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공보의의 역할은 근거기반 의학으로 지역 맞춤형 보건사업 주도하는 전문가

[공중보건의사 기획③] 전문가 참여로 지역별 보건사업의 전문성·효율성 강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공중보건의사 제도는 여러 직역이 섞여 있고 법적 지위와 운용 방식 등이 복잡해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처우 개선 조치도 미뤄졌다. 공중보건의사 기획은 복잡한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이해를 돕고 현재 공보의 제도가 가진 상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또 이번 기획은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공중보건사업을 강화하는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중보건의사 기획① "섬보의가 무엇인가요?"... 섬·교정시설·병원선·민간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들
공중보건의사 기획② 의사수 증가·무의촌 해소·공보의 감소 등 시대는 변했는데 40년 된 낡은 공보의 제도는 그대로
공중보건의사 기획③ 미래 공보의의 역할은 근거기반 의학으로 지역 맞춤형 보건사업 주도하는 전문가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미래 공보의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공중보건의사들은 의료 패러다임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하는 가운데 공보의들이 지역사회 내 보건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 의사 수 증가와 교통의 발달로 과거보다 의료취약지가 현저히 감소했고 고령화와 만성질환·감염병질환 증가 등 예방 중심 보건사업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보의의 보건사업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동안 행정 중심으로 진행된 보건사업에 의사가 참여함으로써 보건사업의 전문성과 효과를 높이자는 것이다. 대공협은 보건사업에 의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예방 중심 의료 패러다임 전환 속 공보의 역할 재정의 필요

1979년 공중보건의사 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전체 의사 수가 부족했다. 당시 공보의는 의사를 만날 수 없는 의료취약지에서 의사로서 예방접종이나 단순진료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은 변했다. 전체 의사 수가 증가했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의료취약지는 현저히 줄었다.

공보의의 조건도 달라졌다. 과거 전문의가 많았던 공보의들은 이제 의대를 졸업하고 막 의사 면허를 얻은 일반의들로 채워졌다. 의료가 세분화 전문화 되면서 의료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아졌다. 하지만 앞선 이유로 인해 공보의는 충분한 임상 경험과 전문과를 가지고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민간 영역의 의사들처럼 진료 업무를 수행하는 데 여러 제약이 있다.

지난 2017년 발표된 의료정책연구소 '공중보건의사 업무의 적절성과 발전적 방향의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보의들은 인접 민간의료기관이 있는 경우 진료 업무 수행 필요성을 높게 느끼지만 진료기능 개선 필요성 또한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진료 지원을 지양하고 취약계층 진료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등 진료 업무의 전반적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공중보건의사의 업무가 '진료'에서 '보건사업'으로 개편되는 것에 대해 공보의 1015명 중 53.5%인 과반수 이상이 '업무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보건사업으로 업무 개편에 대한 필요성은 근무연차가 올라갈수록, 보건소 근무자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는 보건소 내 공보의 역할이 단순진료에 그치지 않고 보건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또한 업무개편 전제 하에 공중보건의사가 수행해야하는 사업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만성질환 관리(당뇨, 고혈압 환자 교육 등)', '금연, 비만, 절주 등의 건강증진사업', '결핵관리사업' 등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중보건의사의 업무가 '진료'에서 '보건사업'으로 개편된다는 전제 하에서는 전문 보조인력 확충, 공중보건의사 의견 반영, 보건사업·임상의학·보건학 등 교육 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공중보건의들은 무분별한 진료 업무에 매진하는 것보다 적절한 보건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지역 내 보건의료의 질 향상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의 공중보건의사 운용 보건사업에서 지적돼 온 문제들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미래 공보의 역할은 근거기반 의학 바탕으로 보건사업 운용하는 전문가 돼야

대공협은 공보의의 역할이 근거기반 의학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보건사업을 주도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공협은 지역 내 보건사업에 의료 전문가인 공보의를 활용함으로써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서 지역 보건사업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보건사업은 행정을 중심으로 대상자 특정, 보건사업의 실효성, 의학적 근거 기반이 미흡한 채 추진되고 있다. 기존에 공보의가 참여한 보건사업의 문제점으로는 보건사업에 대한 교육 부재, 인센티브 등 동기부여 부족, 짧은 공보의 임기 등이 꼽혔다. 대공협은 현재 보건사업에 대한 교육에 중점을 두고 보건교육사업협의체를 꾸려 공보의를 위한 보건사업 교육안을 만드는 중이다.

