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의사 12만명 부족에 코로나19까지..비자 발급 규정 완화하고 주면허 제한 해제 조치
의사 100만여명 중 외국의대 졸업생 23.6%...의사면허 개방보다 외국인 의사 채용 확대 전망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미국이 의사 부족의 대안으로 의대생 조기 졸업과 은퇴 의사 활용, 주별 의사면허 인정 등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외국인 의사들에게 의사면허 규정을 완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어, 향후 한국 의사를 비롯한 외국인 의사들에게 미국 진출 기회가 열릴지 주목된다.
4일 오후 3시 기준(현지시간)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0만915명이다. 이는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118만1825명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지역별로는 뉴욕주가 하루만에 1만여명이 늘어나 11만3806명으로 가장 많고, 뉴저지주 3만4124명, 미시간주는 1만2744명 등으로 코로나 확진자 수가 1만명 이상인 주는 8개주다. 사망자 수는 8000명을 넘겨 8162명에 달한다.
미국 병원에는 92만5000병상이 있는데, 입원 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환자가 2000만명 이상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의 장비가 크게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료인력이다.
뉴욕,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등 타격이 심한 주의 주지사들은 이미 퇴직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코로나19 의료지원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뉴욕대 등 4개 의대는 의대생을 조기에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은 다른 주에서 취득한 의사면허를 인정하기로 했다.
또 다른 의료인력 확보 방안은 외국의대를 졸업한 외국인 의사들이다. 미국의 입국 제한 조치로 외국인 의사들의 취업이 막힌 상태인데, 현지 의료기관과 의사들의 요청으로 비자 제한 조치가 해제된데 이어 기한 연장 조치도 이뤄졌다.
미국의사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 연구에 따르면, 미국 의료전문가 16만 4000여명 중 16.6%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태어났고 4.6%는 비시민권자였다. 2019년 기준 미국 의사면허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를 통과한 의사 100만여명 중 23.6%는 외국의대 졸업생(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 포함)으로 나타났다.
민간단체인 미국 국립레지던트매칭프로그램(National Resident Matching Program, NRMP)에 따르면 2018년 미국 레지던트 매칭 프로그램 정원 3만7103명 가운데 외국의대 졸업생이자 비시민권자는 19.0%(7067명)였다. 외국의대 졸업생이면서 미국 시민권자는 13.7%(5075명)으로 둘을 합치면 32.7%(1만2142명)였다.
비자 발급 중단 해제하고 일정 앞당겨, 본국 거주 조건도 완화
미국 국무부와 외국의대졸업자교육위원회(ECFMG)에 따르면, 외국의대를 졸업한 외국인 의사들은 미국에서 USMLE를 획득한 다음 일할 병원과 계약해 J-1(교환연수비자)와 H-1B(전문직 취업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3월 18일(현지시간)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상대로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무비자 입국 제도를 통한 미국 입국은 가능하지만 취업,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비자를 발급 받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의사를 포함한 의료 종사자들이 비자를 받거나 비자를 연장하는 데도 제한이 생겼다. 미국의사협회(AMA) 등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조치라며 비자 제한 해제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무부와 ECFMG는 3월 26일부터 J-1 비자 승인을 받은 4200여명의 외국인 의사의 비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제한을 해제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의사들은 보통 USMLE에 합격하고 레지던트 매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의사들이다. 이들은 보통 7월부터 근무를 시작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바로 해당되는 주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J-1 비자는 한 번에 일 년까지 최대 7년을 연장할 수 있고 J-1 비자를 가진 외국인 의사는 비자 기한이 끝난 다음 2년간 본국에서 거주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본국 거주 요건을 완화하고 코로나19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H-1B 비자는 고용주가 의사 1인당 4000달러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추첨을 통해 신청자의 3분의 1에서 절반만 가능한 데다 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는 외국인 의사는 제한적이지만 이들도 본국 2년 거주 요건이 일시적으로 해제된다.
의사 부족 문제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주면허 제한 해제
미국 의료계는 비자 제한 해제 조치만으로는 코로나19에서 부족한 의료수요에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의사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국민 1000명당 의사수는 미국이 2.6명으로 OECD 평균 3.4명에 비해 적은 수준이다. 미국의과대학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Medical Colleges, AAMC)는 2032년까지 부족한 의사가 1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의사들이 고령화된 것도 의사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요인이다. 미국의사협회(AMA)에 따르면 65세 이상 의사는 전체의 15%이고 55세에서 64세까지는 27%다. 이는 미국 의사 10명 중 4명 이상이 향후 10년동안 은퇴연령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등 일부 주지사는 주 의사면허 발급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보통 미국의대 졸업생은 해당 주에서 1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으면 주면허가 발급되고 외국의대 졸업생은 2~3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으면 주면허가 발급된다. 주별로 면허는 상호 인정되지 않는데, 일부 주는 이를 해제하고 다른 주의 의사면허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3월 31일부터 6월 30일에 만료되는 주 의사면허에 대한 6개월동안의 의학 교육(CME) 갱신 요건을 면제하기도 했다.
AMA 패트리스 해리스(Patrice Haris) 회장은 “이미 조치하고 있는 은퇴의사와 의대생 조기 졸업 외에도 외국의대 졸업생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 외국인 의사가 가장 많은 3개주가 비자 제한 조치로 타격을 입었다"라며 "외국의대 졸업생들은 보통 취약지역 환자나 일차진료를 담당하고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지나친 장벽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 의사에게 면허 개방보다 합격 확대 또는 채용 확대의 의미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의료전문가 교환연수 비자를 승인하겠다며 가까운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요청하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외국인단체 등은 '미국 의사면허 개방'으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해당 관계자는 에서 미국 의사면허를 취득한 외국인 의사에 한정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의사 부족에 직면하더라도 당장 의사면허를 개방한다는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다만 이전에 비해 USMLE 합격자수를 늘리거나, USMLE에 합격한 외국인 의사의 채용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만약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한다면 미국 의사시험을 합격하는 조건으로 외국인 의사가 단기 수련을 받은 다음 지정 조건에서 의사면허가 발급될 수 있다. 의사면허가 개방되지 않더라도 외국인 의사의 수련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미국 의사 부족이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 현재 비자 제한 해제는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한 외국인 의사에 한하더라도 이들의 취업 확대가 발표된 만큼 향후 외국인 의사의 미국 진출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은 “미국은 의사수가 모자라는 상황이다. 2010년 환자보호 및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 케어)을 도입한 이후 5000만명이 진료 대상으로 늘어나 의사수가 더욱 부족하다”라며 “그럼에도 외국의대 출신 미국 의사시험 합격자는 항상 수요보다 많아 의사면허 장벽을 내릴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소장은 “미국은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외국인과 내국인이 동일한 시험을 보도록 요구하고 있고 별도의 진입장벽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 영어로 교육을 받는 외국의대 졸업자가 워낙 많아 진출 기회가 있더라도 영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시적인 진출에 불과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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