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CEO 인터뷰] 최재순 엘엔로보틱스 대표 "국내 임상에 이어 미국·유럽·중국 허가 진행, 지멘스와 경쟁"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20여년 전부터 꿈꾸던 의료로봇, 우리나라도 세계와 비교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술로봇은 이미 세계적인 다빈치 로봇이 있지만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 등 미개척 영역에서는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심혈관 중재시술은 막히거나 좁아진 관상동맥을 복구하기 위한 시술을 말한다. 혈관질환에서 나타나는 병변의 다양성과 복잡성으로 시술의 정확도와 의사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을 이용하면 시술시간을 줄이면서도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엘엔로보틱스 최재순 대표(서울아산병원 의공학연구소 교수)는 20여년 간 심혈관중재시술 로봇을 비롯해 영상중재시술로봇, 가상현실 수술시뮬레이터 등 임상현장 니즈를 해결하는 다수의 수술로봇을 연구개발해 왔으며, 국내 손꼽히는 의료로봇 분야 전문가다. 심혈관중재시술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김영학 교수 역시 회사의 CMO(최고의학책임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다수의 벤처캐피탈로부터 80억원 규모의 시리즈A투자를 받아 임상시험에 나서는 최재순 대표로부터 의료로봇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년 전부터 의료로봇 연구, 대기업 아니어도 개발 가능성에 창업"
-의료로봇이라는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에서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1995년 봄에 한 매거진에 나온 다빈치 수술로봇을 보고 처음으로 로봇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의료로봇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 서울대 제어계측과를 나와 서울대 의용생체공학협동과정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인공심장과 의료기기 연구를 먼저 배웠다. 그러다가 5~6년이 지난 2000년 가을쯤 국립암센터에서 수술로봇 과제에 참여했다. 마땅한 기회가 없다가 돌고 돌아서 결국 진짜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연구자나 개발자는 의료로봇 실용화 과정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개발 자체에 더 관심이 많다 보니 개발 자체는 기업에 맡겼다. 하지만 의료기기 경험이 없었던 로봇기업 혹은 장비기업들의 진행은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가 아예 새롭게 도전해보자고 생각했고 직접 회사를 만들었다. 대기업이 투자하고 개발에 뛰어들면 잘할 수 있겠지만, 꼭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핵심 기술을 잘 만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의료기기기업도 대부분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의료로봇은 이미 수술로봇인 다빈치 로봇이 잘 알려져있다.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으로 품목을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립암센터에서 고대안암병원을 거쳐 인공심장 연구를 해왔다. 그러다가 심장내과에서 중재시술 인터벤션과 부정맥 시술을 하면서 로봇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심장내과 전문의가 복강경으로 혈관조영장비로 몸 속에 넣어 시술을 진행하지만, 로봇을 도입하면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관련 특허를 하나 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고 2014년에 심장내과 김영학 교수와 함께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당시 다소 규모가 있는 복지부 의료로봇 과제를 처음으로 받아 본격적인 시술 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해오던 소프트웨어나 부정맥 메커니즘을 응용해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을 처음으로 만들고 2019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탐색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기술적으로는 로봇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어도 실제는 어떤지 몰랐다. 이때 2019년 10월 25일 정오, 김영학 교수가 수술장에서 처음 제품을 시연해보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시술로봇을 사용해보더니 이전에 여러번 개발했던 제품과 달리 잘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한 마디에 안심이 됐고 믿음을 갖게 됐다.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의 장점은 무엇인가. 만약 환자가 기존 복강경이 아닌 로봇을 선택한다면 환자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무엇인가.
로봇 적용을 대상으로 가장 기초적인 시술인 허혈성 심장질환은 세계 사망원인 1위다. 관상동맥 조영술 시술 건수만 연간 20만건이다. 미국의 관상동맥 중재술 건수는 연간 80만건에 이른다. 하지만 장시간 방사선 노출의 위험이 있고 희미한 엑스레이 영상으로 부정확한 수술이 있다. 숙련도에 따라 혈관 내막이 손상되는 등 부작용도 초래될 수 있다.
시술도구를 원격으로 제어하는 로봇을 햅틱 장치로 조종하면서 편안하게 컴퓨터 영상을 보고 수술 부위를 파악할 수 있다. 아주 작은 병변까지 정확한 정량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도가 가장 큰 이점이라고 본다. 기존 수술에서 약간의 비용을 낸다면 대기 기간은 줄어들면서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다. 실제 의사가 판단해서 수술할 때 보다 시술로봇을 이용하면 수술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기존 시술에 익숙한 의사들이 시술로봇을 사용할까. 시술로봇을 주로 사용하는 의사들은 주로 누가 될까.
