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 규제 샌드박스 제도 합의점 어떻게 찾아갈까

찬반의견 듣는 첫 공개토론회 개최…"문제점 찾고 해결방안 마련 vs 사회적 합의 무력화하는 제도"

사진: 제1회 헬스케어 미래포럼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정부가 올해 초 보건의료분야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대상으로 질병 대상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와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기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를 선정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시행 100일이 지났지만 실증특례 사업에 대한 각계의 의견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 사업을 문제점에 대한 해결법을 찾는 기회로 보고 있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안전이나 효용성 측면에서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30일 글래드 여의도 호텔에서 '바이오헬스 성장동력 제고를 위한 규제혁신의 방향'을 주제로 제1회 헬스케어 미래포럼을 열었다.

이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명화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은 '세계 바이오헬스 규제혁신 최신 동향' 주제발표를 통해 최근 글로벌 규제혁신의 특징으로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규제 샌드박스 등 정책실험 강화 ▲위험도에 따른 맞춤형 규제설계 ▲개방형 규제혁신 강화 4가지를 꼽았다.

사전규제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대신 시판후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미국은 ▲신속심사(Fast Track) ▲혁신치료제(Breakthrough Therapy) ▲신속허가(Accelerated Approval) ▲우선심사(Priority Review) 등 신속허가 제도를 통해 사전규제를 완화하고 있는데,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된 신약 59건 가운데 이 심사제도 중 하나라도 거친 신약 건수는 43건(73%)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의 발표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는 2014년 영국에서 핀테크(Fintech) 활성화를 위해 처음 시도됐고, 금융분야를 중심으로 다수 국가들에서 도입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되는 추세라고 했다.

이 단장은 "위험도 기반 규제 관련 중요한 변화는 다양한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21세기 치료법에서 강조한 것처럼 리얼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a)는 규제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단장은 개방형 규제혁신에 대해 "미국 FDA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규제 가이드를 제공하고 혁신적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연구자들을 만나 어떤 규제가 필요할지 미리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으며, FDA가 다양한 민간 컨소시엄 안에 들어가는 것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이 단장은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정책 변화를 위해 ▲신속 심사, 점진적 허가 등을 통해 시장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징벌적 손해배상 등 시판 후 안전관리 강화를 통해 기업의 책임 강화 및 자율규제 유도 ▲바이오헬스 분야의 규제방향과 관리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규제당국의 전문성 강화 및 바이오헬스 제품의 안전성, 유효성 평가를 위한 규제과학 강화 등 3가지를 제언했다.
 
사진: 제1회 헬스케어 미래포럼 토론세션

이어진 토론에서는 헬스케어 미래포럼 공동위원장인 세브란스병원 송시영 교수를 좌장으로 산업계와 학계,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참석해 보건의료 실증특례 사업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눴다.

현재 보건의료 실증특례 사업으로는 마크로젠의 '유전체 분석서비스를 활용한 앱 기반 맞춤형 건강증진서비스', 고대안암병원과 휴이노의 '웨어러블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프로그램 사업' 2가지가 진행되고 있다.

웰트(WELT) 강성지 대표는 "실증특례에 대한 업계의 기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해외에서 우버가 실증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택시계와 갈등이 빚는 것이 아니듯이 실증특례 사업에서는 실증보다 사회적 합의가 더 문제다"면서 "규제 샌드박스는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봤을 때 잠재적 갈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합의과정 자체를 정립시키는 형태의 의미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강 대표는 "굳이 우리나라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규제가 풀려있는 해외로 나가 기능을 테스트하고 가지고 오면 된다는 기업들의 사고를 정책입안자들이 공감하는 상황에서 정책을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면서 "또한 모든 기업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상황만 초래하지 않게 배려됐으면 좋겠다. 찬반의 논쟁이 아니라 합의점을 낼 수 있는 작은 포인트라도 찾을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차의과대학교 정보의학교실 한현욱 교수는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처음 도입될 때 음란물 확산, 해킹문제, 스팸 등 여러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도입을 반대하거나 중고등학생에게 이메일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고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가야 한다. 문제점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 안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면서 "미래의학은 정밀의학, 환자 맞춤형 치료를 향해 가고 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이고, 이를 위해 기반이 잘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규제적인 문제때문에 앞으로 못나간다고 했을 때 외산이 계속 몰려올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최첨단이라고 하지만 병원에서 쓰는 기기의 95%는 외산이다"며 "산업이 발전하고 환자들에게 이익이 가기 위해서는 규제혁신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규제를 풀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응하며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실증특례 사업을 통해 시민사회나 의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쳐나가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인식을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실증특례 사업에 대해 강하게 반대 의견을 펼쳤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사후규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정부에서 해야할 일은 사전예방이다.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검사나 손목시계형 심전도검사는 생명과 즉결된 문제가 아니지 않나라고 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통과되지 않은 기술을 환자 대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환자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문제다"면서 "실증특례는 항목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의약품도 충분히 실증특례로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 법체계 전체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실증특례는 폐기되는 것이 맞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정형준 부위원장은 효용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정 부위원장은 "위험하지 않으면서 효과가 없는 것을 허가했을 때 국민들에게 큰 위해는 가하지 않겠지만 경제적인, 간접적인 여러 피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면서 "예를들어 인보사 투약 환자들이 15년 추적 이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막대한 비용을 사용했고, 여기에 지출한 금액만큼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고 지적했다.

