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실 파악 못하고 의사수 확대 주장하는 정부…OECD 통계서 우리나라 지역간 의사분포 불균형 적어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메디게이트뉴스] 정부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8%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나라라고 자랑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자화자찬에 침이 마를 겨를이 없다.
반면 정부는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의사수가 2.2명으로 OECD 평균(3.3명)에 못 미친다고 의료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정치적 요구에 의한 의과대학 신설이나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의료계와 이렇다 할 논의 없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결정을 하는데 있어 실제로 의학교육을 담당할 의학교육계나 늘어난 의사에 의한 정확한 영향분석도 없이 마치 군사정권 시대보다 더 지독한 ‘의료독재’ 체제를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료계에 대화를 제시했으나, 의사단체가 대화에 불응하는 모습으로 언론에 사실을 왜곡시키고 여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의사 수 OECD 평균치 논리에 갇힌 정부 실제론 도농 간 균형 잡힌 국가로 분류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지역격차가 너무나 심하다는 주장과 의사가 없어 마치 살릴 사람도 못 살린다는 주장을 하며 여론을 한층 더 자극하고 있다. 정부가 신봉하는 ‘OECD 자료’를 잘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도시와 농어촌 등 지역 간의 격차가 매우 심하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영토가 광활한 미국의 경우 지역 간 의사 분포에 있어서 불균형의 차이가 최대 5배 이상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호주와 벨기에를 비롯해 우리나라는 지역 간 의사분포의 불균형이 20% 이내로 제한적이다.
도시와 시골 간 격차가 큰 나라로는 캐나다,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이 꼽힌다. 특히, OECD 통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 의사수가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지만, 도시와 지역 간에 ‘보다 더 균형(more equal)을 이루고 있는 국가’로 분류해 보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토 규모가 작다는 설명은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캐나다 동쪽 끝에 붙어 있는 섬 지역 뉴펀들랜드 주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영토이고, 그나마 70% 정도가 산악 지형으로 돼있다. 선거에서 대승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검증되지 않은 의료불균형에 대한 심각성을 증폭시켜 공공의대나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하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정부는 이런 정치적 요구를 뒷받침할 만한 그럴듯한 자료 생성과 여론전에 가세해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오히려 도시와 시골간이 격차가 매우 양호한 편이라는 OECD의 보고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국내법에 근거한 자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보건법 제4조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주민의 건강상태 및 건강 문제의 원인 등을 파악하기 위해 매년 지역사회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문화했다.
환자 의지에 따른 ‘미 충족 의료’ 서울-강원 지역 간 차이 없어 대도시 진입용이
2019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 연간 미 충족 의료율(병의원)의 시도별 결과를 살펴보면, 서울(5.3%)과 강원도(5.2%) 두 지역 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차관은 서울과 강원도의 단순 의사 수 비교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마치 강원도 지역의 의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미 충족 의료’의 정의란, 최근 1년 동안에 환자 본인이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우를 계산해 ‘분율’로 표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 수에서 차이가 나는 서울과 강원도가 ‘미 충족 의료율’이 비슷한 이유는 강원도에 실제로 의사수가 적다고 해도 군에 거주하는 주민이 자신이 소속돼 있는 군에서만 의료 충족을 하지 않는다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논리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1시간대의 시간투자로 원주, 강릉, 춘천 등 환자가 원하는 대도시 진료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필요하면 서울 등 수도권까지의 진입도 충분히 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회피가능 사망률(avoidable mortality)’의 지표에서는 다양한 질병과 부상으로 인한 조기 사망을 줄이는 데 있어 공중 보건 및 의료 제도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일반적인 ‘시작점’을 제공한다. 회피가능 사망률은 예방적 원인에 의한 사망률과 치료적 원인에 의한 사망률로 대분된다. 물론 잠재적으로 피할 수 있는 사망을 줄이기 위한 정확한 원인의 평가는 보다 정교한 분석도 필요하다. 공중보건을 통한 예방이나, 제때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치료를 통해 회피 가능한 사망을 좀 더 감소시킬 수 있다.
OECD 통계에 의하면, 185만명이 예방적 초등조치와 공중보건으로 살릴 수 있었던 회피가능 사망이었고, 100만명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 발생하는 회피 가능한 사망이었다는 분석이다.
중차대한 의료 정책 예비타당성조차도 생략 선심성 강행 방식에서 벗어나야
정부가 서울과 경북 영양을 예로 들어 주장하는 도시와 농촌간의 심, 뇌혈관질환은 OECD 전체 예방이 가능했던 사망건수에서 약 2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치료로 사망을 막을 수 있는 질환의 36%는 심혈관계 질환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예방 가능한 사망에서 연령별 표준화한 사망률(age-standardised mortality)에서 우리나라는 OECD 38개 국가 중 15위를, 그리고 치료 가능한 사망률에서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인구가 적은 나라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치료가능 사망률이 낮은 것은 무엇보다도 우수한 접근성이 바탕이 된 것이다. 도시와 지역 간의 불균형이 정부가 주장하는 만큼 심각하지도 않고 오리려 국제적으로 도시와 지역이 균형적인 상위 4위에 올라있을 정도다.
실제로 인구 5000만 이상의 국가에서 지정학적 측면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1위라고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런 점을 보아도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OECD 의사평균 단순부족 논리에 의한 현 정권의 정책결정은 아무래도 매우 단편적인 판단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정부 주장대로 공공의료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90%의 민간의료기관에 의해서 크게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수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많은 선진국들보다도 열악한 의료 환경을 지닌 우리나라로서는 ‘의료적 성과’가 훨씬 높은 것으로 자평할 수 있다.
정부 스스로 OECD 통계에 의한 성장률 -0.8%를 보고 자화자찬하며 객관적 평가라고 주장하는 현상을 보면서, OECD 보건통계가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 현황과 의사부족의 모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제대로 판단해 보기를 촉구해 본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스스로 국제적으로 객관적이라는 자료를 세밀히 분석해 보고 나서 우선 우리나라 의료의 위치가 현재 전 세계 지구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뛰어난 의료실적과 역량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실제 점하고 있는 위상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정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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