobak) 박사는 금연치료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영국 최초 금연전문의(GP Specialist)로, 영국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금연치료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년간의 금연치료 경험을 토대로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금연치료 상담법인 VBA를 개발했다.
이 상담법은 환자들을 늘 접하는 임상의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설계됐다. 10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가정의학회 학술대회(WONCA 2018) 참석을 위해 방문한 보박 박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VBA를 소개하고, 보다 효과적인 금연치료 및 상담을 위한 노하우 및 금연치료 최신 트렌드를 소개했다.
VBA, 의사가 했을 때 가장 효과…진료과목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
보박 박사는 "한국 의료진들은 환자 대면 시간이 짧기 때문에 금연 조언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이러한 고민들을 반영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금연치료를 할 수 있도록 집약한 것이 VBA다"고 말했다.
VBA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 가지의 질문 및 조언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환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ASK)이고, 두 번째는 금연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 금연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해 주는 것(ADVISE)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치료를 어디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하는 것(ACT)이다.
보박 박사는 "이렇게 구성된 VBA는 해당 대화를 30초 안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면서 "VBA에서 환자와의 갈등(confrontation) 상황을 최대한 줄이고 환자에게 유용한 조언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보통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금연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VBA 상담법은 환자와 대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긍정적인 상호작용(interaction)을 가져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따라서 금연에 관심이 없는 환자도 상담 중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고, 이후에 스스로 금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보박 박사는 VBA 상담법의 효과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폴 아비아드(Paul Aveyard) 교수가 수행한 메타분석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VBA의 치료필요수(Number Needed to Treatment, NNT)는 51이었다. NNT는 비용 대비 치료 효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1명의 치료 효과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치료 환자 수를 의미하며, 숫자가 낮을수록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보박 박사는 "상담 시간이 30초가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51회에 걸쳐 상담을 해도 총 25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면서 "다시말해 의사 한 명이 25분만 투자하면 흡연자 한 명이 장기적으로 금연에 성공하는 결과를 낼 수 있어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뛰어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VBA의 또다른 특징은 진료과목과 상관없이 의사라면 모두가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반드시 임상전문의나 의사일 필요도 없다.
보박 박사는 "원즈워스 의료센터에서는 접수 직원들도 VBA 상담법을 활용한다.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해 접수할 때 여러가지 질문과 함께 흡연 상태를 물어보면 VBA 상담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데, 이 때 환자가 관심을 보이면 금연상담 예약을 잡아준다"면서 "이처럼 의료진 외에도 VBA를 활용할 수 있지만,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의사가 직접 VBA 상담을 진행할 때 효과가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VBA는 아직 영국의 모든 병원에서 활용되는 방법은 아니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좋은 상담법이라는 인식이 높아져 이를 활용하는 의료진이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고 말했다.
금연치료, 챔픽스 약물치료와 의료진 상담 병행했을 때 가장 효과
보박 박사는 금연치료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선택을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챔픽스(Champix, 성분명 바레니클린) 약물 치료가 가장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해당 치료에 니코틴 대체 요법(NRT)을 결합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행동 지원도 같이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인 금연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금연치료 방법은 모든 흡연자에게 대부분 비슷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흡연자들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금연치료 옵션들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프로피온과 같이 챔픽스와 다른 기전을 가진 약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의 경우 챔픽스와 전문가의 상담을 병행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챔픽스는 흡연자들을 위해서 개발된 최초의 금연치료제로 2006년도 처음 허가를 받았다. 보박 박사는 챔픽스 허가 당시 프랑스 에밀르후병원(Hôpital Emile Roux) 앙리 오반(Henri-Jean Aubin) 교수가 진행한 안전성과 효과 관련 임상연구에 참여했다.
보박 박사는 "그 연구에서는 니코틴 패치와 챔픽스를 비교했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건의 임상 연구가 진행이 되었는데 항상 챔픽스가 여러 치료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좋다는 동일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박 박사는 "챔픽스 처방 이후 의료진의 상담까지 제공될 경우 장기 금연성공률은 30%까지 높아질 수 있다. 아무 도움 없이 금연에 성공하는 확률이 3~5%인 것도 매우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금연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챔픽스를 통한 금연치료의 금연성공률이 30%인 것은 굉장한 결과다"라고 해석했다. 또한 "흡연으로 인한 사망 확률 증가가 5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금연치료는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유병률을 낮출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치료법이다"고 덧붙였다.
보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2주에 걸쳐 4~6회 내원해 상담을 받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정부 정책들을 바탕으로 금연 문화를 확산시키면 높은 금연성공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국정감사 도마위 오른 챔픽스 안전성…"대규모 연구를 근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국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는 챔픽스의 자살위험성이 도마위에 올랐다. 챔픽스 복용으로 우울감 등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자살한 사례가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박 박사는 "챔픽스의 신경학적 안전성은 2006년에 처음 약이 출시됐을 때 영국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다. 그래서 대규모 연구가 진행 됐고, 과 , 두 차례에 걸쳐 연구 결과가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됐다"며 "연구 결과 챔픽스 복용과 신경정신학적인 이상반응 간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박 박사는 두 연구 외 2016년 란셋(Lancet)에 게재된 를 소개했다.
