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은 비윤리적? 해외선 엄연한 기본적 권리"

고려의대 안덕선 명예교수 "20세기초 이래 선진국 중심 300회 파업...우리 정부같은 대응 상상불가"

고려대학교 안덕선 명예교수. 사진=KSN 2021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선진화된 나라들의 의사파업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진정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전문직 단체의 파업도 사회적으로 더욱 경험하고 학습해야 한다.”

5일 온라인으로 열린 KSN 2021(대한신장학회 학술대회)에서 고려의대 안덕선 명예교수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비윤리적 행위라는 일각의 비판적 시선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안 교수는 지난 2000년 의사 파업 당시를 회고하며 “정부는 의사 파업이 국제적으로 전대미문의 사태라고 오도하며 국민을 볼모로 이익집단이 보여주는 극단적 행동이라 비난했다”며 “사회도 의사파업에 동조하기 보다는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파업의 역사는 100여년 전 이미 독일에서 시작됐고, 유럽 선진국의 의사들은 19세기 중반부터 이익단체를 설립해 활동해왔다는 것이 안 교수의 지적이다.

실제 국제적으로 의사파업은 20세기 초 이래 선진국을 중심으로 300회 이상 일어났다. 이들 나라에서 최소 주말이나 공휴일 수준의 필수의료를 보장한 채 행해지는 의사 파업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당연한 권리로 여겨진다.

안 교수는 “선진국은 의사가 파업을 했다고 우리나라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다렸다는 듯 협회로 진입해 자료를 압수하거나 파시스트 정권의 긴급조치와 같은 업무개시행정명령을 내리고, 형사처벌 겁박을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고용 의사 느는 노동계급화 현상...정부 의료정책 결정 과정선 의사들 소외

이 같은 해외 사례에 더해 개업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고용돼 일하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의사의 노동계급화 현상도 의사 노조 및 단체행동의 당위성을 지지해주는 요인 중 하나다.

안 교수는 “점차 단독 개원의가 줄어 우리나라도 10만여명의 의사면허 보유자 중 개원의는 3분의 1인 3만여명 수준”이라며 “대학병원을 비롯한 대형기관에 의한 의료가 거대해지는 추세 속에 의사는 피고용 기관의 이익 추구와 의료의 기본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용인으로서 당연히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 고용주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을 겪게되고, 특히 전공의는 고용주나 상급 의사에 의한 기본권 침해 위험이 상존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로서 의사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는 상황 역시 의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 교수는 “새로운 의료정책에 대해 의사들과 사전에 같이 논의하고 고민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의 코드에 맞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을 그냥 던져주는 식”이라며 “관료들도 자신들의 소신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주문에 꼼짝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정치권과 공무원들이 의사들에 대한 통제∙명령을 좋아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경무부 소속 위생과로부터 이어지는 잔재”라고 설명했다.

파업시 환자 사망률 오히려 감소...파업은 기본권, 의료민주화 이뤄야

의사들의 파업이 환자들의 목숨을 볼모로 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휴일, 주말 진료와 파업 기간 사망률 감소를 확인한 연구 사례를 들어 지나친 우려라고 반박했다.

안 교수는 “예정된 수술, 외래에 불편이 있을 수 있단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이번 정부 초기 9일 연휴가 있었지만 사망률은 오히려 내려간 바 있다. 실제 선진국에서도 파업 기간 환자 사망률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연구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끝으로 “의사파업이 윤리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의는 이미 다른나라에선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요구사항을 주장하기 위한 당연한 노동 기본권”이라며 “파업을 제재하는 국내 악성 법안들을 폐지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과제로서 ‘의료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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