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의대 증원, 그나마 있던 필수의료 전공의들을 거리로 내쫓은 건 대통령이다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사진=챗GPT가 그려준 의새들의 파업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 집단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하겠다." 

매일 같이 뉴스에서 고장난 축음기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이라서 이제는 이 구절이 저절로 외워지고 말았다. 그런데 어째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 않고 자유주의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인격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정치적 사상으로 자유를 최상의 정치·사회적 가치로 삼는 사회철학적 이념을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사상의 의미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보호되며 정치적 권력 작용이 법의 지배에 의해 제한된다. 사람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통해 통치가 행해지는 법치주의는 사람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통한 통치가 이뤄진다. 

지난해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4·19혁명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됐다. 우리 정부는 어느 한 사람의 자유도 소홀히 취급돼선 안 된다는 4·19정신이 국정 운영뿐 아니라 국민의 삶에도 깊이 스며들게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라고 했다.

대통령은 당시 발언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진다. 정부가 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 대신에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정부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먼저 총선용 의대 증원 2000명 카드를 꺼내놓고선 전공의들의 사직과 의대생들의 휴학이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 집단행동이라고 허위 선동을 하기에 여념이 없고, 가짜뉴스로 의사들을 악의축으로 몰고 있다. 

법치주의라는 말을 통해 전공의와 의대생 휴학을 겁박하고, 공안 정국보다 심각한 민주적인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의사면허 취소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급격한 의대 증원이 불러올 문제점을 온몸으로 항의하고 있을 뿐이다.  

의대 입학정원을 현 3058명에서 최소 2000명 증원'과 이른바 '의료멸망 패키지'를 못 박고 법정 의사단체 전공의 의대생들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위협받고 있다. 

의사가 부족해서 증원해야 한다는 정부는 10년간 어렵게 키워낸 9000명의 전공의를 단지 정부의 복귀 지시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면허취소를 하고, 다시는 의사를 못하도록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의대 정원의 급격한 확대는 의료비 지출 부담, 건보재정 악화, 이공계 교육 대혼란, 사교육 시장의 급팽창 등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의사가 매년 2000명 늘어나 의료수요가 늘면 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 구조에서 국민 의료비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반드시 늘게 돼있다. 

저출산으로 대입 지원자가 감소하는 추세에 급격한 의대 증원으로 우수한 인재의 의대 쏠림현상은 이미 학원가뿐 아니라 서울시내 대학가의 휴학이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문제의 핵심인 의료수가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빅5 대형병원이 전문의 대신 40%가 넘는 전공의를 두고 저임금 중노동으로 착취하고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정부는 한 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은 채 구조적 모순에 눈감을 뿐이다. 의사들에게 영원한 희생만 강요하며 형사처벌·면허취소로 협박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증원에 따라 지역·필수 의료 회복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교육 현장에서도 확인했다고 하지만, 지역·필수 의료 회복의 출발점은 저수가의 정상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GDP나 의료비가 증가한 만큼 의사 수가 늘어야 한다고 비유한다면 물가상승률만큼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만큼 보상체계 개선방안을 어디에도 내놓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한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기 위한 전문의 채용에 나서려면 대형병원의 전공의 비율인 40%를 전문의로 채용할 수 있는 만큼의 비용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 개선을 위해서도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지불해서 해결하거나 국가가 세금을 직접 투입할 것인지 재원 마련 계획부터 결정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어려운 수련과정을 거쳐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고서도 전문성을 살려 일할 병원이 없고, 개원의가 돼도 환자가 자신을 찾지 않는 데다 모든 리스크를 의사 스스로 떠안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 낸 ‘국가별 요양급여 비용 비교’ 보고서를 보면 관상동맥우회술의 경우 한국을 제외한 11개 국가 중, 미국이 가장 높은 7만 6385달러였다. 그 뒤를 이어 뉴질랜드(3만 6516달러), 그리스(3만 3584달러), 스위스(3만 3199달러) 순으로 높았다. 한국에서 관상동맥우회술로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되는 환자 1인당 비용은 7323달러로 카자흐스탄(8361달러)보다 낮은 최저 금액이었다. 

담낭절제술의 경우 미국이 1만 6287달러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는 스위스(7948달러), 그리스(7713달러), 뉴질랜드(6978달러) 순으로 조사됐다. 가장 비용이 낮은 국가는 카자흐스탄으로 평균 비용이 679달러로 조사됐다. 한국은 이보다는 높은 1147달러로 나타났다. 

산부인과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자연분만 비용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19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7500달러, 스위스가 5634달러, 그리스가 4729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1342달러로 조사됐는데 미국의 6분의 1, 스위스와 그리스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랑하던 한국의료의 실상은 건강보험이라는 왜곡된 가격결정제도에 국민들이 수십년 간 길들여져서 세계 최저의 의료수가를 당연한 것으로 수십년 간 믿게 한 결과다. 

정치인들의 생각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의사 증원으로 과잉 공급된 의사들의 노동을 저비용으로 의료시장에 갈아 넣어 저수가의 의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의사들에게 더 이상 저수가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 의사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 한 전공의와 의대생들뿐만 아니라 전임의와 교수들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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