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도입에 대한 임상의사의 경험

[칼럼]네바다주립의대 유지원 교수

최선의 진료, 포괄적 진료 어려워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미국 병원에서 매주 금요일 가장 열심히 일하는 직종은 전공의가 아니라 환자 퇴원을 담당하는 매니저(case manager)인 것 같다. 요양병원으로 퇴원시키려는 환자를  주말 전에 퇴원시키기 위해서다. 금요일에 퇴원시키지 못하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재원일수 3일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병원 입원 진료에 전면적 포괄수가제(DRG)가 도입된 이후  재원일수는 점차 줄었다. 올해 미국 하원의료자문의원회(Medicare Payment Advisory Commission, MedPAC)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병원은 평균 재원일수가 5일 이내였다(한국은 2015년 OECD 통계 기준으로 평균 재원일수가16.5일이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역할을 하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 CMS)가 주 진단명과 질병 중증도에 의한 재원일수 이내로만 병원에 입원 진료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재원일수가 줄어들면서 생긴 부작용은 재입원률 증가, 특히 30일 이내 같은 주진단명으로 재입원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CMS는 재입원 감소 프로그램 (Hospital Readmission Reduction Program, HRRP)을 도입했다. 2013년 회계연도부터 심부전, 급성심근경색, 폐렴으로 입원했던(index admission) 환자들이 같은 진단명으로 30일 이내 재입원한 경우가 많은 병원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진료 급여를 삭감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증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에 삭감이 몰리자 CMS은 2015년부터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value-based purchasing)'이라는 종합적 질 평가방안을 도입했다.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은 크게 4가지 방안이 포함된다. 입원 전 3일부터 입원기간, 퇴원 후 30일까지 진료 기간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진료비용 절감 및 효율성 평가(Medicare Spending per Beneficiary, MSPB),  환자 및 보호자 중심의 진료(Hospital Consumer Assessment of Healthcare Providers and Systems, HCAHPS), 안전(hospital acquired condition, HAC), 재입원감소 프로그램, 사망률, 적절한 약제 사용 등 진료 적정성(clinical care)을 평가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2013년 재입원감소 프로그램으로 인해 미국 병원들은 진료급여 1% 삭감율에서 점차 늘어나 2017년부터는 4가지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방안을 고려해 진료급여 2%가 삭감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미시간대 보건대학원팀은 미국 전체 4546개 병원 중 3525개 병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difference-in-difference 방법 사용, 국립노화연구소 연구용역),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도입이 각 병원에서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한다고 발표했다(New England J Med, 2017). 또한, 큰 병원일수록 질병 중등도를 감안해도 종류에 관계 없이 안전지표(HAC)가 악화돼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평가의 타당성에 약점이 노출돼 보완이 요구된다(Am J Med Qual, 2016).
 
필자는 미국 상급병원에서 노인입원 진료를 주로 담당하는 임상의사로, 최근의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도입 때문에 점차 그 역할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은 병원 진료의 질이 환자와 의사의 개인적 관계보다는 환자와 병원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미국 CMS가 입원진료 급여 기준을 정하면 병원은 그 기준에 맞춰 의사 진료 행위를 통제한다. 우선 포괄수가제 시행으로 진료기간에 따라 자율권이 제한된다. 예를 들어 급성담낭염 중증 합병증 환자를 진료할 때 5.5일 이내에서는 어떤 검사나 치료를 할 수 있고 의사의 자율권이 보장된다. 하지만 5.5일 이후는 자율권이 줄어든다. 환자가 요통 등이 있어도 이 질환이 급성담낭염 합병증과 관련이 없다면 5.5일 이후에는 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는다.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에서는 입원 전 3일, 입원기간 그리고 입원 후 30일까지 일종의 확장된 포괄수가제로 묶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은 입원환자 진료가 주진단명에 맞춰 집중과 선택 진료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임상의사가 전통적 미덕으로 여기는 최선의 진료, 포괄적 진료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의사들이 의료전문가로서 갖고 있는 자율성(autonomy)이 훼손되고 직업 만족도(job satisfaction)도 떨어지게 된다. 
 
미국병원은 개방형 형태라 병원 경영진과 임상의가 다소 독립적인 주체로 상호견제 기능을 갖는다. 의사의 병원진료에는 행위별수가(포괄수가제가 포함되지 않은)가 따로 산정된 점이 한국 병원과 다르다. 한국 의료계는 전통적으로 수가가 저평가되고 민간의료보험(실손의료보험)에서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의료계는 비용이 절감된 진료의 질이 최선의 진료를 통한 진료의 질보다 나쁘지 않으면 가장 가치가 있다(high-value care)는 심사방향의 기본틀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의 급여화와, 본임부담상한제 강화, 예비급여(선별급여)의 급여화로 한국의 보건당국은 비용절감을 기본 정책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에 의료 질 평가 결과를 진료급여에 담으려는 정책적 연결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보건당국의 정책이 필자의 예측대로 진행된다면 한국 임상의사들이 바라보는 방향과 보건당국 정책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서로 불신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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