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에 대해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
의사들은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이 환자들만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고, 환자단체는 의료계가 원하는 것을 다 가져갔다고 반박했다.
30일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진전인가 퇴보인가' 정책토론회가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렸다.
일명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법을 두고 의료계와 환자단체는 각자의 입장을 쏟아냈다.
신해철법이란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증장애 등이 발생한 경우 환자 측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면 의사가 조정에 응하지 않더라도 분쟁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되는 제도를 말한다.
먼저 의료계는 중환자 기피, 방어진료, 관련 과 수련기피 등을 우려하며, '교각살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홍상범 총무이사(사진)는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한 달에 평균 20명의 중환자가 사망하는데, 만약 이중 50%만 조정 신청을 해도 10건의 분쟁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중환자를 볼 수 없는 구조가 되고, 이는 국가적 손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홍상범 총무이사는 "생명을 다루는 과는 이미 인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의료분쟁조정법이 의사들로 하여금 특정과를 기피하는 현상을 더욱 심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송명제 회장도 "벌써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방어진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진료위축은 결국 환자인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단체, 소비자, 시민단체에서도 역시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환자단체 안기종 대표(사진)는 "의료분쟁조정법은 현재 자동 조정신청 대상자를 제외하면 의료계가 요구하는 것은 다 가져간 전체적으로 후퇴한 법"이라며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 시민단체가 불리한 점도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환자단체와 소비자, 시민단체를 위해 도입된 직권증거조사 규정이 대거 완화되거나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직권증거조사 규정에는 조정 과정에서 의료기관 현장출입 조사, 열람 또는 복사 거부, 방해 기피 시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이를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규정으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의사가 출석 및 진술요구권, 소명요구권에 불응할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청구하는 규정이 아예 삭제됐고, 의료기관 현장출입 시 7일 전에 사유 및 일시 등을 서면으로 미리 통보 하는 절차가 신설됐다.
이와 같은 개정안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제도를 통해 피해구제 받기를 원하는 피해자나 유족에게는 오히려 이전보다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안기종 대표의 입장이다.
또 안기종 대표는 중환자 기피, 방어진료와 관련 "사망했거나 중상해를 입은 모든 피해자들이 폭발적으로 조정신청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성급한 추측"이라며 "현재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분쟁조정신청을 하면 똑같이 자동으로 개시되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중증질환 환자를 기피하거나 방어진료 하고 있지 않다"고 반론했다.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 대상자
더불어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 대상자를 놓고도 의견이 대립됐다.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 요건은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인 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다.
대한의사협회 이우용 의무이사는 자동개시 요건 중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요건은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우용 이사는 "뇌손상 입은 환자, 뇌종양이나 뇌출혈 환자의 경우 1개월 이상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환자들 중 한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더라도 어느 순간 깨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기간을 1개월로 정한 것은 재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개월로 정해놓은 기간 때문에 신경외과 의사들 상당수가 의료분쟁조정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안기종 대표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원래 '사망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상해'였지만 현재 개정안은 이보다 적용범위를 더 축소했다"며 "그럼에도 환자단체에서 문제 삼지 않은 이유는 의료분쟁조정법 자체가 통과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에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은 오는 11월 30일부터 실시된다.
7월부터는 하위법령을 정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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