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분만한 산부인과에 12억 배상 판결문 살펴보니…'상태관찰 소홀' 과실

태동 약해 야간에 병원 찾은 산모, 의료진 1시간 반만에 직접 진료…법원, '태아곤란증' 대처 지연 과실 지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법원이 태동이 감소한 느낌이 들어 유도분만 하루 전 산부인과를 찾은 산모가 의료진 과실로 뇌성마비 신생아를 분만했다며 산부인과의사에게 손해배상 12억원과 위자료 1억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의료계는 출산과정에서는 사람이 예상하기 힘든 다양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함을 지적하며 의사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에 반발하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제1민사부가 이 같은 판결을 내린 배경은 무엇인지, 판결문을 살펴봤다.

태동 줄어 병원 찾은 임신부…의사 없이 검사, 내원 1시간 반만에 의사 진료 후 제왕절개

임신부 A씨는 2016년 4월말 B씨가 운영하는 B산부인과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고 정기적으로 산전 진찰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A씨와 태아에게 별다른 이상소견은 확인되지 않았다.

A씨는 유도분만 예정일 하루 전인 2016년 11월 20일부터 진통을 느꼈고, 같은 날 오후 6시~7시부터 태동이 평소보다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 오후 10시 30분경 병원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B병원은 A씨에게 태동검사를 위해 내원하라고 했으면 이들은 밤 11시 30분경 병원에 도착해 입원했다.

해당 병원 간호사는 오후 11시 39분부터 A씨에 대해 비수축검사(NST 검사) 및 내진검사를 실시했는데 이때 의사 B씨는 대면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진검사 결과 A씨는 '자궁 3cm, 자궁경부 소실도 50%'로 별다른 이상소견은 없었다.

이에 간호사는 A씨에게 분만 전 처치로 관장을 시행했고, 그 과정에서 NST 검사가 일시 중단됐다. B병원이 이용하는 검사기는 검사기 전원이 꺼지더라도 그 중단된 시간을 검사 결과에 반영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았고, 다시 NST 검사가 개재된 후 NST 검사기록지에 기재된 검사시각과 실제 검사시각 사이에 중단된 시간만큼의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간호사는 A씨에 대한 관장 처치를 마치고 이튿날 12시 4분경부터 NST 검사를 재개했고 당시 태아의 심박수는 분당 155회로 측정됐다. 그날 새벽 1시경, 간호사는 NST 검사 그래프상 태아의 심박수가 분당 80 내지 90회로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B씨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B씨는 새벽 1시 12분경 분만실에 와서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한 후 A씨에 대해 제왕절개술을 실시하기로 했다.

결국 A씨는 1시 25분경 제왕절개분만을 시작했고, 1시 33분경 아기를 낳았다.

신생아는 출생 직후 양수의 태변 착색이 매우 심했고, 호흡과 심박동이 없이 복부가 팽창한 상태였으며, 이 사건 병원의 진료기록지에는 신생아의 1분 아프가 점수(Apgar score)가 0점으로 기재돼 있었다.

병원 의료진은 신생아에 대해 기관 삽관, 산소요법 및 흉부 압박 등을 실시 했고 아프가 점수를 4점으로 상승시켰다. 그후 병원 의료진은 신생아를 상급의료기관에 전원하기로 하고, 새벽 2시 7분경 의료진이 동승한 가운데 119구급차를 타고 앰부 배깅을 하면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전원했다.

해당 신생아는 현재 발달지연, 상세 불명의 기관지 폐렴, 상세 불명 신상아 흡인증후군, 중증 출산질식, 영아 발작으로 진단됐고, 2018년 1월 17일에는 뇌병변 1급의 장애등급 결정을 받았다.

