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릇 챙기는 의사? '불안'은 의료계를 잠식한다

[칼럼] 서연주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전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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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게이트뉴스] ‘불안.' 아마 작금의 시기를 관통하는 인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확산, 경제 위기, 암호 화폐, 그리고 정치, 사회면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젠더와 세대 갈등 이슈만 봐도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저서를 통해 “타인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라며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료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이슈 또한, ‘불안’이라는 인류의  시대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술 의사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를까 불안한 국민들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보건의료노조 합의안을 접한 의사 집단은 또다시 의료정책 수립과정에서 배제되는 무기력한 불안을 느낀다.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은 그 특성상 스스로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하다.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지금껏 뵌 스승님들께서는 모두 그런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곁에 머무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스스로 포기해야 할 가치들 보다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치유를 행하는 선한 의지를 높게 판단해서가 아닐까. 

희생하는 삶이 좋아 선택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생명과 직결된 소위 바이탈과 의사의 삶을 보면, 개인의 안녕과 여유만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치는 고통을 겪으며 우리가 놓아야 할 것들에는 스스로의 건강, 사랑하는 가족, 자녀와 보내는 시간 등 본능적으로 인간이라면 삶에서 꼭 지켜내고 싶은 종류의 가치들이 모두 포함된다. 아픈 자녀를 두고도 당장 내 앞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 머무는 의사는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아픔과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의 젊은의사 단체행동과 의사 총파업에 앞장 섰던 나는 천성적으로 투쟁과 정치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탈과 의사로서의 나의 선택과 이후 개인적인 삶을 포기할 만큼 충분히 납득가능한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투쟁꾼이 되어야 했다.

의사 면허로 충분히 편하고 안락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평생 ‘나 스스로의 가치’에 확신을 갖고 ‘스스로 바라보는 방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철저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소신과 사명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아니 대한민국 사회는 의사들을 나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정치, 경제, 사회 속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는 점차 추락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급락한 날 한강에 투신해 구급차에 실려온 시신이 3배가 늘었다.

더불어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의 가치 또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빠른 속도로 추락해왔다. 바이탈과 지원률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고, CCTV설치 및 면허 취소 입법안들로 보여지는 불신이 팽배한 대한민국 사회는 더이상 소명과 사명 만으로 의사들의 선택을 강요하기에 불가능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내가 틀렸던 건가 싶다. 옳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던 지난해 의사 파업의 젊은 주축들은 대한의사협회장의 졸속 합의 이후 상처와 트라우마만 가득 입은 채 도망자 꼬리표가 붙었다. 어제의 동료들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물어 뜯었고 세대와 직역, 지역간의 갈등으로 온통 어지럽혀진 나쁜 감정만이 뒹굴던 당시는 흡사 지옥과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처참한 일들이 벌어질까. 나의 선택은 잘못됐던 걸까.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처럼 ‘밥그릇 챙기는 파렴치한 의사놈들’이 나의 정체성이 돼야 했던 걸까. 오늘도 여전히 어지럽고 생각이 많아 불안한 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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