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낙태 허용 임신주수 논의하고 의사·임산부가 처벌받지 않는 입법 마련을"

의료체계 구축·양육책임법 등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안전 보장 위해 다양한 입법 보완 필요

사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제 270조 1항(동의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헌재가 주문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회입법조사처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를 마련했다. 토론회는 국회 법제사위원회 백혜련 의원(더불어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정인화 의원(민주평화당),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의원(정의당)이 국회입법조사처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 위헌 결정으로 인해 향후 제·개정이 필요한 입법 과제와 쟁점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임신중절 시기와 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대한 규정, 형사처벌 존치 여부 등이 주요한 쟁점으로 제시됐다.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체계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진: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김주경 입법조사관.

낙태죄 위헌 이후, 임신중절 시기와 허용 사유 쟁점으로 떠올라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된 쟁점 및 입법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낙태죄가 위헌 판정을 받으면서 사유를 불문하고 임부의 요청에 따른 임신중절 시기를 결정하는 일과 허용된 사유에 한해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는 시기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향후 필요한 입법과제로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 형사처벌 존치 여부와 낙태 허용 사유 등을 담는 모자보건법 개정 등이 언급됐다.

김 조사관은 "이유를 불문하고 임부의 요청에 따라 임신종결 시기를 언제로 잡을지가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다. 헌재를 판결에서 14주까지로 제시하고 있다. 해외 다수 국가도 약 10주에서 14주 정도는 통상적으로 사유를 불문하고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조사관은 "사회경제적 사유 등 법에 따라 허용된 사유에 한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시기, 즉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는 시기를 결정하는 일도 주요한 쟁점이다"면서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22주로 보고 그 전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도입해 임신중절을 허용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이에 대해서는 우선 22주의 기준이 타당한지 논란이 있고 그 다음으로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의 도입 방식과 관련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구체적 열거방식은 한계가 있다"면서 "허용 사유를 벗어나는 임신중절이 불법이 될 우려가 있어 올바른 장식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용 사유를 판단하는 주체를 의사 또는 상담사로 할 것인지, 그게 타당한 방식인지 논란도 있다. 또 22주 이후 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이 의미가 있는지 등 실효성에 대한 논쟁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조사관은 "청소년 임부가 임신중절을 하게 될 경우에 보호자 동의 요건을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청소년 임부뿐 아니라 심신 미약자 등도 마찬가지다. 현행 보자보건법은 친권자, 후견인 동의를 요구하고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으면 부양의무자의 동의를 요하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보호자 동의 요건을 둔다면 연령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 청소년, 미성년자 등을 규정한 법에 명시된 나이는 제각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모자보건법은 가임기 여성을 사실상 초경이 시작하는 나이부터 임신 가능 여성으로 다루기 때문에 미성년 임부의 임신중절 허용을 뭘 기준으로 할지 새로운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술 전 상담·숙려기간 등 절차적 요건을 어떻게 할지, 건강보험 적용 및 급여 범위와 미프진 등 사후 낙태약 판매 허용 등 의료서비스 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책은 어떻게 할지, 신념에 의한 의료인의 진료거부 등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조사관은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처벌 존치 여부와 모자보건법 개정이 가장 중요한 입법과제다"면서 "헌재는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고 밝혔다. 따라서 자기낙태죄를 폐지할지, 낙태에 관한 기본적 범죄 유형에서 삭제할지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조사관은 "형재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임신 시기와 허용 사유를 결합된 형태로 구상해야 한다"며 "사유를 중심으로 열거하는 모자보건법을 개정이 필요하다. 또 필요하다면 상담과 숙려기간에 대한 내용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중절과 관련해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업무상 동의낙태죄 유지 여부와 법정형도 개선해야 한다. 의사에 대한 가중처벌을 하는 것이 옳은지, 의료인의 직무를 다 했는데 처벌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 부동의 낙태치사상죄의 법정형 조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

