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 치료를 위해 혈장치료가 적극 권장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혈장채혈 지침을 내놓는 등 치료확대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혈장치료 지침이 완성되고 본격적으로 혈장치료가 실시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혈장치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등이 공식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최근에는 완치판정을 받은 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 재양성 사례가 속속 보고되면서 문제가 대두됐다. 20일 기준 재양성 사례는 181건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혈장 내 항체의 정량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혈장치료를 확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적 트렌드 혈장치료…각국 회복기 혈장 모으기에 주력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세계적 추세는 이미 혈장치료 확대 기조를 띠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유럽 등 급속도로 코로나19가 확산돼 치명률이 높은 지역에서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는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완치자들이 기증한 혈장을 이용해 중증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을 통한 혈장 치료제 사용을 승인했다.
'에 따르면 미국 중에서도 확진자가 가장 많은 뉴욕이 혈장치료에 가장 적극적이다. 마운트사이나이대 병원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가 혈장치료에 돌입했고 뉴욕에 위치한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곧 임상시험이 시작될 예정이다.
특이한 점은 미국이 혈장치료를 중증이 아닌 경증환자와 예비 환자에게도 치료효과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전염병 전문가인 리즈 앤 피로프스키(Liise-anne Pirofski)교수는 "미국에서 진행되는 임상 시험 중 하나는 코로나19 질병 초기 단계인 환자에게 혈장을 주입하고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네이처를 통해 밝혔다.
이어 그는 "또 다른 임상 시험은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들을 위한 예방조치로서 혈장치료의 사용을 탐구하는 것이다"라며 "이 실험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전혀 치료받지 않은 사람과 대조해 혈장을 주입한 대조군이 얼마나 덜 아프게 되는지 평가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 결과를 한 달 안에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임상시험과 혈장치료 확대를 위해 혈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를 위해 뉴욕헌혈센터(NYBC)는 코로나19 완치자들에게 혈장을 대거 기증받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를 독려하기 위해 미FDA 스티븐 한 국장은 "한 사람의 기부가 최대 4명의 환자를 도울 수 있다"며 "회복기 혈장은 코로나19 질환을 완화해주거나 질병의 기간을 단축시켜줄 수 있다"고 말하며 혈장 기부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에선 스페인이 선발 주자로 나섰다. 혈장 의약품 전문기업인 그리폴스(Grifols)는 3월 29일 회복기 혈장을 통해 임상시험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리폴스는 미 FDA와 협약을 맺고 미국 혈장기증센터 혈장을 이용해 치료법을 테스트 할 예정이다.
영국도 국민보건서비스(NHS) 혈액·이식센터를 통해 혈장 채취에 돌입했다. 20일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은 채취한 혈장을 임상을 거쳐 코로나19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NHS 대변인은 BBC를 통해 "임상시험은 회복기 혈장 투입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회복 속도, 생존율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실시하게 된다"며 "빠른 진행을 위해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재발 의심 사례 보고, 혈장 항체에 악영향?…질본 "혈장치료제 개발 중"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혈장치료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혈장기증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완치판정을 받은 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 재발사례가 다수 확인되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코로나19 완치자 혈장채혈 지침을 살펴보면 질병관리본부는 혈장치료가 아직 안전성과 유효성을 공식적으로 입증 받지 못해 해당 지침이 권고사항 정도로만 파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유로 혈장치료가 국내에서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혈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확정할 수 있도록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며 "아직 경증과 중증 사이에 있는 환자 중 혈장치료 세부적용에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엄 교수는 "혈액에서 바이러스가 배양된 사례는 없으나 지속적으로 코로나19 재발사례가 보인다. 충분한 기간을 두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면서도 "그렇다고 혈장채혈을 너무 미루다보면 혈장에서 항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는 감염 일주일 후부터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면역 단백질인 이뮤노글로불린M(IgM)과 이뮤노글로불린G(IgG) 항체를 만들게 된다. 보통 lgM과 lgG는 4~6주 사이에 양과 농도가 가장 짙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엄중식 교수는 "현재 혈장치료가 확대되기 위해선 혈장확보가 가장 중요한 선제적 과제다"라며 "그러나 혈장을 채취하기 위해선 다른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 중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혈장 분리 시술 과정에서 이상이 없는 환자라는 조건까지 맞추려면 현장에선 채혈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항체 형성률 자체가 높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데다, 혈장 내 항체량이 균일하지 않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엄 교수는 "환자에게 채취한 혈장에 항체가 얼마나 들어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현재는 치료수준을 정량화하기 힘들고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표준화된 혈장치료제 개발이 필수"라고 전했다.
김현옥 신촌세브란스 진단검사의학교실 교수도 "사람에 따라 혈장 내 항체 생성 비율은 제각각이다"며 "정확한 치료 효과에 대해선 연구가 더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정확한 연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신형식 감염병연구센터장은 17일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온라인 포럼에서 "혈장치료나 항체치료 등은 심각한 경우에만 필요하다. 그러나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이 경증인 상황이다"라며 "15% 정도인 중증도 폐렴도 기존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다. 혈장치료 도입 전에 반드시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혈장치료 효과를 정량화 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항체를 환자에게 직접 빼서 치료하는 것은 항체 확보와 치료 효과성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 궁극적으로 치료제 개발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정부는 혈장치료제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준년 질병관리본부 혈액안전감시과장은 "재발 사례나 최대 항체 확보 등을 고려해 14일이 지나야 혈장채취가 가능토록 했고 28일이 지나지 않은 경우 한번 더 양성여부를 검사하도록 지침을 내린 상태다"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혈장채혈을 늘릴 수 있는 캠페인 등 추가 방안은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 내부 검토가 더 필요하다. 현재 내부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채혈지침에 이은 진료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까지는 전문가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치료를 정량화 할 수 있는 혈장치료제 개발은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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