시술이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도 얼마든지 로봇을 시작할 수 있다. 의사들에게 처음에는 로봇을 집어넣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트레이닝 커브가 지나가면 로봇을 쓰면서 실수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이면서 수술의 표준화를 이루고 질 높은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자율수술 로봇에서 인공지능 수술 로봇으로 발전할 수 있다. 원격의료가 허용된다면 해볼 만한 일이 더욱 많다고 본다. 잘하는 의사가 원격수술을 협진하거나 실시간으로 수술 가이드를 제시할 수 있다.
-지난 10월 시리즈A 라운드로 8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투자자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후속투자를 진행한 것을 비롯해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캐피탈, 스틱벤처스, 한화투자증권을 포함해 총 5곳의 대형 투자자가 참여했다. 투자금은 어떻게 쓰이게 되나.
다기관 확증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정밀도나 정확도는 다음 단계에서 하고 우선 임상시험 첫 단계에는 사람이 하던 중재시술의 성공률과 로봇이 하는 중재시술 성공률을 비교해 열등하지 않다는 데이터를 입증한다. 이를 바탕으로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으려고 한다. 미국 회사도 2007년 수술로봇의 허가를 처음 받을 때 사람이 하는 수술과 로봇이 하는 수술을 비교한 결과로 허가를 받았다.
확증임상시험의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기 위해 4개 병원이 공동으로 추진하고자 계획하고 있으며, 이르면 2023년에 품목허가를 받고 실제 임상 현장에 보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만약 이중맹검 임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면 시간이 다소 더 걸릴 수 있다.
"임상시험으로 정확도 검증해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시장 도전장"
-로봇은 경쟁이 치열하고 우리나라가 후발주자인데, 해외 시장에서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인튜이티브 서지칼이 처음 다빈치 로봇을 알리던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수술로봇은 이미 전 세계에 전파돼있다.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 분야에선 지멘스가 미국 코린더스(Corindus)를 1조3000억원에 인수했지만 아직 관련 제품이 널리 퍼지진 않았다. 미국 회사는 2016년 식품의약국(FDA)허가에 이어 2019년 유럽 CE 승인을 받았다. 프랑스 로보캐스(Robocath)는 2019년 관상동맥 치료로봇에 대한 CE승인을 받았다.
미국, 프랑스 등 선발 주자가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임상시험이 위축돼 많은 진전이 없었던 가운데, 우리나라는 시간적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지난 6월 엘엔로보틱스는 독일 의료기기회사 비브라운 코리아와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해외 인허가에서 도움을 받고 해외 수출도 지원을 받을 계획이다. 특히 비브라운은 중국지사에서 시술로봇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는데, 중국 전역에서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하고 아직 시술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의료로봇을 허가할 때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2023년에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고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은 다음 급여 평가까지 이뤄지다 보면 그냥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안전과 성능을 검증했다는 의미이고, 이를 토대로 비급여 수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특별수가를 받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선진입 후평가를 할 수 있도록 혁신의료기기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초기에 시장에서 판매되면서 다양한 임상 데이터가 요구된다. 국립대병원은 정부 보조금을 통해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민간병원에도 선진입 실증에 대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혁신의료기기는 건강보험 재정과 별도의 기금을 만들어서 초기에 사용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외 진출 계획이나 앞으로 적응증 확대 계획은 무엇인가.
미국 FDA, 유럽 CE, 중국 인허가 등을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둔 상태다. 평가나 임상자료 요구가 많은데 이미 비슷한 로봇이 나와있기 때문에 별도의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동등성을 입증해 빨리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적응증은 관상동맥부터 시작했는데 말초동맥과 뇌혈관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독일 회사도 보다 적극적으로 혈관 부위를 확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 시대에 앞으로 더욱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본다.
-의료로봇을 개발하면서 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가.
맨 처음 로봇수술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을 때만 해도 외국에서 로봇을 수입했다. 로봇이 수술의 모든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로봇을 사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 수술 정확도를 높이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다가 현대중공업, 미래 컴퍼니 등 로봇을 개발하겠다는 회사가 생겨났다.
그 다음은 엘엔로보틱스처럼 실제 개발자들이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한양대, 국립암센터, 경북대 등 연구팀들이 수술과 중재시술, 조직검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로봇 스타트업을 출범시켰다.
2025년 경에는 우리도 해외 시장에서 허가를 받고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로봇 회사들이 인공지능으로 각축을 벌이고 자동화 단계까지 완성하고 있는데, 여기서 판가름이 날 수 있다. 심혈관 중재시술로봇처럼 세계에서도 이제 막 시장이 열리고 있는 품목이라면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최재순 엘엔로보틱스 대표
서울대 제어계측과 졸업
서울대 서울대 의용생체공학협동과정 석·박사 수료
전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바이오메드랩·국립암센터·고대안암병원 연구원
현 울산의대 의공학교실·서울아산병원 의공학연구소 교수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