이 연구는 금연치료와 관련된 세계 최대규모 연구로, 흡연자 8000여명을 대상으로 챔픽스와 부프로피온, 니코틴대체요법을 비교했다. 대조군은 정신병력이 없는 일반인과 정신병력이 있는 환자였다. 정신병력이 있는 참가자 가운데 실제 정신질환이 있다고 신경정신과 진단을 받은 환자는 전체의 70%였고, 그 중 10% 정도는 자살 시도를 했던 환자들이었다.
연구 결과, 챔픽스를 복용한다고 해서 신경정신과적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정신과 병력이 없는 집단에서는 신경정신과적 이상반응 발생률이 훨씬 더 낮게 나왔다.
보박 박사는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신경정신과적 이상반응과 챔픽스 사용은 상관관계가 없으며 안전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용을 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면서 "EAGLES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챔픽스 라벨에 부착됐던 검은색 경고문이 제거됐다. 부착되었던 경고문을 제거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해당 연구가 그만큼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보박 박사는 "신경정신과적 문제가 실제로 임상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담배를 피우다가 끊으려고 하면 상당히 강력한 금단증상을 겪게 되기 마련이다. 짜증, 우울, 불안감을 느끼거나 어떤 환자는 자살 충동까지도 느끼기도 한다"며 연구에 참여했었던 경험을 공유했다.
보박 박사가 연구에 참여했을 때 어떤 환자에게 신경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 증상이 투약하는 약 때문이 아닐까 걱정됐지만 확인을 해 보니 그 환자는 위약군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보박 박사는 "연구가 진행되는 일 년 동안 약물의 안전성 등에 대해서 계속 걱정을 했었는데, 이 사례를 통해 '이 문제가 약이 일으킨 문제가 아니었구나'라는 확신과 함께 안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사실 내 경우는 운이 좋았다. 해당 환자가 위약군에 있었기에 약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환자가 만약 투약군의 실험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면서 "보통 미디어는 어떤 이상반응 사례가 있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곤 한다. 하지만 한 두 건을 바탕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을 진행된 대규모 연구를 근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존 시스템 이용하면 뛰어난 금연성과 낼 것
이미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이 있고, 금연을 하고 싶지만 바로 금연을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리는 흡연자들이 있다. 이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는 어떻게 상담을 해야할까.
보박 박사는 의사가 흡연자에게 금연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하게 금연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면서 "그 설명을 들은 환자는 본인이 준비됐다고 생각할 때 직접 행동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많은 흡연자들이 자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고 지적했다.
보박 박사는 "한국에는 이미 굉장히 좋은 금연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흡연자들에게 더 많이 홍보하면 좋을 것 같다"며 "그간 여러 국가들을 많이 봐 왔지만 한국처럼 금연치료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체계적으로 잘 마련돼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은 금연치료 지원 부분에서 전세계의 모범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박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전문적인 금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에서는 2001년부터 'Stop Smoking Services'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문 금연 서비스인 SSS 프로그램은 의사들이 아닌 간호사, 약사, 헬스케어 보조원(healthcare assistants)들로 구성돼 있다. 원칙은 한국과 똑같다. 금연치료를 8~12주 지원하며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비용은 무료다. 다만 소득 수준에 따라 처방약에 약간의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흡연자의 60%는 전액 무료이고, 나머지 40%는 2주 처방에 1500원 정도 비용을 지불한다.
보박 박사는 "금연치료는 건강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큰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영국에서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금연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단순히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을 뿐만 아니라 관련 비용을 절감해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결국 금연 프로그램은 한국 경제에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한국의 의료진들이 환자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절감 효과는 여러 측면에서 누릴 수 있다. 의료비 절감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용의 절감, 담배로 인한 화재 사고 감소, 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 감소 등에서도 비용이 절감된다. 아울러 흡연으로 인해 업무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영국에서 2002년에 조사한 내용의 결과를 보면 보건복지 분야에서 제공하는 여러 환자 지원 프로그램들 가운데 금연지원 프로그램이 가장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고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박 박사는 "흡연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첫 번째 사실은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언제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하루에 담배를 20개비 피우다 1개비로 흡연량을 줄인다고 해서 위험이 100%에서 5%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50% 정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안전한 수준이며 그 외에는 전부 어느 정도의 위험을 수반한다는 연구가 BMJ에 게재됐다.
보박 박사는 "영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전자담배 이용자의 45%가 계속해서 일반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전자담배로 전환할 경우 위험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 위험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할 수 없다"며 "어떤 사람이 담배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전자담배로 전환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자담배나 가열담배(Heated-Tobacco-Product)를 피우면서 일반 담배도 피운다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담배와 가열담배는 일반담배처럼 동일한 기준으로 입증된 명확한 안전성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며, 의료진들이 이러한 상황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며 "때문에 금연 및 금연치료에서는 이미 과학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치료 방법을 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금 한국에는 매우 훌륭한 금연지원 시스템이 마련돼 있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한국의 의료진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가정의학과에서 비용적인 측면이나 임상적인 측면에서 가장 효과가 높은 치료 중 하나가 금연치료다. 따라서 한국은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해 뛰어난 금연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연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은 12주 동안 환자의 금연 상태를 확인하고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독려하는 등 상호소통을 통해 흡연자를 지지해주면 금연성공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약물치료까지 더한다면 아까 언급했던 것처럼 장기 금연성공률을 30%까지도 높게 끌어 올릴 수 있다. 이를 통해 흡연자의 50%가 조기 사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치료 효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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