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공약 아닌 의료계와 논의 거쳐 '필수의료'와 '외과계' 살리기가 필요하다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⑫ 이태연 대한정형외과의사회장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철호 전 의협 의장 "일차의원과 중소병원 특별법·의료전달체계 정립·수가현실화"
②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의료분쟁처리 특례법 제정"
③박상준 의협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응급의료시스템 정비"
④최운창 전남의사회장 "지역의료 살리기"
⑤안치석 전 충북의사회장 "서울과 지역 의료격차 최소화"
⑥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보건의료 문제는 의사들과 먼저 협의"
⑦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의료체계 정부 관여 줄이고 자유도 높이기"
⑧장성구 전 의학회장 "전문가 의견 수렴·정치적 판단 배제…고품격 의료강국 대한민국"
⑨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료전달체계 확립"
⑩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⑪박진규 신경외과의사회장 "공공성 재정립과 지역불균형 해소"
⑫이태연 정형외과의사회장 "의료계 논의 거쳐 필수의료 살리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 후 국민들의 기대수명 증가와 노년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보건‧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에 답해야 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성 보건의료 정책 공약은 필연적일 것이다. 

실례로 박근혜 정부에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케어(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그렇다. 네이밍이 다를 뿐이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큰 틀은 일맥상통하다. 

각 대선후보들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요구에 답하는 보건의료공약을 발표해야 할 것이며,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실행함에 있어 반드시 의료계와 함께 논의와 협의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 간곡히 요청드린다. 아래와 같이 필자가 제안한 보건의료정책 아젠다가 부디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과 국민들의 건강권 확립으로 이뤄지길 강력히 희망한다. 

1. 보건부의 독립- 정부조직법 개정

현재 보건의료정책과 사회복지·인구정책의 성격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현행 정부조직 체계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이를 일괄해 담당함에 따라 각 분야별 전문성을 제고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현행 보건·복지 통합 시스템 하에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데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한 보건부 독립은 차기 대통령 당선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감염병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2.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

현재 필수의료라고 할 수 있는 외과, 산부인과의 전공 기피현상은 의료계에서는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쉽게 말해 위험도가 높은 고도의 수술이 필요한 인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부 산부인과에 한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을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에 필수의료 전공 기피현상 해결과 종국에 국민의 건강권 보호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분쟁 및 사고의 위험이 높은 필수의료 분야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가 필요하다. 

3. 의료계 내부 자율정화 강화 및 의료인 단체 자율징계권 도입- 의료법 개정
 

일부 의료인의 일탈로 인한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불법 대리수술, 진료실 내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 등으로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이는 전체 의료인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수술실 내 CCTV설치 강제화라는 전 세계 최초의 입법례가 만들어졌다. 매일 수술을 해야 하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인의 의료행위(수술 등)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동료 의료인만이 가능하다. 행정권한을 가진 정부(보건복지부, 보건소 등)는 의료인의 감시와 통제를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들여다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전문가단체의 공익적인 역할의 필요성에 따라 변호사법, 변리사법, 공인회계사법, 세무사법에서는 각 단체의 자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하여 소속 회원에 대한 징계권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의료법에서는 의료인단체의 소속 회원에 대한 징계권 규정이 전무해 자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실정이다. 

차기 정부는 각 전문가 단체와 형평성과 보건의료 전문성의 특수성을 감안해 의료인단체 중앙회 자율징계권한 부여를 통해 행정처분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확보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4.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통한 의원급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 살리기

현재 의료전달체계 부재로 인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로 더욱더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고 있다. 

의료현장은 실로 아비규환이다. 최일선 의료현장에서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돌보는 의원급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은 고사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는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심각한 사안이다. 이에 의원급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이 유지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통해 의료이용의 체계 기준을 확립해 지역 일선에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을 돌보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 중소병원이 유지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의료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5. 의료수가 현실화- 특히 외과계 수술수가 현실화

머리말에 언급했지만, 한정적인 건강보험재정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외과의 특성상 대부분 의료인이 고도기술이 요구되는 수술에 많은 의료인력이 투입됨에 따라 고급인력과 장비가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외과계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가 저평가돼있어 외과적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형성돼있지 못하다.

이는 단순히 외과계의 국한된 문제가 아닌,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나아가 외과계 전공의 미달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다. 

고도의 외과적 수술 등 의료발전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동기부여와 전공의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의료환경 조성(외과계 수술 수가 현실화 등)이 곧 국민건강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각 대선 후보들은 보건의료 공약 수립에 있어 전문가인 의료단체의 적극적인 의견수렴과 소통을 부탁드린다. 의료계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공약 발표와 공약 집행은 국민들의 건강권,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 단체의 수장으로서, 국민의 건강권 보호와 안정적인 보건의료 환경 조성을 강력히 희망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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