의료진, 태아곤란증 판별 위해 즉각 대응했어야…상태관찰 소홀로 태아곤란증 조치 '지연'​

신생아 부모는 B병원 의료진의 진료 및 출산 과정에서의 잘못으로 아이가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에 따른 사지마비 등에 기인한 뇌성마비로 인하여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일실수입 합계, 기왕치료비 합계, 향후 치료비 합계, 보조구 비용 합계, 기왕 및 향후개호비 합계 등 재산상 손해 16억4767만원에서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한 금액인 11억7226만원과 신생아와 보호자 2인에 대한 위자료 각각 1억원을 더해 총 14억7226만원을 지급하라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제1민사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피고 의료진이 원고의 분만 과정에서 태동 및 태아심박동수의 변화를 면밀하게 측정·관찰하고 그 변화가 있는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등 태아곤란증 여부를 판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이 있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태동검사를 위해 A씨가 병원에 내원한 직후 간호사가 아닌 의료진이 직전 진료해 태동의 감소 여부 및 정도를 확인했다면 태동이 감소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 검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추가 검사를 통해 태아곤란증 등의 이상상황이 보다 이른 시기에 발견돼 그에 따른 조치가 적시에 취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물론 A씨가 병원에 내원한 시점에서 이미 뱃속 태아가 태아곤란증에 빠진 상태였다면 의료진이 직접 태아를 진료해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11월 14일까지 이뤄진 산전 진찰 및 기형아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태아의 NST 검사기록지의 표시에 의하더라도 A씨 입원 이튿날인 11월 21일 밤 12시 27분 이전에는 태아의 심박동수가 정상 범위 내인 분당 150회 가량이었음을 고려하면 병원에 내원한 시점에서 태아곤란증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B씨를 비롯한 이 사건 병원의 의료진이 A씨에 대한 상태관찰을 소홀히 함에 따라 태아곤란증 상태에 빠진 태아에 대한 조치가 지연됐고, 그로 인해 태아는 분만에 앞서 태변 착색이 심한 양수를 다량으로 흡입함으로써 중증 출산질식에 이르게 됐으며, 그 결과 신생아가 사건 장애를 입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꼬집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B병원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어 B씨 병원이 A씨의 분만 과정에서 특별한 이상상황이 발생하리라 예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B씨가 분만실에 도착한 이후 일련의 조치는 당시 상황에 비춰 적절하고 신속했던 점, 출산 이후 신생아를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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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원 전 태아곤란증 증거 간과…의료진 야간에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응급수술 및 처치에 최선 다해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최선을 다한 산부인과의사에게 12억원 배상 판결은 너무 가혹하다며 법원이 간과한 쟁점들을 지적하며 현명한 판단을 촉구했다.

먼저 산의회는 태아가 산부인과에 오기 전부터 태아곤란증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분만 전 태아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심박동수만으로 판단할 경우 ▲NST검사 상 박동성 소실, 기저 변동성 소실 ▲기저변동성이 없어지고 태아심박동 서맥일 때 '태아곤란증'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A씨는 이미 산부인과에 도착했을 당시 태아 심음의 변동성 소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따라서 이 자체로 분만이 이뤄지기 이전에 임신 중 태내 감염에 의해 태아곤란증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법원은 이를 자세히 따지지 않고 간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산의회는 의사가 대면진료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 상태관찰 '소홀'의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산의회는 "비록 환자를 대면 진료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간호사 스테이션과 의사 당직실에서 태아 심박동 그래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고 실시간 연동이 문제 없었다면 분만실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태아의 심박동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의사는 실시간으로 산모를 관찰했고, 간호사 역시 의사의 지시에 의해 NST와 관장을 시행했다. 담당 의사는 A씨의 상태를 면밀히 측정·관찰하다 조치가 필요한 변화가 감지된 새벽 1시경 심박동이 80~90회로 감소한 상태를 확인한 후 응급조치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의사는 태아심박동 감소가 처음 시작된 이후 33분만에 응급 제왕 절개술을 결정하고 21분 만에 수술 시작 후 08분 만에 출생시켰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야간 응급수술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출생 후 신생아의 아프가 점수는 0점이었으나 의료진의 노력으로 아프가 점수를 4점으로 회복시킨 것에 대해 의료진이 최선의 응급처치를 수행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산의회는 재판부는 B씨와 의료진이 뒤늦게 신생아의 상태를 파악해 전원조치가 지연됐다고 본 것에 대해 당시 병원에는 산부인과 당직의가 한 명이었음에도 응급 제왕절개술을 진행하고 119구급대와 함께 인공 환기를 지속하며 신생아의 활력징후를 유지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그럼에도 법원은 출생 당시 생채 활력 증후가 전혀 없이 출생한 신생아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살려내서 상급 병원에 전원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배상책임을 지게했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분만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분만 현장을 떠나게 될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분만의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산부인과 의사들이 더 이상 견뎌야 할 이유는 이번 판결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상급심에서는 법원이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을 거듭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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