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를 하나의 병원으로’... 일본 지방마을의 ‘커뮤니티 케어’ 도전기

[칼럼] 김웅철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저자·매경비즈 교육센터장

▲삼포요시 연구회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김웅철 칼럼니스트] ‘75세 이상 인구 2000만명 돌파.’ 초고령사회 일본에 2025년은 비상의 해다.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들이 모두 75세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후기(後期) 고령자’로 부르는데, 후기고령자의 단기적 급증은 의료와 간병비 등의 재정압박과 간병인력의 태부족 사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책으로 ‘탈(脫) 병원, 향(向) 재택’ 방침을 세우고, 실천 방안으로 지역 사회가 고령의 주민들을 함께 돌보는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일본에서는 ‘지역포괄케어’라고 불린다)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 재원(財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팀 의료, 의료-간병의 연계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직종간 벽은 높다.

이런 가운데 ‘마을 전체를 하나의 병원으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지역중심 케어를 실천하고 있는 한 지방 도시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매달 열리는 삼포요시 연구회, 다양한 직업종사자들이 모여 역할 분담 

일본 혼슈의 중서부에 있는 시가 현(滋賀県)의 히가시오미(東近江) 시 지역. 이 곳에서는 매달 한번씩 마을 고령자들의 케어를 위한 특별한 공부모임이 열린다. 
 
‘삼포요시 연구회’(三方よし 研究会). 

연구회의 목적은 지역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이 협의해 각 병원의 기능을 명확히하고 역할을 분담한다는 것이다.

연구회의 참석자는 보통 100명 정도. 히가시오미 시와 인근 지역(3곳)의 의료, 요양, 행정 등 다직종 종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구체적으로 내과 신경과 등 전문의, 간호사, 치과의사, 보건사, 약제사, 이학요법사. 작업치료사, 케어 매니저, 지자체 공무원 등이다.
 
월 1회 세미나실에 빙 둘러 앉아 자기 소개, 당번 시설(매월 순환제)의 활동 소개, 협력이 필요한 고민사례들을 공유한다. 2007년 초부터 시작된 연구모임은 한번도 빼놓지 않고 열렸고, 2016년 3월 100회를 돌파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둥그렇게 둘러 앉은 이유는 서열이 아닌 수평으로 하나되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란다.

초기에는 직종별 이해 관계를 강조하다보니 모임 때마다 긴장감이 흘렀지만 12년이 흐른 지금의 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후생노동백서(2019년 판)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다직종 연계 진료를 통한 환자의 병상 개선을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동기부여가 지속되고, 동료 의식이 생겨 서로(기관)의 약점과 강점에 대해 대화하면서 선뜻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가 구축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얼굴을 알기 때문에 필요할 때 편하게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연구회를 통해 환자나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자신의 케어 방식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연구회 관계자는 “연구회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직종 관계자들이 서로 얼굴을 아는 관계를 구축한 것”이라며 “이 관계가 직종 간 벽을 넘게 했고 결과적으로 환자와 의료기관,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을 주는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연구회의 이름인 ‘삼포 요시(三方よし)’란 ‘삼자(三者)가 좋다’는 뜻으로, 삼자는 환자(고령자), 기관(병원, 요양원등), 지역이다. 지역의 고령환자, 병원, 요양원 등 기관, 지역 사회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지역 전체가 환자 하나의 병원으로서 역할,  의사는 여러 직종과 협력 

연구회는 2007년 초 지역 뇌졸중 환자의 지역연계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크리티컬 패스란 ‘최적의 경로’라는 뜻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최단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의미한다. 의료계에서는 급성기 병원에서 회복기 병원을 거쳐 조기에 자택으로 귀가하는 진료 계획을 작성해 이를 치료를 담당하는 모든 의료기관이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지역 뇌졸중 환자의 치료과정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개업의, 급성기 병원 전문의, 보건소장 등 지역내 핵심 인물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먼저 의료기관의 역할분담을 위해 크리티컬 패스인 ‘삼포요시 수첩(삼자만족 수첩)’을 만들었다.
 
이 수첩에는 환자 한명의 모든 의료 정보가 기록돼 있어 각 치료기관은 이를 참고할 수 있었다.

환자가 최초의 급성기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고 다음 회복기 병원에서 어떤 재활치료를 받았으며 언제쯤 퇴원 가능한 지 등의 상세한 진료계획과 진료경과가 기입됐다. 

환자는 처음 병원에서 이 수첩을 발급 받아 병원 이동시 필수 지참했고, 퇴원 후에도 재택방문 주치의는 이 수첩을 보면서 치료에 대응하도록 했다. 이 수첩이 있으면 환자도 안심하고 병원을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삼포요시 수첩의 효과는 작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경우 급성기병원의 평균 입원일수는 50일에서 30일로 단축됐고, 결과적으로 병상에 여유가 생겨 긴급 반송송 중증환자를 수용하는 비율도 65%에서 84%로 개선됐다. 재택의료도 충실해져 자택에서 임종을 보는 비율도 50%를 넘어선 지역이 출현했다.

연구회는 후생노동장관상 표창, 일본의사회 대상 등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삼포요시 연구회의 리더격인 오구시 테루오(小串 輝男) 오구시 의원 원장은 각종 수상식 소감에서 “이제는 환자 치료를 의사 한명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의료와 간병을 비롯한 다직종 분야가 공동으로 힘을 합쳐 환자에게 논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그러면서 “의사들은 잘난척 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전문직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함께 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회는 “환자가 치료 도중에 헤매지 않도록 지역 전체가 하나의 병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목표”라며 “최종 목표는 재택 임종이 자연스러운 마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삼포요시 연구회의 성공모델을 이어받아 요즘 일본에는 다직종 연계 의료네트워크가 확산되고 있다. 아키다 현(秋田県)의 ‘앳홈(At Home), 간병과 의료와 집을 잇는 모임’, 그리고 도쿄 도의 ‘케어 커뮤니티 세타카페’, 나가노 현의 ‘사히사 커뮤니티 케어 네트’, 가고시마 현의 ‘가고시마 의료간병 아카데미’ 등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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