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
지난 2011년 한국에서는 의료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시행됐다. 분만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 과실이 전혀 없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그 피해보상액의 일부를 분만 병원이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처음에는 국가와 의료기관이 50:50으로 부담하는 것으로 추진됐지만, 입법 단계에서 70:30의 비율로 조정돼 2013년부터 시행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3년 정부는 21억의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기금을 출연했고,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에 순차적으로 기금을 부과해 총 1854명 중 1754명(98.9%)이 8억8000만원을 납부했다.
이 제도의 충격은 대단했다.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가 ‘과실이 없는 분만사고’ 보상액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어 버렸다.
아기는 낮밤을 가려서, 엄마가 분만하기 편할 때를 골라서 나오지 않는다. 분만을 하는 병원과 의료진은 365일 24시간 팀 단위로 대기를 해야 한다. 출산은 매우 위험한 과정이다. 산모와 아이 모두 인생에서 가장 약하고 위험한 시간을 지나야 한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서 불가항력적인 사고와 비극은 일정 비율로 반드시 일어난다. 탯줄이 목에 감기기도 하고 아이 머리가 엄마 자궁에 끼어버리기도 한다. 엄마의 혈관이 막히기도 하고 엄마의 출혈이 멎지 않기도 한다.
모든 비극의 아픔은 그것을 집행하는 의사에게도 가족들만큼이나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을 참고 극복하고 또 다른 생명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분만 산부인과 의사들의 사명이다.
그렇게 작지 않은 사명감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이 모든 과정과 위험을 얕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치부해 버렸다. 분만 수가는 일괄적인 초저가로 묶어 포괄수가제를 시행했고, 잘못이 없어도 책임을 묻고 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를 강제로 시행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잠재적인 가해자가 된 그들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내팽겨쳐졌다. 사명감과 자존심으로 버티던 분만 의사들은 자리를 박차고 떠났고 분만을 포기했다. ‘분만 실적이 없으면’ 배상 부담금을 징수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2003년 1371개였던 분만 병원은 2019년 무려 60.5% 감소해 541개만 남았다. 단순히 저출산 문제 때문이라고 볼 수 없는건 신생아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현영 의원은 “불가항력 의료사고는 의료인이나 기관의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사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2006년부터, 대만은 2016년부터 100% 국가가 책임지는 산부인과 무과실 보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또 다른 잠재적 가해자를 감시하기 위해 수술실에 CCTV를 세계 최초로 설치하기로 했다. 어디까지 망가져야 할까.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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