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의무기록 뒤져 아동학대 환자 구별?…제2의 정인이 막기 위한 이색 대안 쏟아져

의료진 신변 보호가 최우선...EMR서 자동 신고, 명확한 신고 기준 교육, 피해 아동 사후 관리 등 필요

사진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곽영호 소아응급의학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박미란 소아청소년과 교수, 아주대병원 배기수 소아청소년과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아동학대 환자를 의사가 제때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결책이 쏟아졌다. 24일 대한의사협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다.
 
현재 의료인은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제10조 제2항 제15호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23%, 이 중 의료인에 의한 신고율은 0.8%에 그친다.(전체 3만8380건 중 단 293건) 미국은 14.5%, 호주는 20%에 육박하는 신고율을 자랑하는 것과 상반대는 결과다.
 
의료진 신변보호 문제 지적…의무기록 모니터링 시스템 제안
 
서울대병원 곽영호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의사들의 신변 보호의 문제를 가장 큰 제한 요소로 꼽았다. 현행법상 신고자 보호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벌칙조항도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현장에선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의료인이 신고하면 개인 신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근무 병원까지는 공개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피해 아동 가족들 등에게 신고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 것은 의료인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등에 의료진이 입력만 하게 되면 자동으로 병원 사회복지팀이나 사회복지사가 대신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의료진 대신 병원 아동보호팀 따로 신고를 하고 보호팀 간사가 보호자 면담을 통해 환자가 처해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까지 파악한 후 전문가 회의를 통해 신고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호주의 사례도 소개됐다. 호주에선 병원 아동환자 의무기록을 전담팀이 별도로 모니터링해 아동학대 환자를 구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총 64만7819명의 소아입원 환자 중 2120명의 아동학대 환자가 발견됐다.
 
곽 교수는 "EMR 입력 시스템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신 정보 전달이 불명확해지는 한계가 있다"며 "아동보호팀 연계 방안도 부적절한 신고가 감소하고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아동보호팀을 구성할 수 없는 병원도 많이 존재하고 있는 단점이 존재한다"고 각 대안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어 피해아동 전담의료기관 설립 방안도 제시됐다. 곽 교수는 "익명성을 위해 신고가 자동화되다보면 신고의 위양성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럴 경우 아동환자들을 제대로 책임지고 평가할 수 있는 전담의료기관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원 의료진‧공무원 등 대상 교육 필요…피해아동 사후관리 강화도
 
삼성서울병원 박미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일차의료기관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신고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몰라 의심 사례를 신고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신체적인 심각한 아동학대가 발생하기 전에 조기 발견을 위해선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견해다.
 
그는 "독일과 미국 등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도 있다는 거부감이 신고를 꺼리는 큰 이유중 하나였다"며 "일차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과 함께 쉽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아동학대 전문의 등 전문가와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의 학대로 인한 상처는 추가적인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즉시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상 교육도 중요하다"며 "의료진 외에도 공무원이나 경찰 등 신고를 접수하는 이들에 대한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주대병원 배기수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동학대 피해를 받은 환자들의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피해 아동들에 대한 심리치료 서비스가 6개월이면 종료되는데 의학적인 관점에서 치료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심리치료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국가 지원이 6개월이면 끝난다. 아이는 아직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치료가 끊기는 셈"이라며 "현재 협력기관도 병의원,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알코올상담센터 정도로 국한돼 있는데 피해아동 협력기관이 빈약하다. 최소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특화센터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협 성종호 정책이사는 아동학대 문제가 복지파트로 분류돼 보건복지부 내에서도 보건의료와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같은 부서 내에서도 복지와 보건의료 파트가 서로 다르면 서로 적절한 교류가 어려운 현실"이라며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선 의료영역이 단절돼 있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 의료와의 네트워킹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료계의 지적에 대해 정부도 어느정도 공감대를 표현했다. 복지부 박은정 아동학대대응과장은 "아동학대대응과가 생긴지 2년됐다. 담당 부서가 생기면서 정책적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지원 시스템의 부재, 전담의료기관 지정 등 의료계에서 사명감만으로 일 하는 것이 아닌 실제 의료현장에서 지원방안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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