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GDP 의료비 7.6%인 한국, 17%인 미국 의료비 절감 제도 따라해선 안돼"
최후에는 총액계약제로 갈 것…의협의 아마추어 회무 아닌 대응책 마련도 주문
바른의료연구소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 (Value-based Purchasing, VBP), 묶음 지불제 (Bundled Payment),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 (Episode-based Payment) 등의 포괄적 지불제로 전환하기 위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안”이라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7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가치에 기반한 (value-based) 심사·평가체계’로 개편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복지부는 향후 5년여에 걸쳐 현재의 청구 건별 심사·평가체계를 ① 환자 중심, ② 의학적 타당성 중심, ③ 참여적 운영방식 중심, ④ 질 향상 중심의 가치기반 심사·평가체계로 전면 개편한다. 이를 위해 현행 건별로 분절적으로 판단하는 심사방식을 환자 중심의 에피소드 단위로 개편하고, 주요 진료정보를 지표화해서 청구현황, 기관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분석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연구소는 “미국의 의료수가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17%에 육박해 7.6%에 불과한 한국보다 2.2배나 높다. 그런데도 미국식 가치기반 지불제를 시행한다면 간신히 유지되는 한국 의료는 폭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구소는 “가치기반 지불제로의 전환은 의사들에게 재정절감의 책임을 온전히 떠넘길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가치기반 지불제의 정착은 총액계약제로의 이행을 아주 쉽게 만들 것이다”라며 “오래 전부터 정부와 관변학자들이 그려온 큰 그림이 완성되려는 순간에 다가서고 있다. 정부가 의도한대로 지불제도 개편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심사·평가체계 개편안,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안에 밀접
복지부는 진료량·진료비용 통제 중심의 심사기법은 미국 등 행위별 수가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과거에 주로 사용되던 방법이며, 최근 전세계적 트렌드는 치료성과, 환자만족도 등 의료서비스 제공에 따른 성과에 기반(Value-based)해 보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환자, 질환, 항목 등의 환자중심 에피소드 단위에 따라 치료 시작부터 회복기까지 제공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고, 비용 대비 질과 치료결과를 평가해 사전에 책정한 진료비를 가감해 지불하는 가치기반 지불제, 묶음 지불제,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에서는 청구 건별 심사·평가체계가 부적절하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복지부는 행위별수가제에서 사용하는 건별 심사방식을 폐지하고 가치기반 지불제에 부합하는 심사·평가체계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진료비 지불제도를 행위별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 등으로 전환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가치란 환자치료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를 의미한다 (가치 = 질(치료결과) ÷ 비용). 즉, 소요되는 비용이 적으면서도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가 우수한 경우를 매우 가치가 있다고 본다”라고 해석했다.
연구소는 “가치 있는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은 의료기관에는 디스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라며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의 2010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가치기반 지불제를 '질·비용 기반 진료비 차등제'로 명명한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김윤 교수의 또 다른 발표자료에는 미국 Premier VBP 시범사업을 우리나라 심평원의 가감지급사업 모형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는 심사·평가체계 개편이 바로 지불제도 개편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와 묶음 지불제, 의사의 책임 강화할 것
연구소는 "복지부는 청구 건 단위·항목별 심사에서 환자중심 에피소드 단위(환자·질환·항목 등) 심사로 전환한다고 했다. 이는 곧 묶음 지불제(Bundled Payment)의 일종인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Episode-based Payment)를 시행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의료공급자가 제공한 모든 의료서비스에 각각 지불한다. 반면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는 의료공급자에게 해당 에피소드 진료 기간 동안 환자가 받는 의료서비스의 질과 비용에 대해 모두 책임을 지도록 한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예를 들어 슬관절 치환술, 임신 및 분만, 심장발작 등으로 치료받는 경우 입원과 외래치료 비용과 치료에 참여한 모든 의사들의 인건비를 하나로 묶어 일정한 묶음수가로 만들 수 있다. 포괄수가제는 하나의 입원치료에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에 일정 수가를 책정한 것이다. 이에 비해 에피소드나 묶음수가는 하나의 의학적 사건이 발생해 치료를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회복기까지 제공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고 사전에 책정한 수가를 지불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건정심에 2019년도부터 에피소드 기반 선도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보고했다. 복지부는 2019년 선도사업으로 만성질환, 급성기 진료(시술 포함), 항목 등의 3개 영역에 고혈압,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슬관절치환술, MRI, 초음파 등의 7개 대상(안)을 선정했다.
