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의 94% 허가된 치료제 부재…희귀질환 치료 방식 비의학적 지원 중심으로 필수 전환돼야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희귀질환 관리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적기에 정확한 진단 ▲재정적 지원 수준 향상 ▲비의학적 지원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우선순위 외에도, 희귀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가 단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데이터의 수집 및 활용 방식 개선 ▲의료진 교육 강화 ▲이용 가능한 지식의 광범위한 보급 ▲환자단체 파트너십 기반의 통합적 사회복지 등이 제시됐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은 16일 ‘침묵 속의 고통: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희귀질환 인식 및 관리 수준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씨에스엘 베링(CSL Behring)의 후원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다섯 국가(호주, 중국, 일본, 한국, 대만)를 대상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및 관리를 위한 과제들을 분석한 것이다. 500명 이상의 임상가와 17명의 학계, 의료계, 정부, 환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작성됏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희귀질환은 6000~7000개에 달한다. '희귀' 질환이라고 정의된 의미와 모순되게도, 아태 지역에만 2억 5800만명가량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 50%가 소아 환자다. 국내에서는 의료비지원사업 대상으로 1038개의 희귀질환이 등록돼 있고, 25만명 이상의 환자가 희귀질환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설문에 응답한 의료진들은 희귀질환에 대한 표준 진료 지침이나 규제 당국에서 승인된 의약품, 진단 및 치료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평균적으로 희귀질환자 3명 중 1명만이 근거에 기반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희귀질환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진단을 꼽았다. 여기에는 정확한 진단과 신속한 진단이 모두 포함되는데, 희귀질환을 진단받기까지 수년에 걸쳐 어려 의사들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치를 한 가지 꼽으라는 질문에 설문 참가자의 거의 절반(47%)이 재정지원 확대를 언급했다. 치료비용이 일부 지원되지만 모든 희귀질환이 동일한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며, 의료비 이상의 본인부담 비용은 아태지역 모든 환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다양한 필요를 해결하는데 있어 정부제도의 성과를 평가하라는 질문에 설문 응답자들은 삶의 질을 지원하는 데 가장 낮은 점수를 매겼다.
보고서는 희귀질환의 94%가 승인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삶의 질은 정책을 통해 환자들에게 즉각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취업이나 교육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회적인 지원은 전체적인 환자 지원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한국의 주요 설문 결과를 보면, 국내 의료진은 다른 아태지역 의료진보다 더 많은 희귀질환자들을 진료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희귀질환 관련 지식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다.
설문에 응답한 의료진들은 희귀질환 분야 보건의료 체계에서 가장 취약한 요인으로 치료 입문, 치료 비용, 그리고 사회복지를 지적했다.
희귀질환의 진단 및 관리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된 문제는 진단(72%)과 의약품 접근성(59%) 부분이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질환 인식을 높이고 환자 교육 및 지원을 제공할 환자단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역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다섯 국가 모두에서, 의료진은 희귀질환자들을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장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는 의료진이 희귀질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응답자 중 14%가 지금까지 한 번도 희귀질환자를 진료한 적이 없다고 답한 것처럼, 환자들이 적기에 정확히 질환을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진들의 가장 큰 도전과제라는 점을 시사했다.
환자들은 희귀질환 치료환경의 변화와 활동을 주도하는 핵심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발언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의료진의 과반수가 본인의 진료 영역 내에 희귀질환 환자단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환자들의 목소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에 최적의 치료환경을 구축하고 의료계 및 정부에 있는 주요 결정권자들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발언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 한국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안윤진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과장은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된 이후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진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치료 접근이 수반된다면, 희귀질환 환자들이 각국의 보건의료 정책 결정에 발언권을 갖고,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양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를 편집한 제시 퀴글리 존스(Jesse Quigley Jones)는 "아태지역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희귀질환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희귀질환을 보는 의료진에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의료진들은 전문가 간의 협력 및 환자단체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본인들이 제공하는 희귀질환 분야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태지역 전반적으로 희귀질환 분야의 보건의료 체계는 보다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발전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희귀질환 분야의 의료 및 사회적 수요를 모두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씨에스엘베링 코리아 손지영 사장은 "한국은 희귀 난치성 질환의 치료환경 개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는 물론 정책 수준도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여전한 미충족 수요에 대해 씨에스엘베링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한국에서도 발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씨에스엘베링은 국내 혈우병 환자를 비롯한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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