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흉부외과 의사...2년 뒤부터 배출 전문의∙은퇴자 수 역전

10년 뒤엔 전문의 수 1000명 아래로...정부차원 실태조사 및 흉부외과특별법 절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벼랑 끝에 선 흉부외과학회가 정부 차원의 흉부외과 실태조사 실시와 함께 수가 정상화 등의 내용이 담긴 ‘흉부외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17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자간담회에서 학회 임원들은 흉부외과의 ‘멸종’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공의 지원 주는데 진료 수요 늘어...전문의 절반 이상 번 아웃

실제 흉부외과는 저수가와 전공의 지원율 하락, 의료진 번 아웃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좀처럼 끊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수가 가산금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공의 지원율은 처참한 수준(2022년 지원자 23명)이다.

전공의 감소 추세는 자연스럽게 배출 전문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명으로 1993년(57명)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24년부터는 배출 전문의보다 은퇴자 수가 더 많은 역전 현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은 “최근 1~2년간 전공의 지원이 준 다른 과들과 동일선상에서 봐선 안 된다. 흉부외과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정부에 심각성을 호소해왔다”며 “복지부가 실태 조사를 해보면 흉부외과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은 줄어들고 있지만 흉부외과 영역의 진료 수요는 증가 추세다. 폐암 수술인 폐엽 절제술은 2011년 대비 74.7% 증가했고, 심장 수술도 33.8%나 늘었다.

이로 인해 흉부외과 의료진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지난 2019년 학회가 실시한 흉부외과 의료진 실태조사 결과, 흉부외과 전문의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2.7 시간, 병원 외 대기 근무는 한달 평균 10.8일이다. 흉부외과 전문의 51.7%는 번 아웃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흉부외과학회는 2024년부터 은퇴자 수가 배출 전문의 수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료=흉부외과학회


흉부외과의 인력난과 업무 가중이 심해지면서 지방에서부터 흉부외과 ‘공동화’ 현상이 현실화 되고 있다. 대동맥 박리증 수술, 폐엽 절제술 등 주요 수술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개점 휴업 상태인 지역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대동맥 박리증 수술은 서울, 경기로 집중되고 있고 제주, 경북 등 일부 지역의 수술 건수는 매우 적다”며 “해당 지역들에선 환자가 이송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흉부외과 특성 반영한 수가 산정 필요...보조인력 공식화∙심뇌혈관법 개정 제안

이처럼 재앙적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비정상적인 저수가라는 것이 학회의 지적이다. 대표적 고위험∙고난이도 수술인 대동맥 박리 수술은 국내에서 약 890만원이 책정돼 있는데 이는  미국의 14%(약 6300만원) 수준에 그친다.

김 이사장은 “현재 수가 제도하에서 흉부외과 존속을 위해선 1인당 수술량을 늘릴 수밖에 없으나 인력수급 실패, 의료진 번 아웃으로 이 마저도 불가능한 상태“라며 “흉부외과 수술은 고위험∙고난이도 수술임에도 타 수술의 의료수가 산정 방식과 동일한 시간 중심 방식으로 산정되고 있다. 질병의 중등도, 수술의 난이도를 고려한 수가 제도의 획기적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9년부터 지원되고 있는 흉부외과 수가 가산금에 대해선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현재는 개별 병원에 가산금이 지급되다 보니 이를 흉부외과 지원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흉부외과 지원금이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감시 제도를 운영하고, 일부 금액은 학회로 지원해 전공의 지원에 쓰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조인력의 공식화와 인건비 상정도 주장했다. 흉부외과 수술은 집도의를 포함해 4~10명 이상이 필요하며, 장시간 수술 시에는 2배 이상의 인력이 소요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수술에 참여하는 필수 보조 인력(체외순환사, 간호사)들은 제도권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김 이사장은 “전공의도 부족한 상황에서 보조 인력들마저 이탈하게 되면 교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당직을 서야하고 이는 또 다시 번 아웃으로 연결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우, 지위 등을 명확히 하고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뇌혈관법의 문제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심혈관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2017년 5월부터 시행된 심뇌혈관법은 심뇌혈관 질환의 정의를 ‘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질환’으로 한정하고 있다. 선천성 심기형, 심장 판막 질환, 대동맥 질환 등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심혈관 질환을 제외하면서 심뇌혈관법이 되레 심장 수술 등의 영역을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심뇌혈관법에서 빠진 소아심장(선천성 심장질환)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다. 가장 흔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인 심중격결손의 경우 서울, 경기, 대구, 경남, 광주를 제외하곤 수술이 거의 시행되지 못 하고 있다. 소아심장 수술 전문의는 현재 25명 미만이 활동 중인데, 그마저도 5년  내에는 20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흉부외과학회는 이처럼 총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흉부외과의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정부 및 국회 주도의 실태 조사와 함께 ‘흉부외과 및 필수의료과 대책위원회’를 총리∙복지부 장관 직속 기구로 상향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전공의 수련 국가 지원 ▲수가 합리화 ▲보조인력 법적지위 확보 ▲흉부외과 지원금 관리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은 흉부외과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흉부외과가 겪고 있는 위기는 비가역적 단계에 진입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며 “이번에 학회가 제안한 개선안을 통해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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