연구소는 “처음에는 각 에피소드별 진료비를 행위별 수가에 준하면서 성과에 따른 가감지급만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시범사업을 통해 각 에피소드별 비용과 질, 치료결과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하면 복지부는 각 에피소드별로 지불액을 사전에 결정해 초과 수입의 수익 배분과 초과 비용의 손실 분담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총액계약제로 가는 신호탄…의협 아마추어 회무 아닌 제대로 대처해야
연구소는 과거 정부의 연구결과가 이런 개편안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며 총액계약제 의도가 숨어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가치기반 지불제와 묶음 지불제,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의 경험과 자료가 쌓이면 최종적으로 지역별로,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의료비 총지출액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희정 연구위원의 '가치 향상과 의료 혁신을 위한 건강보험 지불제도 개혁 방향'에 따르면 행위별수가제를 가치 기반 지불제로 점진적으로 대체하기 위한 장·단기적 전략을 담고 있다.
연구소는 “단기적으로 외래에서 행위별수가제를 기초로 성과연동지불제(P4P)를 활용한 질 기반 지불제도를 확대한다. 관절치환술 등 일부 시술에 대해 통합지불방식(묶음지불제)을 도입하고, 입원서비스는 질 기반 지불과 함께 신포괄수가제의 비중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연구결과에서 밝힌 대로 장기적으로는 의료의 질과 결과에 대한 공급자의 책무성과 지불 보상의 관련성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이는 단계다. 통합 지불은 대상뿐 아니라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라며 “결국 환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통합하는 수준의 확대는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의 전환을 완성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을 포함한 국민 전체 질병부담 및 의료비 지출 등을 파악하고 건강보험 지출 성과와 연계 파악하는 체계 구축 추진이라고 했다. 복지부가 향후 가치에 근거한 인구 기반 지불방식과 총액계약제를 최종적으로 도입하려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예측 비용보다 낮은 목표 비용을 산출하고, 실제 비용이 목표 비용보다 낮으면 그 차액을 의료공급자와 공유하고, 실제 비용이 목표 비용보다 높으면 의료공급자가 손실을 부담하게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미국 메디케어ㆍ메디케이드 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ACO(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책임진료기구)이다. 얼마 전 김윤 교수 등이 '한국형 ACO 모델 및 커뮤니티 케어 연구포럼'을 창립한 것을 보면, 이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소는 “국가적으로 연간 진료비의 예측이 가능하게 되면, 바로 총액계약제로 이행될 수 있다. 2010년 김윤 교수가 발표한 '미국 건강보험 지불제도 개혁: Value-based Purchasing' 자료에는 가치기반 지불제를 통해 총액계약제를 완성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고 했다.
연구소는 대한의사협회 차원의 대응책 마련도 주문했다. 연구소는 “개편안이 향후 의료계를 옥죄는 지불제도를 목표로 함에도 불구하고, 의협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9월 경향심사를 이유로 심사체계 개편 협의체를 중도퇴장하고 반대 기자회견을 하더니, 이후 소위원회에는 참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의협은 사회적 논의기구(TRC)에 비전문가인 가입자, 시민단체 등의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협의체에 불참을 선언하고 백지화를 요구했다. 개편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복지부와 심평원에 끌려 다니다가 뒤늦게야 반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의협의 행태를 보면서 아마추어 회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의협이라면 대한민국 의사들은 결국 구렁텅이로 떨어질 날만을 기다려야 한다"라며 "의협이 이번 개편안에 담긴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강력히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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