의료계 "의사와 임산부 처벌 입법 반대... 여성 건강 위해 임신중절 줄이는 입법 보완 필요"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향후 입법 과제에 대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경제적 사유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자신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임신중절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제도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 그는 어떤 형식으로든 낙태의 죄를 물어 의사와 임산부를 처벌하는 입법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이사는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낙태에 반대한다. 의료기관에서 의학적 사유 이상으로 낙태를 해서 안 된다는 것이 학회의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료행위 시술자의 위치로 합리적인 법 개정이 이루어져 의사가 의료행위로 처벌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우선 인공임신중절에 관해 전공의 수련과정에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면서 "수술 방식은 계류유산과 똑같고 엄밀히 따지자면 인공임신중절보다 계류유산이 더 어려운 수술이고 이에 대한 교육은 현재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임신중절 후 패혈증 등 나타나는 문제로 인한 위험이 크다"면서 "임신중절에 관해 논하면서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삼는데, 임신중절 수술의 경우에 임신 초기면 덜 위험하고 임신 후기면 더 위험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잘못된 발상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 낙태와 수술한 의사에게 낙태의 죄가 위헌이라고 판결이 나온 만큼 향후 개정 방향은 낙태 처벌을 통해 규제하는 것보다는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경제적 사유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보완 입법을 해야 한다"며 "어떤 형식으로든 낙태의 죄를 물어 의사와 임산부를 처벌하려는 입법에 대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의사의 진료 거부 권리에 관해 "임부로부터 임신중절을 요청받은 의사라고 하더라도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할 수 있도록 의료법상 진료 거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며 "또 불가피하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신 12주 이후에는 약물 낙태만으로 불가능한 시기다. 이 기간에 낙태 결정전 상담 및 숙려기간을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숙려기간은 일주일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경우는 질병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우생학적·윤리적 적응과 강간 및 태아의 심각한 기형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현실적인 건강보험 수가(10만원 내외)가 지나치게 저수가로 인해 의사들이 수술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수가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김 이사는 낙태를 해서 건강한 여성은 없다고 지적하며 가능하면 여성이 임신중절까지 하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사회적 입법이 꼭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유럽 국가들은 임신중절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양육비 책임법을 만들었다. 임신에 대해 여성 혼자 책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 남성에게도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묻고, 한부모가 아이를 키우려고 하면 국가가 양육비를 지원하는 제도다"며 "고등학생이 임신해도 이런 지원이 있어 교육을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책임을 묻는 법이 같이 마련돼야 남성도 성실하게 피임을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미흡하다. 고등학생이 임신하면 교육이 중단된다. 여성이 출산 후 아이를 맡기고 떠났을 때 남성이 혼자 키우려고 해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6개월의 재판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신 초기에는 어떤 이유든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상담 기간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걱정 없이 출산할 수 있는지, 주거 지원, 양육 지원 등 모든 제도를 총동원해 양육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낙태죄 위헌 이후 우리사회가 해야 할 과제는 여성이 자신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임신중절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제도 등 정책을 만드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사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 관점에서 의료체계 구축하고 입법 사례 검토해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은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면서 부동의낙태죄 또한 형법이 아닌 의료법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첫 번째 쟁점으로 언급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는 입법 과정에서 삭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동의낙태죄는 정의당에서 발의한 것과 같이 형량을 강화하고 다만 형법이 아닌 의료법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밝혔다. 

그는 "현행 낙태죄는 여성들이 오히려 파트너로부터 악의적으로 고소를 당하거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낙태죄의 존치만으로도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중단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뒤에 결정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의학적으로 안전한 임신중단시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법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임신중단에 관한 국가 차원의 의료기술 수준, 의료진의 교육수준과 숙련도 다양한 시술방법의 보급, 상담을 포함한 의료지침, 임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 등이 안전성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약물적 임신중절도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의 임신중단 서비스로의 접근 불평등을 완화할 중요한 대안책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과 관련해 이 약물을 전문 의약품 혹은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할지, 어떤 절차 하에 복용하도록 할지 등 쟁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의 논의 과정에서 2016년에 마무리되지 못한 응급피임약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하다"면서 "응급피임약은 사전경구피임약과 다른 목적을 가진다. 물론 경구피임약에 비해 고농도의 호르몬제이지만, 많은 선진국가에서 우리와 다르게 일반의약품으로 접근성을 높인 이유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누구도 위험한 임신중단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전한 의료체계를 마련해 안전한 시기에 가능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교육, 상담을 해야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처벌로 규정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하고, 모자보건법이나 예를 들면 성·재생산건강법 등 별도의 법안을 통해 임신중단을 포함한 성과 재생산이 여성의 권리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소원 대리인단 차혜령 변호사는 입법 과정에서 참고하는 해외 입법 사례 또한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입법이 현실과 괴리되지 않으려면 여성의 권리 보장 수준이 높은 국가의 최신 입법 사례를 살펴보야 한다고 밝혔다.

차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건강권의 침해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면서 "국제적인 흐름은 임신종결에 관한 입법에서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의 보장이라는 관점을 중시한다. 국회 입법시 형사처벌의 여부나 범위 논의에 매몰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합법화되는 영역에서 임신종결에 대해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차 변호사는 "국회가 외국의 입법례를 참조하는 방식에 관해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헌재 결정 이전에 법과 현실의 간극이 있었던 것처럼 외국에서도 법과 현실, 담론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입법 동향 중 여성의 권리 보장 수준이 높은 국가들의 입법방향을 참고하되, 길게는 100년 이상, 짧게는 수십 년 만에 임신종결 법제를 정비한 최신 해외 입법 사례를 심도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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