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고 무시하더니…백내장수술 헐값에 포괄수가제로 전환해서 돌아온 건 '폭탄' 뿐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169화. 포괄수가제·비급여의 급여화, 폭탄이 된 풍선효과

‘피안성’은 2000년대 의대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중 하나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일컫는 말인데, 당시 의대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과로 꼽히는 3과였다. 

그 중 안과는 내가 의대를 다니던 시절, 100명이 넘는 학생 중 최소 10등 안에 들어야 지원서를 한번 넣어볼 만한 초인기과였다. 1등, 2등이 좁은 입구를 높고 진검승부를 겨루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던 특급 인기과였다.

안과가 인기과였던 이유는 눈이라는 장기 특성상 다른 진료과가 절대로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고, 당시 라섹, 라식의 열풍에 힘입어 환자들이 몰렸으며, 백내장, 녹내장 등의 노인성 질환이 국민 수명이 늘어감에 따라 증가세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명을 다루지 않는 과 특성 때문에 수련병원에서의 수요는 적어 매년 배출되는 전문의 수는 적었다.

이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안과의 인기가 뚝 떨어졌던 적이 있다. 2012년 정부가 백내장 수술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포괄수가제란,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비에 대해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제도다. 복지부는 당시 포괄수가제를 확대 시행하며 ‘본인부담금 감소와 보장성 강화’ ‘간편한 병원비 계산’ ‘적정한 진료 보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당연하듯이 백내장의 수가는 장비 값에도 모자랄 정도로 턱없이 팍팍하게 책정되며 안과 의원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배들의 어려움을 지켜본 후배들 사이에서 ‘이제 안과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며 안과의 인기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포괄수가제 1년 만에 의사들 ‘아우성’” -2014.06.01. <청년의사>
“깎고 또 깎은 백내장 수가...시름 깊어지는 안과” -2018.07.12. <데일리메디>

하지만 시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풍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안과가 일반 백내장 수술에서 보험 적용이 되는 일반 렌즈가 아닌, 보험 적용은 되지 않지만 실손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다초점 렌즈’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보험 적용이 되는 백내장의 수술료는 겨우 18만원, 검사비는 고작 3만원이었지만, 안과들은 수익 보전을 위해 다초점 렌즈 비용을 300만원 이상으로 책정해 키 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보험사의 실손보험금 지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폭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6년의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은 779억원에 불과했지만, 2020년 6480억으로 무려 8배로 늘었고 올해는 무려 1조 1528억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이런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실손 보험사들의 탈출 러시가 시작돼 30개 보험회사 중 14개 회사가 백내장 수술의 실손보험 취급을 중단했다. 보험사들은 몇몇 과도한 안과들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고 싸움판이 벌어졌다. 

이런 제도를 무분별하게 악용하는 몇몇 안과들이나 상품 판매 손실 책임을 병원에 넘기려는 보험사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튀어오를 수 있다는 당시 전문가들의 경고를 왜 그때 그렇게 무시했을까. 당시 보건복지부가 주장하던 행복한 예상은 과연 현실화됐나? 

이 사태를 보면서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전문가들의 경고를 참고하고 반영하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여기저기를 계속 누르고 옥죄고 규제하려고만 하고 있다. 다음에 튀어나올 곳은 어딜까.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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