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불합리한 제도에 의료인 저항 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자격이나 영업과 밀접한 범죄로 한정해야"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운전 중에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경우 고의적이지 않고(과실이 인정되고) 유족과 합의가 이뤄지면 보통 금고 1년 내외, 집행유예 2년 내외를 선고 받습니다. 만약 면허강탈법이 개정되면 교통사고로 사망사고를 일으킨 의료인의 과실이 인정되고 유족과 원만하게 합의하더라도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 정도를 선고받으면 집행유예 2년이 지난 후 다시 2년, 총 4년간 면허취소 처분을 받게 됩니다.”
25일 대한의사협회가 마련한 의료인 면허취소 징벌적 확대저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면허강탈법) 관련, 대회원 홍보자료에 따르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예상치 못한 의사면허 취소 사례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개정안은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이어 19일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 사실상 국회 본회의를 통과 가능성이 높아져 이날 법사위가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의료인에 대해서도 변호사·공인회계사·법무사 등 다른 전문직종과 같이 범죄의 종류에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선고유예 포함) 면허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끝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의료인이 이에 해당하면 면허가 취소된다.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 받은 의료인이 다시 자격정지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다시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이 면허를 재교부 받은 후, 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를 취소하는 경우에는 10년 간 재교부를 금지한다.
의협은 구체적으로 의사들에게 쉽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면허취소 사례를 제시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규정 속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사고가 발생해 처벌되는 경우 ▲응급실에서 환자가 진료 지연 등의 사유로 의료진을 폭행하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쌍방폭행으로 인정된 경우 ▲사업주가 근로자 등 지급 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없이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 임금 또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위장전입으로 주택분양을 받은 경우 ▲재직 중 직원들의 개인정보 업무를 취급했던 사람이 퇴사하면서 직원들의 성명, 연령, 휴대전화번호 등이 기재된 직원명부 파일을 본인의 이메일 편지함에 옮겨 보관한 경우 ▲양육비 명령 결정을 받은 날부터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의협은 면허강탈법의 문제점으로 첫째, 타 직종에서 적용되는 결격사유를 의료인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징벌적 규제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변호사법 제5조 제2호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를 변호사의 결격사유로 본 조문의 합헌성을 결정한 선례를 보면 직무의 공공성 및 직무범위를 의사와 달리 판단해 타 직종에서 적용되는 결격사유를 의료인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의협은 의료행위와 무관한 형사 제재를 결격사유로 규정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적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법제처에 따르면 면허가 박탈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해당 자격이나 영업과 관련되는 범위로 한정해야 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등과 같이 윤리성 또는 공정성의 확보가 긴요한 직업이나 자격의 경우에는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일정한 형벌 이상의 전과사유을 결격사유로 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입법 목적 실현과의 관련성을 고려해 해당 자격이나 영업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범죄로 한정하도록 하고 있다.
셋째, 의협은 형사처벌과 행정처분(면허취소 등)을 구분하지 않아 사실상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의료인이라는 직종을 이유로 선고된 형이 종료된 상황에서 추가 기간을 일률적으로 연장해 면허를 받지 못하도록 한다면 죗값을 치른 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의협은 평등원칙 위배 및 타 전문직에 비해 과도한 규제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의료인에 한해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일정한 형벌 이상의 전과사실을 결격사유로 한다거나 기존에 정하고 있는 면허재교부 제한 기한이 있음에도 별다른 근거 없이 재교부 제한 기한을 늘리는 것은 입법재량을 벗어난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명목상으로는 변호사 등 타 전문직종과의 균형을 입법 목적으로 언급하면서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타 전문직에는 규율하지 않는 사항을 의료인에 한해 적용하고 있다”라며 “나아가 타 전문직에 존재하는 내용조차도 그 기간에 있어서는 의료인에게 더 과도하게 긴 기간을 적용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의료인에 한해 기존의 면허재교부 제한기간과는 별도로 결격사유 기간을 추가로 규정해 경미한 범죄로 인한 선고유예의 경우에도 면허재교부 제한기간의 적용을 받아 3년이 지나야만 면허재교부가 가능하다.
의협은 ‘면허강탈법에 대한 의협의 입장’을 통해 “살인, 강도, 성폭행(성범죄) 등 중범죄에 대한 면허 처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면허강탈법 개정안은 변호사와 의사의 직업적 전문성의 차이를 인정한 헌법재판소 결정과도 맞지 않다. 개정안이 취지와 다르게 악용될 경우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불합리한 의료제도에 대한 의료인들의 저항을 막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의협은 “따라서 중범죄 이외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와 법제처 해석처럼 면허 처분 대상을 직무관련성을 고려해 해당 자격이나 영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범죄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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