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앞으로 퇴근하지 말고 업무 파악하세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진엽 장관에게 한 말이다.
정 장관이 복지부 주요 현안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여당 의원이 나서 이렇게 질책한 것이다.
정 장관의 어정쩡한 "어, 그" 답변과 애매한 태도는 이제 의사들의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진엽 장관이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경우 10월 24일 전국의사대표자궐기대회를 열고, 단계적으로 투쟁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진엽 장관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어떤 발언을 한 것일까?
논란은 지난 10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메디게이트뉴스는 국회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에서 그 날 최동익 의원과 정진엽 장관의 질의, 답변을 확인했다.
다음은 대화 전문이다.
최동익 의원: 여기(보건복지부) 들어오다 보니까 엑스레이 탐지기가 있기도 하던데 한의사들이 저용량 엑스레이 가지고 뼈에 금이 갔는지, 안갔는지 확인하게 하는 거 장관이 속한 정형외과 의사 반대로 못하고 있는데 그거 뭐 해주실 용의 없으세요.
정진엽 장관: 저, 어, 그, 협의체 구성해서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
최동익 의원: 아 그러니까 장관 생각 어떠시냐구요. 정형외과 의사가 반대해서 안되고 있는데 정형외과 의사이시잖아요.
정진엽 장관: 제가 개인적으로 반대한 건 아니고.
최동익 의원: 개인적으로 반대는 안하신다는 얘기죠. 그럼 개인적으로는 인정할 수도 있다고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최 의원과 정 장관의 질의, 답변은 여기까지다.
최 의원은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고, 정 장관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답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날 국감 영상을 보면 정 장관은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 의원은 그런 답변을 유도했지만 잘 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 정 장관이 "개인적으로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서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양승조 의원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반대하지 않고 필요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문형표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느냐"고 서면질의하자 "일정범위 안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서면 답변하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자초했다.
일부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한의사들이 진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난 2013년 1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등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다" 결정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14년 12월 28일 국무조정실은 헌재 결정에 따라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열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및 보험적용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의료계-한의계 정책협의체를 출범시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양 단체가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겉으로는 의료계와 한의계 간 자율적인 논의를 통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일부 현대의료기기에 대해서는 허용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자초했다.
이와 함께 정진엽 장관은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다.
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의사도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의학과 한의학이라는 상호 독립적인 면허를 부여해 법적으로 명백히 다른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 현행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처사"라고 단언했다.
이어 추무진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와 한의계 간의 자율적인 논의 기구를 마련한 만큼 상호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를 바라며, 보건복지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자중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저, 어" 식의 화법과 태도에서 탈피해 분명한 원칙을 제시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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