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의료 국가책임제 시행…공공병원은 공중보건 상황 대비, 민간병원의 공익기능 참여 보상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⑬ 정홍수 대구광역시의사회장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철호 전 의협 의장 "일차의원과 중소병원 특별법·의료전달체계 정립·수가현실화"
②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의료분쟁처리 특례법 제정"
③박상준 의협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응급의료시스템 정비"
④최운창 전남의사회장 "지역의료 살리기"
⑤안치석 전 충북의사회장 "서울과 지역 의료격차 최소화"
⑥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보건의료 문제는 의사들과 먼저 협의"
⑦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의료체계 정부 관여 줄이고 자유도 높이기"
⑧장성구 전 의학회장 "전문가 의견 수렴·정치적 판단 배제…고품격 의료강국 대한민국"
⑨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료전달체계 확립"
⑩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⑪박진규 신경외과의사회장 "공공성 재정립과 지역불균형 해소"
⑫이태연 정형외과의사회장 "의료계 논의 거쳐 필수의료 살리기"
⑬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 "공익의료 국가책임제 시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보건의료(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신종 감염병으로 인해 국가재난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준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공공의료는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에 “공공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대부분이 사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민간의료기관이고,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을 위한 핵심제도인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에게 건강보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나라 민간의료는 이미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법률이 정하는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이용을 보장하는 의료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생산하는 의료가 아니라 건강보험 의료이므로, ‘공공의료’란 말 대신 ‘공익의료’로 지칭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익의료 강화를 위해 2025년까지 20개 내외 지방의료원 등에 400병상 규모의 공공병원 병상을 확충하여 감염병, 필수의료, 지역 책임병원 등의 역할을 맡긴다는 내용의 '공공보건의료 강화방안(2020년 12월)'과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공공병원 20개소 이상을 신·증축한다는 내용의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년 4월 26일)'을 발표한 상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9년에 전국 병원급 이상의 민간의료기관 3807개소(94.5%), 공공의료기관 221개소(5.5%)로 OECD 평균 3배의 공급 과잉 상태이며 각종 고가장비 등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국립대병원은 민간병원과 경쟁을 하며 서로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환자 진료비도 민간병원과 차이가 없으며, 외래환자 진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국립대병원 고유의 공익적 기능 수행이 무색한 지경이다. 게다가 2014년부터 시작된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평가항목이 수익성 위주의 경영평가로만 이뤄지고 있어 공익적 기능 수행 저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병원 중심으로 의료공급체계를 늘리는 정책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료의 질 저하이다. 이는 영국, 이탈리아 등으로 대표되는 공공기관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갖춘 나라들에서 의료자원이 부족하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빠른 의료체계 붕괴 현상과 함께 코로나19 치명률이 올라가며 의료 접근성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2년이 다 돼간다. 우리나라 공익의료는 공적자원보다 민간자원 확대가 더 빠른 시간 동안 진행됐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 의료취약계층 진료, 공중보건의료사업 수행, 정부·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사업 등 많은 공익의료 활동들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현실에 맞지 않는 법률을 근거해 이런 민간의료기관이 많은 노력과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국·공립병원과 보건소만을 공공자원으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등 편향된 시각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 차지하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감안해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새로운 공공병원 설립보다는 기존 인프라를 보완·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평소 공공소유인 국립병원·국립대학병원과 지방의료원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의 시설·장비·인력에 적극적 투자 또는 민간의료기관 매입을 통해 유사시엔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공익의료정책을 제안한다.

①개념이 모호한 공공의료 대신 ‘공익의료’ 용어 사용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현실에 맞는 ‘공익의료’의 개념을 정립해 이를 정책에 적용해야 한다. 병원별 기능을 재정립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포함한 ‘공익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립중앙의료원 등 국립병원은 평시엔 중증환자·중증응급환자 진료, 교육·연구·임상진료를 하고 감염병 위기 시엔 중환자 진료 및 치료, 감염병 대응 참여 등을 할 수 있다. 
 
②공익의료 기능 강화

공공소유인 국립대학병원과 지방의료원 등은 평소 민간소유 병원과 차별화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국립대병원의 경우 교육·연구뿐만 아니라 공익의료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시설과 장비·인력을 갖추고, 민간의료기관에서 수행하기 힘든 희귀 난치질환 등 특수질환 진료와 소외계층 진료, 감염병 대비 인프라 구축 및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공공소유 의료기관 평가는 민간의료기관과 차별화된 공익기능 위주로 시행하고, 정부 재정지원을 100%로 확대하는 대신 정부의 관리·감독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③공공병상 확보를 위한 공익의료자원 확충

공공소유 의료기관 신설하는 것에는 재정의 한계가 있으므로. 기존 경영이 어렵거나 필수의료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민간병원을 매입해 국공립 법인으로 변경하고 직접 운영 또는 민간병원 병상만을 매입해 병상 관리는 민간에서 하되 관리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 민간병원(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중환자실 수가 늘도록 국가에서 인허가 및 재정지원을 해서 평소에는 일반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병실로 활용하고, 의료재난사태 시에는 국가에서 공공병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④민간의료기관의 공익기능에 대한 지원 및 보상

영국의 경우 ‘공공-민간 동반자 관계(Public-Private Partnership: PPP) 전략’을 채택해 공공보건의료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해 왔다. 기존 정부주도에서 탈피해 민관이 공동으로 재원을 출연함과 동시에 민간의 기술과 전문성을 공공 영역으로 유도해야 한다. 

프랑스는 1970년부터 공공의료서비스 병원(Service public hospitalier, SPH) 개념을 도입해 부족한 국립병원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민간비영리병원도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PPP 일환의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지역사회 다양한 의료 요구도 수렴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병원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또한 민간의료기관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할 경우 재정지원, 시설 및 장비 지원, 기부금 조성 등 자금 조달 정책 및 감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2005년부터 노인복지시설에 2007년부터 공공보건의료시설에 PPP 전략을 도입·운영하고 있다. 해외 사례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공공의료가 아닌 공익의료 정책을 진행해 민간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 지속성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마련을 위해 ‘공익의료기금’ 신설 검토를 고려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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