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마취과 전문의 고용 못해 생기는 안전사고
인간의 수술이 기계 수리보다 어려운 이유는 인간은 엔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엔진을 5분이라도 끄면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생체 기능을 살려둔 채로 교묘하게 의식과 신경만 차단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 이것을 ‘마취’라고 한다.
마취는 수술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행위다. 환자의 의식을 재우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인체의 조직을 잘라낼 수 있게 만든다. 의식을 잃고 모든 근육과 신경이 차단되기 때문에 호흡과 맥박 등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다. 잠시라도 관리에 허점이 생기는 순간 뇌나 장기의 영구적인 손상이 일어난다. 마취 관련 약제에 환자마다 반응이 다르기도 하고, 각각의 환자가 가지고 있는 기저 질환이 다르며, 환자가 받는 수술이 다르다.
그러므로 마취 전 까다로운 평가가 필요하고, 마취 중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마취 후 의식과 기능 회복에 신중해야 한다. 마취와 관련된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92%의 환자에서 사망을 포함한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가 접하는 상당수의 의료 사고들이 마취 관련 사고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안전 관리에 따른 보상은 허술하고 규제도 미약하다. 마취 수가는 50%도 되지 않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에 따른 보상도 없고, 수술 집도의가 마취를 걸어놓고 직접 수술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심지어 수술 수가를 일괄적으로 묶어놓은 포괄수가제의 경우 마취 관련 수가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가뜩이나 팍팍한 일괄 수가제에서 비용을 절약하려면 마취과 의사를 고용하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뜻이다. 포괄수가제 적용을 받는 수술은 외과의 주요 수술과 산부인과의 분만, 제왕절개 수술 등이다. 이를 정리하면 영세한 외과, 산부인과 병원의 경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할 수 없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의 성명에 따르면 “마취는 여전히 전문가가 아닌 의료인이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마취의 원가 보전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을 어려워한다. 적어도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마취를 시행했을 때만이라도 원가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빙하와 암초가 넘실대는 캄캄한 북대서양에서 타이타닉을 항해사도 아닌 엔진 수리공이 엔진을 수리하며 운행하는 꼴이다. 우리는 그 배를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대서양을 떠다닐 수 있게 해두었다. ‘대부분은 괜찮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아닐 때, 문제가 생겼을 때 큰 사고가 터진다. '안전 불감주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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