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가 자율적으로 추진하려는 '전문가평가제'는 지난 3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면허관리제도 개선방안에 따른 후속조치로 보인다.
전문가평가제를 통해 의료인들의 자율규제 권한을 강화, 의료인 스스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평가제 도입의 직접적 발단은 최근 비위생적인 주사기 사용에 따른 반복적인 C형 간염 집단발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면 이해도 된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의사단체의 자율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규제, 중복처벌, 마녀사냥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취지는 좋아 보이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윤리적 의료행위는 의사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그러나 의료인들이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비도덕적 의료행위가 만연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부분적 인과관계에 함몰된 시각이다.
총체적 맥락에서 근본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점을 면밀히 살피지 않는 한, 또다시 진부한 윤리주의 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법적 강제와 더불어 윤리적 강요, 낙인을 통해 윤리적 의료를 성취하겠다는 발상은 과거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과 같은 의료시민단체가 줄곧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관치의료의 고착화에 악용되었을 뿐이다.
사실 윤리적 의료는 의료계의 오랜 화두였다.
하지만 비윤리적 의료행위는 갈수록 늘어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애써 외면한다면 해결방법도 나오지 않는다. 악순환만 반복된다.
흔히 의사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무엇보다 상업적인 의료행위, 비윤리적 의료행위의 근본원인은 의료인들의 윤리의식 부재 이전에 폭압적인 의료법, 비윤리적인 의료제도에 있다.
이는 의료인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부권주의에만 의존해 왔던 기형적 의료제도가 불러온 필연적인 부작용, 악결과이기도 하다.
실천윤리(practical ethics)의 하나인 의사윤리는 의사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반면 제도윤리는 의사들에게도 생소하다.
직업사회학의 대가인 엘리엇 프라이드슨(Eliot Freidson)은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lism 2001)'을 통해 실천윤리에 앞서 제도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도윤리는 노동의 도덕적 문제를 많이 야기하는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ㆍ이데올로기적 상황을 다룬다.
제도윤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전문가가 일하는 실제 현장에서 실천 그 자체에 대한 재정ㆍ행정ㆍ통제의 방법과, 실천이 행해지는 법률적ㆍ경제적 환경을 설정하고 집행하는 사회정책을 포함한다.
제도윤리는 타인을 이롭게 하고, 학문의 초월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실천의 가능성을 구속하는 사회제도와 정책의 도덕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다.
제도윤리는 학문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도덕적 관심에 의해 격려된다.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비난으로 가장 심하게 훼손된 것은 실천 윤리가 아니라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제도의 윤리이다.
그리고 만약에 전문직이 보수가 좋은 기술적 전문인 이상이라면, 반드시 재검토되고 강력하게 주장되어야 하는 것은 특히 제도윤리이다(프로페셔널리즘, 엘리엇 프라이드슨, 박호진 역)"
개별 의료인이 아무리 윤리의식으로 무장하더라도 직면하는 노동현장, 의료현장의 제반 제도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면 타인(환자)을 이롭게 할 수도 없으며 학문의 초월적 가치 구현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제반 의료제도는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의사직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은 면허제도라는 배타성이다.
특히 프라이드슨은 의료의 독점과 지배를 통한 경제적 특권은 프로페셔널리즘(전문직업주의) 정신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경제적 특권은 의사집단이 요구하기 이전에 고도의 정보 비대칭으로 상호 호혜적인 관점에서 의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폭압적인 의료 공공성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계약지정제 대신 강제지정제가 당연시 되었고 단일 공적보험의 법적 강제화로 의료획일주의가 고착화 되면서 타국과 달리 보편적 의료(공적의료)와 양질의 의료(민간의료)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적 특권을 누릴만한 완충지대, 틈새조차 사라진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의료계와 협치하지 않고, 규제일변도 저수가 정책으로 의료인의 경제적 특권을 그저 경제학 교과서에만 나오는 아득한 옛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 되었다.
애완견 진료비가 사람 살리는 진료비보다 높아졌다. 심각한 역전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독일의 어느 의사는 우리나라 내시경 수가가 자기 나라의 내시경 소독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저수가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이런 상황에서 내시경 장비의 철저한 위생적 관리를 법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 아닌가?
비합리적 수가결정구조, 폭압적 보험심사와 실사, 의료전달체계도 개혁의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건강보험 잉여재정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는 전혀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오히려 관리자인 공단과 심평원의 복지비, 화려한 빌딩들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의료분쟁강제개시법, 비급여 심평원관리법, 명찰법, 실비보험 사기방지특별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폭압적인 제도와 의료법들은 매일 쏟아지고 있다.
모두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는 폭압적인 의료법들이다.
의료전달체계도 심각하다.
타국과 달리 대학병원은 교육과 연구라는 고유 기능을 상실한 채, 단순 고혈압, 당뇨환자, 감기환자를 두고 1·2·3차 병원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여기에 의료인력 공급과잉으로 대한민국 의사들은 심각한 생존경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비합리적인 의료제도, 비윤리적인 의료제도에서 무슨 예절이 나오고 윤리가 나오겠는가? 이런 척박한 의료 환경에서 범법자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비정상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만 늘어난다.
의학이라는 학문의 초월적 가치도 결국 공공선(the public good) 실천에 있다.
따라서 의료 공공성(公共性) 확립은 중요하다.
그러나 공공성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공공성 확립은 예전처럼 사(私)를 죽여 펴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아니라 활사개공(活私開公)이어야 한다.
최근 개정된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도 이를 반영, 구체화하였다.
그럼에도 당국은 여전히 멸사봉공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윤리적 인간론을 부각시켜 윤리적 의료를 성취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복종과 종속을 강요하는 관치의료 기반만 더욱 공고히 다질 뿐이다. 갈수록 윤리적 허무주의, 냉소주의만 팽배해질 것이다.
이렇듯 대한민국 의사들의 사회적 위상, 의료현장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한, ‘전문가평가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갈수록 의료인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게 될 것이며 극단의 원심화 현상을 보일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문가(professions)인가? 단순 기술자(technicians)인가? 심각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현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고도의 윤리관이 필요한 전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저수가 체계 속에서 그저 생존만을 강요받는 단순 기술자를 요구하는 것 같다.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기대했던 결과도 절대 나올 수 없다.
윤리적 인간론을 강요하기 이전에 합리적 의료제도, 윤리적 의료제도 정립이 우선이다.
선순환의 제1조건이다.
정부와 의사협회는 소비자들에게 이런 불편한 진실, 대한민국 의료제도의 실상을 소상히 알려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사협회는 정부에 피동적으로 끌려갈 것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것은 전문가집단의 당연한 책무,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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