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분만 인프라 붕괴…16년간 분만병원 60% 사라지고 지자체의 26%는 분만 어려워

산부인과학회서 저출산·무과실 의료사고 부담 ∙비현실적 수가 등 지적…최종윤·김미애 의원도 힘 보탤 것 약속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분만 병원의 감소와 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부인과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낮은 수가, 의료사고 보상제도 등 고질적 문제에 더해 가속화되는 저출산 문제까지 겹치면서 분만 인프라가 붕괴 직전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산부인과학회 학술대회 정책세션에 참석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정부와 국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세션엔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보건복지부 이창준 의료정책관도 참석해 산부인과의 위기가 국가적 차원의 문제임을 실감케 했다.

산부인과 특히 분만 병원의 위기는 숫자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03년 1373개에 달했던 분만 병원은 2019년엔 541개로 쪼그라들었다. 16년만에 60%가 넘는 분만 병원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절대적 숫자가 줄어들며 분만 취약지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산부인과가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이 어려운 지자체가 250개 중 65개로 26%에 달한다. 자연스레 모성사망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6년 기준 모성사망비는 8.4명으로 OECD 평균인 6.7명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향후 인력수급 차질로 이같은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는 124명에 불과하며, 현재 1~4년차 산부인과 전공의를 모두 합쳐도 432명에 그친다.

젊은의사들 "후배들에게 산부인과 추천 안 해"...무과실 의료사고 책임∙낮은 수가 등이 이유 

실제로 이날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정열 사무총장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는 산부인과의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게 했다.

지난달 전공의, 인턴, 임상강사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대생이나 인턴 후배들에게 산부인과 전공을 추천할 의향이 있느냐’, ‘산부인과 의사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모두 60%를 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무과실 의료사고 및 의료 소송 등에 대한 부담이었다. 우리나라는 분만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의사가 보상액의 30%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부당한 제도라며 지속적인 반대 입장을 밝혀온 사안이다. 실제로 일본, 대만 등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선 정부에서 보상액을 100%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 낮은 수가와 저출산 기조도 젊은의사들이 산부인과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요 이유였다. 박 사무총장은 “젊은의사들은 산부인과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산부인과의 미래를 개선하기 위해선 젊은의사들이 꼽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측부터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정열 사무총장, 대한분만병원협회 신봉식 회장, 강원대병원 황종윤 교수

무과실 사고 국가 전액 보상∙출산율 수가 연동제 도입...3차 의료기관 중증 기준 개선

이날 정책세션에 참석한 선배 의사들도 젊은 의사들과 동일한 의견이었다. 특히 분만 중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까지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현행 제도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오상윤 보험이사는 “24년째 분만을 하고 있는데 수술실 CCTV가 본격 시행될 때쯤엔 그만둬야 하나는 생각까지 든다”며 “일본, 대만 등과 같이 불가항력적 무과실 분만 사고는 전액 국가가 보상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분만병원협회 신봉식 회장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발생시 배상금액을 현행 3000만원에서 증액하고 보다 체계적인 의료배상 국가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며 “병·의원이 참여하는 효율적 재원 마련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가의 경우 출산율과 수가를 연동하고 지역별 가산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 분만 의료기관들의 재정적 부담이 상당한 만큼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출산 위기 속에서 난임치료 관련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황종윤 교수는 “출생아 수와 분만수가를 연동하는 분만수가 연동제와 함께 분만 진통 관리료, NST 판독료 등 분만관련 수가를 현실화 해야 한다”며 “분만취약지, 야간, 고위험 분만, 고위험 임신 등 지역과 조건에 따른 가산 수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저출산 극복과 산부인과 지원을 위해 경제적 기준으로 제한을 두고 있는 난임부부 산정 기준을 삭제하고, 미혼모는 의료급여 대상자로 관리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의료기관급에 따라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2차 의료기관에서는 산부인과를 필수과로 재지정하고 3차 의료기관은 중증기준을 개선해 고위험 산모 등을 진료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100~300병상 종합병원의 경우 지난 2001년 산부인과가 필수과에서 제외되면서 산부인과 수가 50% 이상 줄었다”며 “필수과로 재지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의료전달체계TFT 김미란 위원장은 “3차 의료기관에서는 산부인과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중증 분류 기준을 부적절하게 하면서 산과의 중증 비율이 3%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1~2차 의료기관에서 위급한 환자들이 이송되더라도 3차 의료기관에는 산부인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좌측부터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

여야 의원들 "국회서 힘 보태겠다"...복지부 "필수의료 지원 방안 마련 속도낼 것"

여야 의원들은 분만취약지 문제 등을 비롯해 산부인과 인프라 붕괴가 심각하다는 산부인과계의 의견에 동의하며 국회에서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은 “출산율 연동 수가제 도입, 산부인과 의료인력 확충, 시설 및 운영 지원 등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대책은 땜질식 처방에 그친 측면이 있었는데 위기가 클수록 정책적 대안도 크고 담대해야 한다” 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대표적인 고위험 영역이라는 산부인과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며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만큼은 정부 정책 설계 단계부터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아니라 필수의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최근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산부인과를 포함한 필수의료과 지원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비용보상, 인력 양성 등 분만 인프라가 훼손되기 전에 내년부터라도 개선된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하겠다”며 “분만 과정의 위험과 보상에 대한 문제도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만큼 다각적 지원책을 검토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이중규 보헙급여과장은 난임치료 제도 개선 요구와 관련 "난임 여성들에게 기회를 더 제공하고자 급여 적용 치료 횟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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