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원 문 닫을지도…'의학교육 파행' 증인 돼 달라"

의평원 한재진 부원장 "내년부터 수년간 파행 이어질 것" 경고…주요변화 평가 계획대로 시행

한재진 의학교육평가원 부원장이 16일 서울대 암연구소 이건희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잘못 끼운 단추를 풀든 안 풀든 내년엔 교육 파행이 벌어질 거고 그건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증인이 돼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한재진 부원장은 16일 의평원이 서울대 암연구소 이건희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한 나라에서 의대정원이 2배 내지 3배로 늘어서 교육을 시작하고, 그렇게 5~6년 가야 하는 상황은 전 세계 의대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며 참석자들에게 이같이 부탁했다. [관련 기사=교육부 저격한 의평원 "실력있는 의사 배출 포기했나"]
 
한 부원장은 집단 유급 또는 휴학으로 내년에 신입생까지 7500명을 한꺼번에 수업하게 될 경우, 의대 교육 파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특히 이 같은 교육 파행이 한 해에 그치지 않고 수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적으로 2~3배 의대증원 전례 없어
 
한 부원장은 “교육부 장관이 최근에 언론에 ‘의대 교육 질 저하가 절대 없게 장관이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 질 저하 방지가 장관이나 총장, 학장이 말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의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부대끼고, 병원에서 환자들과 동료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교육이 이뤄진다. (대규모 증원으로) 그런 것들이 안 될 때는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마 (정부는) 의평원 무력화를 위해 여러 압박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한다. (의평원이) 문을 닫게 될 가능성도 있고, 다른 관변 의평원을 세울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내년에 교육 현장은 누구도 예상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 우리도 평가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한 부원장은 “내년에 교육 파행이 벌어질 거고 그건 한 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가 걱정했던 의평원 평가·인증 제도의 무력화, 의평원이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학생들 교육이 어떤 식으로 돼서 5~10년 후에 어떤 의사들이 배출될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증인이 돼 달라”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 하고 있는 것들, 학교들, 또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지 등 의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태가 어떻게 귀결이 될지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 달라”며 “이건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되는 상황이라 결코 여기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평원은 교육부에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교육부 개정안, WFME 인정에도 영향…전임 의평원장들 "교육부 압력, 주눅 들 것 없다"
 
이날 의평원은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해당 개정안이 그대로 강행될 경우 의평원에 대한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의 인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평원은 지난 2016년 아시아에서 최초, 전 세계에서 4번째로 WFME로부터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며, 해당 인정은 2026년까지 유효하다.
 
의평원 안덕선 원장(연세의대)은 “의평원은 매년 활동 내용과 변동 사항에 대해 WFME에 보고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 내용 역시 보고할 텐데, 2026년까지였던 인정이 중지될지 다시 새로 받아야 할지는 WFME의 통보를 받아야 알 수 있다”면서도 “WFME에서 평가기관으로 인정 시 중요하게 보는 요건 중 하나가 평가기관의 독립성·자율성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다만 의평원은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의대증원이 예정된 의대들을 대상으로 한 주요변화 평가는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각 의대가 실력 있는 의사를 양성할만한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의평원이 가진 책무라는 이유에서다.
 
안 원장은 “평가기관의 중립성·독립성·자율성은 필연적으로 확보돼야 하고, 그런 점에서 교육부의 이번 개정안은 통과가 안 되지 않을까, 뒤늦게나마 철회되지 않을까 희망한다”며 “따라서 우리는 현재까지는 이미 공표한 대로 주요변화 평가를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임 의평원 원장들도 의평원의 이같은 행보에 힘을 보탰다.
 
이무상 의평원 2대 원장은 “의평원은 의사들끼리 민간 자율로 1998년부터 운영해 왔고, 교육부가 인정한 것이 2013년이다. 15년 동안 교육부 없이도 민간 자율로 잘 평가해 왔다”며 “(정부가) 싫다면 관두라고 하라. 민간 자율로 하면 된다. 주눅 들 것 없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는 우리나라 의대 교수들이 일본 의대 교수들 앞에서 죽어지내다가 평가·인증을 잘하게 되면서 고개를 들고 기죽지 않게 됐다”며 “의대에도 국제적으로 품격이 있는데, 정부가 그 품격을 망가뜨리는 짓을 하려 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WFME 부회장을 지낸 안덕선 제3·4대 의평원장(고려의대)도 “WFME 부회장으로 7년간 봉사하면서 저런 법을 만드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며 “대개 말썽이 있었던 나라들은 부패한 정치권이 전문직과 충돌하는 경우들이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왜 그런 반열에 들어가야 하느냐”며 “의평원은 정부가 도와주든 안 도와주든 어렵게 여기까지 끌고 왔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기관이 됐다. 초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맞다”고 지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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