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협 반대와 관계 없이 왕진 수가 시범사업 강행

의협 "8만~11만5000원 현실성 없는 왕진수가, 회원들에게 부당성 알리겠다"

의료계 일각 "그동안 방문진료·왕진 반대 않고 협조해온 의협에 가장 큰 책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보건복지부가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을 위한 일차의료 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강행한다고 밝히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복지부는 의협과 관계 없이 참여할 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12월 중 시범사업에 참여할 기관 400~1000곳의 신청을 받을 방침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 반대와 관계없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하겠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적정수가를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회원들에게 왕진 수가 시범사업 참여의 부당성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의협이 방문진료와 왕진 사업을 반대하지 않고 협조한 데 따른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부, 12월부터 왕진 수가 시범사업 참여 의원 신청 

복지부는 10월 30일 2019년 제21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계획 등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재택의료 지원제도를 체계화해 노인, 중증환자 등 거동불편자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료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국민건강보험법 방문요양급여 조항을 신설한데 이어 올해 6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방문요양급여 사유를 마련했다. 

참여대상은 왕진을 제공하려는 의사가 1인 이상 있는 의원이다. 환자 거주지로의 이동거리, 의사의 진료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와 의사가 협의해 참여할 수 있다. 왕진 대상자는 진료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으나 보행이 곤란하거나 또는 불가능해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한 경우에 해당한다. 

왕진수가는 8만~11만5000원이다. 왕진료 11만5000원은 의료행위, 처치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고 별도의 행위료 산정은 불가하다. 왕진료 8만원은 왕진료 외에 추가적인 의료행위 등이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며 별도의 행위료를 산정할 수 있다. 

동일 건물(75%) 또는 동일세대(50%)에 방문하는 경우 왕진료가 차등되며 의사 1인당 일주일에 15회만 산정 가능하다. 복지부는 12월부터 참여기관 신청 및 시행을 시작하고 내년 하반기에는 시범사업 모니터링 및 개선방안 검토에 나선다. 

의협, 왕진 시범사업 참여 불가 선언…회원들에게 부당성 적극 안내 

의협은 이날 곧바로 성명서를 통해 "중증 환자에 대한 재택의료 서비스와 일차의료 왕진서비스에 대한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 계획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의협과 건정심의 입장이 가장 크게 어긋난 부분은 수가다. 의협은 지난 9월 건정심에 보고될 당시의 왕진 수가 11만6200원이 낮다고 했지만 건정심 일부 위원들은 오히려 수가가 높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부담금 30%의 조건이 있는 이상 수가를 더 올리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협은 "의료전문가단체로서 정부의 추진 목적에 공감하고 보다 현실적인 계획 수립을 통해 재택의료 활성화를 기대하는 차원에서 일차의료 왕진수가 시범사업을 포함한 재택의료 활성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해왔다. 그러나 건정심 소위원회 내의 특정 위원에 의해 재택의료 활성화 방안이 왜곡되고 변질돼 왔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우선 회원들이 수가가 낮아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시범사업의 부당함을 회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을 밝혔다. 

의협 성종호 정책이사는 “복지부가 재택의료와 왕진을 활성화하겠다면서 적정한 수가를 설정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 정말 일차의료 왕진 시범사업이 활성화되길 원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왕진을 커뮤니티케어 사업과 연결하는 복지부 자체도 방문진료, 왕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혼선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성 이사는 “회원들에게 왕진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안내하고 의협이 반대하는 취지를 충분히 알리겠다. 복지부가 임의로 시범사업 참여 기관 신청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회원들이 여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의료계 일각, "그동안 정부 정책에 협조해온 의협에 가장 큰 책임"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복지부에 책임이라기 보다는 의협이 그동안 반대하지 않은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봤다.

경기도의사회는 "건정심에서 회원들이 우려하던 '일차의료 왕진 사업안'이 전격적으로 통과됐다. 의협은 당일에서야 뒤늦게  복지부의 해당 '왕진 활성화 추진안'에 반대하며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이는 문재인 케어 협상과 마찬가지로 때늦은 후회의 잘못된 회무의 반복일 뿐"이라고 했다.

경기도의사회는 “하루 70~80명의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저수가 구조에서 1차 의료기관 의사가 방문진료, 왕진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문진료, 왕진이 병원급이나 기업형 의료기관에서 시행되면 원격의료와 다름 없을 정도로 영세 병의원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의사회는 "복지부 왕진 전격 시행의 참사를 초래한 최대집 회장과 성종호 정책이사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 역시 결국 정부 정책에 협조적인 의협 집행부를 비판하며 현 의협 집행부 불신임 서명을 받는다고 밝혔다. 

병의협 주신구 회장은 "의협은 그동안 압도적인 회원들이 반대하고 의료진에 대한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커뮤니티케어 방문진료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는 회원들의 뜻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직업 수행의 안정성까지 도외시하는 잘못된 회무"라고 밝혔다. 
 
주 회장은 “복지부가 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강행하게 된 데는 의협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왕진 시범사업을 계기로 의협 집행부 불신임이 필요하다는 의료계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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