대공협 조중현 회장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대한공공의학회, 전국보건소장협의회, 대한예방의학회, 의료정책연구소 등 협의체를 만들어 보건교육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추진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올해 하반기 3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하는 것이 목표다. 보건복지부와 아직 논의된 바는 없지만, 보건사업의 전문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인만큼 복지부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보건사업에 대한 교육을 받은 공보의들이 보건사업에 참여해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끈다면, 그동안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단지 시행하는 것에만 의의를 뒀던 보건사업이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될 것이다. 또 보건사업의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예를 들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보건사업 중에는 치매예방을 위한 박수치기 동호회, 꾸준한 운동을 위한 걷기 동호회, 경로당 가서 혈압·당뇨 재주는 보건사업 등이 있다"며 "보건사업은 대상자 발굴 등 기획 단계부터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또 보건사업 시행으로 인해 기대되는 효과, 보건사업 이후 평가 지표를 통한 분석 등을 활용한 보건사업 보완 및 추진 등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추진되고 있는 보건사업에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 보건사업 대상자도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걷기가 건강에 도움된다면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기준도 없고, 만성질환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평가지표도 없어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의료 전문가로서 의사가 보건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평가 단계까지 참여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질 높은 보건사업을 추진하고 실효성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근거기반 보건사업을 구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공보의들의 근무 기간이 3년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보건사업 추진 체계를 구축해 놓으면 데이터베이스화 되기 때문에 보건사업 교육을 받은 어느 공보의가 와도 연속성을 가지고 보건사업을 추진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사회 보건사업의 강화를 위해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 의사도 보건사업 교육을 이수해 지역 보건사업에 자문 등 역할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며 "보건사업에 참여하는 의사가 확대되면 양질의 보건사업이 가능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예방 중심 의료를 보다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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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주도 지역 맞춤형 보건사업의 성공 사례, 평창군 '찾아가는 메디컬센터'

지난 2017년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공중보건의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보건사업으로 '찾아가는 메디컬센터', '노쇠예방사업' 등등이 시행됐다. 평창군 사례는 향후 공보의제도를 통해 지역 맞춤형 보건사업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보건사업의 결과, 보건소· 의과 공중보건의·주민 모두가 높은 만족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공협은 지역맞춤형 보건사업의 성공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공중보건의를 대상으로 보건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표준교육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인센티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창군은 태백산맥에 위치해 해발고도가 700m 이상인 곳이 전체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특히 북쪽, 서쪽, 동쪽은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의료접근성이 낮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평창군 공중보건의들은 의료접근성의 격차가 일차진료보다는 안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 전문과의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했다.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평창군 공보들은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평창군에 적합한 보건사업으로 '찾아가는 메디컬센터'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 시행했다. '찾아가는 메디컬센터' 사업은 평창군 내에서도 전문과 진료에 대한 의료접근성이 가장 취약한 지역을 선정했다. 이어 전문의 공보의로 꾸려진 진료팀을 구성해 정해진 날 각 보건지소를 순환해 전문 진료를 수행하는 형태로 전문지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이는 기존의 읍·면당 보건지소에 전문의를 배치하는 형태와 다른 방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처음에는 보건지소 내에서 공중보건의의 진료비중을 줄이는 것에 대한 주민 반발이 있었고 지역 주민들의 '찾아가는 메디컬센터' 사업 참여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활성화된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주민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해 해당 보건사업을 시행하는 지역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이 늘어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은 것으로 파악됐다.

공보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보건사업의 차별성은 보건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연구 설계 개념을 적용한 데서 비롯됐다. 평창군 공보의들은 보건사업을 기획할 때 '평가항목선정-절차확정-팀조직-주민조사-OMR처리-통계분석-주민피드백-개선프로그램' 모델을 적용했다. 여기서 그치치 않고, 공보의들이 보건사업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보건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의사가 참여하는 것이 보건사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대다수 공보의들은 의료취약지로 분류된 보건소나 보건지소에서 일괄적으로 일차 진료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고전적 의미의 의료취약지가 감소하고 공보의제도를 둘러싼 의료환경 및 조건이 변한 만큼, 공보의 역할도 새로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평창군 사례는 향후 공보의의 역할을 제고할 수 있는 사례면서 동시에 지역 보건사업의 질을 끌어올리는 모범 사례다"며 "평창군 공보의들이 의료취약지에서 일차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지, 전문과 접근성이 떨어지는지 등을 분석해 지역 환경에 맞춰 실시한 보건사업은 주민, 보건소, 공보의 모두에게 만족을 줬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역사회의 맞춤형 보건사업의 질을 높이는 첫 번째 단계는 공보의 보건교육사업안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며 "국회는 지역 보건사업의 질을 강화하기 위해 농어촌의료법 등 개정을 통해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또 지자체·보건복지부 등이 공보의 교육사업 등에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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