정 부위원장은 "효용성 평가를 엄밀하게 하지 않는다면 효용성 있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인보사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같이 침몰한다. 효용성 평가를 강화해야 산업이 살아난다"면서 "줄기세포치료제도 전 세계 8개 중 4개가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는데, 단 1개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다. 낮은 수준의 효용성 평가 기준으로 해외에서 통과를 받지 못한다면 산업이 아니라 투기자본의 먹이만 된다. 실증특례에 매달리는 것보다 지금은 포지티브 규제를 얼마나 잘 설계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의료계에서도 실증특례 사업에 대한 몇 가지 우려사항을 제기했다. 대한의사협회 이세라 기획·의무이사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축사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점검을 잘 한다음 바이오헬스 산업을 발전시키자고 했는데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대기업, 대형병원만 배부르게 할 수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얼마전 나온 건강보험 재정 보고에서 대형병원 매출이 20.5% 상승했지만 소형병원은 그렇게 상승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의료비 부담을 줄이자고 정책을 펼쳤는데 그 혜택이 국민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런걸 잘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교수도 동의하며 "앞으로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올 것이고 현재 생태계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 위주가 될 것이다"면서 "의사들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영세기관들이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동반성장을 위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의위원회에 전문가가 빠져있는 점도 지적됐다. 이 이사는 "현재 파악하기에는 위원 중 임상을 실제로 하는 분이 없다. 심의위원회 구성에 대해 당시 의협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은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었다. 심전도가 잘 모니터링되는지에 대한 점검도 부족했다. 이런 부분을 철저하게 점검한다면 그나마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가 협회의 의견이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여러 논란에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신의료기술, 바이오헬스산업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면서 "막지는 못하더라도 위험성은 다 점검해야 한다. 과학적, 법률적 점검 등을 통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손목시계형 심전도기기는 아무런 논문이 없다. 차고있으면 어떤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런 기기들이 앞으로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며 이런 자리를 마련하면 안된다"면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 들어오는 것조차 급여평가에 들어가면 전문가인 임상의사 입장에서 황당한 것들이 너무 많다. 논문과 근거가 있어도 이런 상황에서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100개 중 1개를 성공시키기 위해 99개를 국민들이 쓰게 하는 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전 정책국장은 "마크로젠의 검사는 매커니즘이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DTC 업체들의 검사결과가 부정확하고 위양성이 높다는 논문도 있다. 손목시계형 심전도기기도 미국에서 환자가 아닌 사람에게 쓰게 했지만 문제가 없음에도 알람이 울려 불필요한 심장검사나 카테터수술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환자들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면서 "이러한 항목이 도입되는 것이 치료기회 확대나 소비자 선택기회 확대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보건의료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법령이 미비하다면 빨리 제대로 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아직은 근거가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게 돼 있다. 실증특례 사업을 통해 결국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응방안을 정확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됐으면 한다. 새로운 규제 마련의 장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면서 "DTC 유전자 검사도 어느정도 확실한 것들을 걸러낼 필요는 있다.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갈 것인지, 내가 걸릴확률이 높아 다른 개선해야할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항목에 대해 점검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앞으로 30년은 굉장히 다른 미래가 올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대응할까에 대한 논의도 포함됐으면 한다. 환자를 치료하고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은 산업이다"면서 "다만 이 기술이나 산업의 목적이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많이 결여돼 있다. 화이자든 어디든 빅파마의 홈페이지를 가면 대명제가 인간의 건강 증진이다. 그 논리가 빠진 산업화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책과 제도를 환자 관점으로 돌리면 이해관계도 바뀔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도영 기자 ([email protected])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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